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교수 실패로 꿈틀댄 CEO 꿈
설립 후 맨땅에 헤딩하며 판로 개척

[금강일보 김현호 기자] 폐허 위에 섰던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산업화를 관통하며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단기간 팽창한 경제는 보릿고개를 경험한 이들에게 엄청난 선물이었다. 물론 후유증도 있었다. 환경문제가 대표적이다. 경제 성장이란 명목으로 미래 세대의 환경을 담보 잡았는지 모른다. 다행히 환경의 가치에 눈을 뜨고 깨끗한 환경에 몰두하는 지금, 환경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제품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필터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히며 다양한 기업들이 정점에 오르기 위해 기술력을 뽐내고 있다. 필터 기술력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민수(62) 대표의 ㈜지오필테크 역시 수많은 기업 중 하나다. 그러나 지오필테크의 기술력을 체험한 이들은 입을 모은다. “지오필테크 제품을 사지 않는 기업은 바보”라고.

 

이민수 ㈜지오필테크 대표

#. 시간제 강사의 숙명에서 도망치다

이 대표는 애초 사업은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강단에 서 남을 가르치는 교사나 교수가 되고 싶었단다. 그런 그가 가진 첫 직업은 한남대에서 취득한 이학 박사를 활용한 시간제 강사였다.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뛰어난 실력의 교수였으나 대학 입장에선 흔하디흔한 시간제 강사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의 실력을 알아본 한 대학이 그에게 작은 연구실을 마련해줬다는 점은 팍팍한 삶의 작은 위안거리였다. 한창 연구실에서의 강의 준비와 강의란 쳇바퀴같은 삶이 지루해졌을 무렵 그가 강의하는 한 대학에서 정규직 교수를 채용한다는 소식이 타전됐다. 시간제 강사 신분으론 이례적으로 연구실을 배정받았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그였기에 많은 이들에게 ‘이민수’란 이름이 오르내리던 터다.

그는 부푼 희망으로 정규직 교수에 도전했고 1·2차 면접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최종 3인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결과부터 얘기하면 정규직 교수 자리는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차라리 1·2차 면접에서 떨어졌더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을…’이라는 안타까움은 그래서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안타까운 현실을 잊기 위해 그는 무림의 고수가 폐관수련에 들어가는 것처럼 연구실에 들어가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현실을 잊고자 했다. 언젠간 강단을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은 본의 아니게 그의 동력이 됐다. 그는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을 잊은 채 수개월 동안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결과 제올라이트(실리콘과 알루미늄으로 이뤄진 다공성 결정체)를 이용해 악취 등을 획기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필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자신도 몰랐던 CEO의 마인드가 꿈틀하는 순간이었다.

“정규직 교수에 도전했으나 결국 고배를 마셨습니다. 제법 강의에도 자신 있었던 만큼 내심 기대했는데 최종면접에서 안타깝게 떨어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래서 생각했죠. ‘평생 강단은 어렵겠다’고…. 이 때 탄생한 제올라이트 필터는 새로운 꿈을 그리게 해준 제품입니다.”

 

#. 지오필테크의 탄생… 쉽지 않은 현실

이 대표는 제올라이트 필터 개발에 도움을 준 두 명의 제자와 함께 지난 2005년 지오필테크를 설립했다. 그러나 평생 강단에만 섰던 이 대표와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디딘 제자들은 경영의 ‘ㄱ’자도 몰랐다. 자신들의 제품을 어떻게 홍보하고 팔아야 하는지 정말 무지했다. 정도엔 방법이 없다고 그들은 ‘맨땅에 헤딩’하면서 자신들의 제품을 알리는 것부터 집중했다.

하지만 영업의 세계가 얼마나 치열하던가. 어딜 가더라도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고. 그나마 호의적인 업체와 만나 어렵사리 판로를 개척하긴 했으나 첫 해의 영업이익은 5000만 원에 불과했다.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들 급여로 지출하다보니 그가 손에 쥔 것은 거친 숨소리 뿐이었다.

