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시인·한남대 강사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한솥밥을 오래 먹다 보니
강을 따라 억새 잎들이 물결을 닮아간다
버드나무 줄기도 물결처럼 휘늘어질 때가 많다
억센 짐승의 갈기들이 사납게 흩날리는 날
강물도 저녁을 굶은 짐승처럼 크르릉거리고
그런 날은
버드나무 줄기들도 어여 가자 가자며 제 몸에다 힘껏 채찍을 해댄다
그런 날은
어느새 물결 위에 크고 작은 산맥들이 솟고
산맥을 넘는 말발굽 소리가 허공을 울리는 것도 같다
그런 날은
어느 결엔가 강물이 물 뿌리까지 벌떡 일어나
물결을 닮은 이웃들을 다 데리고
성큼성큼 살아서는 당도할 수 없는 곳으로 갈 것 같아서
나는 강물 속에서 죽은 아이들을 다 보는 것처럼 무서워진다
태양이 사막 위에 살갗을 새겨놓듯
난생 처음 물결 위에 밀리는 바람의 얼굴을 보는
그런 날은
천기를 엿본 듯 막막하게 두려워진다
그런 산맥들을 묻고 강물이 벽처럼 밋밋하게 흐르는 새벽
억새들도 미친 춤을 허리춤에 묻고 잠잠하고
세월이라든지 슬픔이라든지 죽은 붕어의 가슴살 같은 것들을 묻고
담담하게 흐르는 강의 주름들이
어느새 내 이마에도 흐르기 시작했으니
나도 어느 결에 벌써 흘러 보내고도 찾지 않은 것 투성이니
그 사실을 주저리주저리 엮지 않는 것도 강물을 닮아가는 길이니

강가로 걸어 나가는 날에는 마음이 변덕스런 날들이 많았습니다. 이랬다 저랬다가 나 혼자 흔들리면서, 어느새 금강 물결 앞에 서 있는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에는 마음 따라 강물 따라 억새 잎들이 휘어지고 버드나무 줄기도 휘늘어질 때 많았습니다. 마음이 먼저 기울어 금강 물결이 기울고 세상이 죄다 기우는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막막하고 두려웠습니다. 물결 위에 크고 작은 산맥들이 치솟고 산맥을 넘는 말발굽 소리가 쿵. 쿵. 온 마음을 울리기도 하였습니다. 이 커다랗고 깊은 금강 물결 앞에서 나는 점점 더 두려워졌습니다.

그러다 모두 잠든 새벽녘이 찾아 왔습니다. 새벽에는 억새도 흔들림을 멈추고 금강 물결도 조금씩 잠잠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장자장 들려오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세상을 잠재우는 물결을 보았습니다. 그 물결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내 이마에도 고요하게 흘러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장자장. 어린 시절 따뜻한 손으로 나의 이마를 짚어주던 엄마의 미소에서부터 나에게로 흘러드는 물결이 금강의 마음을 닮아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김지숙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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