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친일파인가 6·25의 이순신인가...현충원 안장 놓고 갑론을박

사진=연합뉴스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을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28일 백선엽 장군(예비역 대장)의 현충원 안장 문제와 관련해 "친일파 군인들의 죄상은 일제강점기에 끝난 것이 아니고 한국전쟁 중 양민 학살이나 군사독재에 협력한 것도 있기 때문에 전쟁 때 세운 전공(前功)만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김 당선인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재향 군인회의 주장은 사실관계가 맞지 않다"며 "'일제의 강압적 체제 아래서 불가피하게 일본군에 입대하여 복무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 '반민족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평가이며 사실 왜곡'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친일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강제로 끌려간 사람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일본군인이 되겠다고 입대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백선엽 씨를 '근거없이 친일파로 매도한다'는 주장도 거짓"이라며 "일본에서 발행된 백선엽 씨의 책을 보면 '조금 후회스럽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만주군 간도 특설대 시절 본인의 친일행적을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드는 노력도 해야겠지만 유족들이 계속 이장을 거부한다면 비석 옆에 친일행적에 대한 안내표식을 설치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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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28일 여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백선엽 장군(예비역 대장)의 현충원 안장 불가론과 관련해 "백 장군은 현충원 안장 대상이고, 다른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박 처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를 만나 "서울 현충원은 보훈처 소관이 아니지만 (소관인 국방부에) 확인해보니 장군 묘역이 만장이고, 대전 현충원으로 모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보훈처 직원이 백 장군을 찾아가 "현충원에 안장되더라도 쫓겨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보도가 논란이 되면서 박 처장에게 해당 내용을 추궁하는 자리가 됐다.

이 자리에 배석한 육군 출신 한기호 당선인이 "생존해계시는 상황에서 (안장을 논의한 것은) 지나치지 않나"라고 지적하자 "미리 상담을 해보고 (의사를) 확인하고자 하는 취지였는데 확대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좋게 해석해주시면 좋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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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재향군인회는 지난 27일 발표한 성명에서 “백 장군은 창군 멤버로서 6·25 전쟁 시 최악의 전투로 알려진 낙동강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며,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평양 탈환 작전을 성공시켰다”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공인한 전쟁 영웅”이라고 했다.

백 장군이 이끈 1사단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군 1기병사단, 24보병사단 등과 치열한 북진 경쟁을 벌였다. 백 장군의 부대가 결국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했다. 평북 운산까지 진출한 1사단은 중공군의 반격에 밀려 다른 유엔군과 함께 38선 이남으로 후퇴했다. 전쟁 중 1사단은 미군들로부터 “가장 잘 싸운 한국군 부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전쟁 중에도 국군과 경찰 유자녀, 전쟁 중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위해 ‘백선 유아원’을 설립했다. 1951년11월엔 야전전투사령부 사령관에 임명돼 지리산 빨치산 소탕작전 등에서 공을 세웠다.

1952년 만 31세의 나이로 한국군 사상 최연소 육군참모총장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33세엔 한국군 최초의 대장이 됐다. 영어를 잘 구사해 전쟁 중 미군(유엔군)과의 소통에도 역할이 컸다. 미 밴 플리트 장군과 함께 한국군 증강 계획을 세워 한국군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1954년엔 제1야전군을 창설하고 사령관에 임명돼 43개월 동안 재임하며 야전군의 기틀을 다졌다. 1957년엔 두번째로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백 장군을 폄훼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친일 행적 논란의 핵심은 일제시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경력이다. 간도특설대는 폭파, 소부대 행동, 잠입 등을 주임무로 했던 일본군 특수부대였다. 백 장군은 일본어판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며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고 적었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대목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 등은 이같은 내용 등을 토대로 백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포함시켰고, 김홍걸 당선자도 같은 취지의 주장을 폈다.

백 장군은 이에 대해 지난해 6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간도특설대로 발령받아 부임한 1943년 초엔 항일 독립군도, 김일성 부대도 일본군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에 밀려 간도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버리고 없을 때였다”며 “독립군과 전투행위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일본어판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 근무 시절 조선인 항일 독립군과의 전투가 있었던 것처럼 기술한 데 대해 “1930년대 간도특설대 초기의 피할 수 없었던 동족 간의 전투와 희생 사례에 대해 같은 조선인으로서의 가슴 아픈 소회를 밝혔던 것”이라고 했다.

백 장군은 그동안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 등의 주장에 대해 언론 인터뷰나 법적 대응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백 장군의 측근은 “주위에서 명예훼손 등으로 법적인 대응을 하거나 공개 반박 등을 해야 한다는 건의를 드렸지만 백 장군은 대응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셨다”고 했다. 일각에선 백 장군이 1944년 중국 공산당 팔로군 토벌작전에도 참여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백 장군은 이에 대해 “간도특설대의 박격포 지원 후방 소대장으로 주력부대가 아닌 단순한 경비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 SNS

6·25전쟁 영웅인 백 장군에 대해 한국군보다 오히려 미군이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로 부르며 극진히 예우해 왔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은 이취임식에서 한국군 관계자들을 언급할 때 백 장군을 가장 먼저 호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한미군은 2013년 그를 ‘명예 미 8군사령관’으로 위촉해 각종 공식행사 때 주한 미 8군사령관과 같은 예우를 해왔다. 지난해 11월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마이클 빌스 미 8군사령관 함께 한국 나이로 100세 생일을 맞은 백 장군을 찾아 축하 인사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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