이 대표는 그야말로 자신이 가진 걸 모두 털어 넣으며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첫 해 5000만 원의 영업이익은 다음해 1억 원, 또 다음해 3억 원 등으로 계속 불어났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수중은 늘 매말랐다.

“이상하다고 많이 생각했죠. 영업이익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왜 이렇게 궁핍한지 말이죠. 물론 계속 성장하는 기업이어서 사무실도 넓히고 직원도 늘렸다는 점은 있지만 자금난이 계속되는 느낌이었으니까요. 3억 원을 번 3년차부터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옵디다.”

중소기업계에선 데스밸리란 달갑잖은 늪이 있다. 창업 3년차부터 7년차까지 엄청난 위기가 찾아와 영업이익이 뚝 떨어지는데 이 구간을 죽음의 계곡, 즉 데스밸리라고 한다. 지오필테크도 데스밸리를 피할 순 없었고 정확히 창업 3년차에 보유금이 바닥났다. 이 때 같이 창업한 제자 중 한 명이 지오필테크를 떠났다. 욕심으론 제자를 붙잡고 싶었지만 밑천이 없어 당장의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들 급여를 지불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를 설득하기엔 너무 미안했다고 한다. 결국 은행 문을 두드렸다. 은행은 큰 실적이 없는 지오필테크에 대출을 해줄 순 없었으나 이 대표의 간절함을 ‘1차 담보’로, 지오필테크의 재무제표를 ‘2차 담보’로 대출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재무제표를 말로만 들어봤지 정확히 그게 뭔지 몰랐어요. 그런데 어떡해요. 돈이 필요하니까 어떻게든 작성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돈이 없으면 거리에 나앉게 생겼는데요. 시간제 강사하던 시절로 돌아가 집중하다보니 하루만에 50쪽 분량의 재무제표를 만들게 되더라고요.”

 

이민수 ㈜지오필테크 대표

#. 이과의 이성과 문과의 감성

다행히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 이 대표와 지오필테크는 위기를 넘기는데 성공했으나 존폐 위기는 늘 붙어다녔다. 그는 계속해서 R&D를 통해 기술력을 끌어올렸고 필터의 수명을 반영구로 늘리는 데까지 성공했다. 대부분 필터가 6개월~1년의 수명을 가진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기술력이다. 지오필테크가 만든 회심의 기술력을 갖춘 제품을 맛본 기업들이 “도대체 왜 이 좋은 제품을 못 파냐”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기술력을 한 눈에 표현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대표가 집중한 건 디자인이다. 지오필테크 설립의 일등공신인 필터를 비롯해 다양한 R&D 관련 제품에 디자인이란 감수성을 더했다. 단순한 무채색의 이과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제품은 문과의 감성을 입고 하나의 가구처럼 탄생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기술력을 가졌더라도 좀 더 예쁘고 멋있는 걸 원하는 이들에겐 지오필테크의 제품은 단연 눈에 띄는 ‘물건’이었다. 품질이야 말 할 것도 없었다. 덕분에 지오필테크란 이름은 점차 널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지오필테크는 이제 더 큰 세계로 나가려고 채비 중이다.

“동남아를 비롯해 많은 국가에 지오필테크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거죠. 여기에 단순한 디자인을 지양해 다양하게 시도한 점이 주효했습니다. 이민수란 사람이 지오필테크를 키웠다면 지금의 직원들이 지오필테크란 이름을 전세계에 떨쳐야죠, 전 그렇게 생각하고 이제 은퇴 이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오필테크의 기술력은 분명 전세계에서도 통할 거라 확신합니다.”

그는 아직 먼 미래인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지오필테크의 미래 역시 머릿속에 그리고 있단 뜻이다. 그가 그린 지오필테크의 미래는 분명 기술력이란 무기를 갖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한 우물을 제대로 파면 마르지 않는 법이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사진=신성룡 기자 drago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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