공기압축기 제조·판매 외길 30년
‘오일 프리’ 독보적 기술력 갖춰
지속적 R&D투자로 혁신에 혁신
미래 시장 변화에도 단단히 대비

[금강일보 이기준 기자] 에어 컴프레서(air compressor, 공기압축기)는 거의 모든 제조업에서 꼭 필요한 기초 장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장자동화가 이뤄지는 제조현장에선 이 압축공기가 공정의 구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국내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공기압축기는 대부분 수입제품이고 국산이라고 해도 해외에서 부품을 들여와 단순히 조립·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독자 브랜드를 달고 시장에 나오는 제품은 한 손에 꼽히는데 한국에어로㈜가 이 중 하나다. 김왕환(62) 대표는 30년 넘게 공기압축기, 한 우물만 파면서 조금씩 수입제품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 공기압축기 외길에 들어서다

김 대표가 한국에어로를 창립한 건 1987년, 그의 나이 29세 때다. ‘세양상사’라는 이름으로 홀로서기에 나서 압축공기 시스템 관련 기술영업·서비스 사업을 해오다 1994년 법인전환을 하면서 사명을 한국에어로로 변경, 본격적으로 공기압축기 제조·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경제력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어요. 직장 월급으론 안 될 것 같아서 산업용품 기술영업을 하는 회사에서 3년 6개월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 개인사업을 결심했지. 당시 공장자동화가 시작되는 시점이어서 공기압축기가 유망할 것으로 확신했는데 사업화가 생각처럼 쉽진 않더라구요. 힘든 고비도 많았죠. 특히 IMF 외환위기 땐 사업을 접으려고도 했어요. 근데 재산을 다 정리해도 10억 원 정도가 모자라더라구요. 그래서 벌어서 갚아야겠다고 맘먹은 게 여기까지 왔네요.”

자본금 170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 처음엔 압축공기 시스템에 들어가는 기술·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기술력을 쌓고 그러면서 자체 공기압축기 생산을 위한 연구개발(R&D)에 매진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특별한 뭔가’가 필요한데 그 동력을 R&D에서 찾고자 한 거다. 공기압축기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김 대표를 새로운 길로 안내했다.

 

#. 친환경 공기압축기의 탄생

한국에어로의 주력 상품은 오일 프리 공기압축기(oil free air compressor)다. 말 그대로 윤활유(오일)를 사용하지 않는 공기압축기로 물이 오일을 대체한다. 오일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 가령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엔진을 작동하려면 구성품의 윤활을 위해 엔진오일이 필요한데 엔진오일 대신 물이 들어가니 폐유가 발생할 일이 없다. 당연히 오일 정화 등에 필요한 소모품도 줄일 수 있고 유지보수 비용도 획기적으로 절감된다.

또 저속 회전에서 최고 효율을 발휘하는 이 제품은 인버터 장착을 유리하게 해 에너지 사용도 줄일 수 있다. 전기요금이 최대 40%까지 절감되니 그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도 저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같은 전력을 사용하더라도 공기압축기에서 배출되는 토출 공기량은 기존 제품보다 30%이상 많다.

특히 싱글 스크류 공기압축 기술이 적용돼 최상의 퍼포먼스(성능)를 구현한다. 1개의 스크류 로터를 2개의 게이트 로터가 밸런스를 잡아주는 심플한 압축구조에 초고정밀도 가공기술이 더해져 압축공기 생산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또 압축기 내 틈에 물이 밀봉·윤활·세척 작용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저속 회전에서 압축공기 생산이 가능해 최고의 효율과 내구성을 유지할 수 있다.

“얼마 전 식품 공장에서 오일 기반 공기압축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사회 이슈가 된 적이 있어요. 오일 공기압축기는 토출 공기에 오일 성분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 거죠. 요즘 제조업 공정 환경이 친환경으로 많이 바뀌는 추세입니다. 공장 내에서 순환되는 공기 질이 나쁘면 근로자들에게도 악영향이 있죠. 깨끗한 공기가 대세가 될 거라고 봅니다. 다만 오일 프리 공기압축기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게 문제인데 수요가 많아질수록 가격은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서서히 오일 프리 공기압축기가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의 90%이상이 오일 기반 압축기다. 제조업의 기초설비다 보니 설비 교체를 결정하는 게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설비 전체를 바꿔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그래서 기존 제품의 사용연한을 다 채울 때까지 설비 교체를 미루는 경향이 있다. 또 오일 프리 제품에 대해 아직 모르는 기업들이 많고 특히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 한국에어로가 물 윤활 방식의 오일 프리 공기압축기와 관련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성장이 더딘 이유다.
 

#. 지속적인 R&D, 그리고 융합

김 대표는 33년째 기업을 운영하면서 R&D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율이 11%나 되고 R&D 인력은 28명의 직원 가운데 11명이나 된다. 김 대표가 ‘한국에어로는 공기를 가장 잘 다루는 기업’이라고 자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대표는 다양한 업종의 기업과 기술을 가진 CEO, CTO들과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도 공을 들여왔다. 2008년 대전충청CTO포럼 창립을 주도하면서 7년간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도 명예회장으로서 기술기업인들의 상생을 견인하고 있다. ‘공기압축기 아카데미’도 매년 열어 관련 기술을 공유한다.

“공기압축기만 해도 기계, 전기, 제어, 프로그래밍, 유압, 공압 등 많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우리 역량만 갖고는 안 돼요. 다양한 업종과의 교류와 기술 융합이 이뤄져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요. 기술과 마케팅은 선진국에 밀리고, 원가경쟁력은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에 밀리니 살아남으려면 신기술·신제품 개발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밖엔 없는데 중소기업은 한계가 있어요. 교류와 협력, 이를 통한 융합이 필수일 수밖에 없죠.”

물 윤활식 오일 프리 공기압축기가 시장에 나온 지도 벌써 10여 년, 삼성과 LG 등 국내 유수의 기업에도 납품되면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어로는 한 발 더 도약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대응 기술개발이 핵심이다. 센서·빅데이터·IoT·인공지능 등 스마트 팩토리 구현에 필요한 공기압축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기술개발이 한창이다.

“현재 국내 공기압축기 시장에선 50여 업체가 경쟁하는데 독자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2∼3곳 정도예요. 이 중에서도 오일 프리 분야는 우리가 독보적이라고 자부합니다. 올해부턴 가파른 기업 성장을 예상했는데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혀 아쉽긴 한데 그래도 이겨 나가야죠.”

#. 예비 창업자를 위한 조언

김 대표는 소통과 융합을 강조하는 기술기업인이다보니 후배 창업자에 대한 배려도 각별하다. 그래서 격려도 하지만 쓴소리를 더 많이 하게 된다. CEO로서 떠안아야 할 책임감의 무게가 만만찮기 때문인데 창업기업 지원을 위한 정부기관 평가위원으로 수년 째 참여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사업을 하다보면 많은 위기를 겪어야 하는데 장밋빛 청사진만 보고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할까? 무엇보다 기업가정신이 많이 퇴색된 느낌입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눈에 보이지 않았던,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훨씬 더 많은데 기업가정신은 그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원동력, 그 위기를 넘길 수 있는 힘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부족하다는 거죠.”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 잘 준비된 창업자만 있을 순 없는 법. 다소 부족하더라도 격려하고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게 선배 기업인의 도리, 그리고 정부·지자체 등 지원기관의 의무다. 그래서 김 대표는 실패도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성실한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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