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 호반열녀길 ] 초록호수 너머 지줄대는 옛이야기 속으로
  • 조길상 기자
  • 승인 2020.06.0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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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인가 바다인가. 관동묘려 가는길에 펼쳐진 호수풍경에 마음을 씻는다.

 

 

숲 속의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6월
6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버린/ 아카시가 꽃타래
6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 찬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 이해인 '6월엔 내가'

계절의 여왕이 물러나고 청록 가득한 6월에 들어섰다. 한낮이면 아침의 쌀쌀함에 입고나온 긴 소매 옷이 제법 야속하게 느껴진다. 올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예측에 벌써부터 ‘올 여름을 또 어떻게 나야 하나’ 하는 걱정이 무심결에 툭 튀어나오지만 언제나 늘 그렇듯 이 또한 흘러갈 터이다. 시작도 하지 않은 일을 걱정해 무엇 하랴. 마음의 평안을 찾아 대청호오백리길 3구간, 호반열녀길을 찾았다.

 

 

근장골 전망대에 오르면 초록 섬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호반열녀길의 특징이라면 누군가는 심심하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편안하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대청호반을 따라 오르내리며 걷는 게 아닌 잘 닦인 포장도로를 따라 걸으면 되기에 다른 구간에 비해 심심 혹은 편안한 감정이 드는 것이리라. 호반열녀길의 시작점인 냉천버스 종점에서 오늘의 여정은 시작된다. 버스가 다니는 길답게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유유자적 걸음을 옮기면 3구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근장골 전망대’가 나온다. 물론 본궤도에서 잠시 벗어나야 하지만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이정표로 근장골 전망대를 설명할 정도니 잠시간의 외도는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근장골 방향 외길을 따라 오르길 20~30분 드디어 목적지가 나타난다. 제법 가파른 구간도 있지만 이곳 역시 포장이 잘돼있어 걷는 데 불편함은 없다. 다만 제법 뜨거워진 날씨와 경사진 길을 걷다보니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건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근장골 전망대에 올라 보이는 대청호의 비경을 바라보면 시원한 바람과 물 한 잔 들이키면 해소될 불만이니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미륵원 남루
미륵원 남루

 

다시 돌아 나와 이제는 냉천골 삼거리를 향해 걷는다. 길옆으로 하늘에 닿을 듯이 자란 키 큰 나무들이 길손을 위해 해를 막아주는 시골길을 걷다보면 물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고 해 ‘양구례’라는 이름이 붙은 곳과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는 마산동산성을 지나쳐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냉천동삼거리에선 3구간의 이름에 ‘열녀’가 왜 포함됐는지를 설명해줄 관동묘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관동묘려에 도착하기 전엔 고려 말 이웃과 함께 사는 미덕을 발휘했던 회덕황씨(懷德黃氏)네 발자취, 미륵원(彌勒院)을 만나게 된다. 사설 여관으로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던 이곳은 훗날 구호활동부터 사회봉사까지 그 영역을 확대했다. 사실상 대전 땅에 처음 들어선 민간사회복지기관인 셈이다. 과거의 미륵원 자리는 수몰돼 현재는 볼 수 없지만 미륵원지 앞 비석에 새겨진 글귀만으로 이곳에서 선행을 펼쳤을 그들의 뜻을 알 수 있다.

 

은진송씨 가문의 조상들을 기리는 추원사
유씨부인을 기리는 관동묘려

 

 

미륵원을 지나 오른쪽에 대청호를 바라보며 걷다보면 은진송씨(恩津宋氏)의 효심(孝心)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관동묘려다. 이곳은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당시 풍습(재가·再嫁)과 달리 일부종사를 고집하며 아들(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을 훌륭히 키운 것은 물론 시부모 또한 극진히 섬겨 열부(烈婦)로 정려(旌閭, 효자·충신·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풍습) 받은 유씨부인의 장례를 지내고 건축한 재실이다.
관동묘려에 담긴 효를 가슴에 담고 호반열녀길의 마지막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마지막 포인트는 평지로 이뤄져 있으나 ‘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은 곳, 바로 마산동 전망대다. 과거엔 마산동삼거리에 있는 주차장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전망대로 변신한 이곳, 대청호를 향해 불룩이 솟아 있는 탓에 흙길을 따라 걸으면 대청호의 물소리가 들려온다. 전망대에 이르러선 햇살이 잘게 부서지는 대청호의 모습도, 저 멀리 보이는 슬픈연가 촬영지도, 방축골의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글·사진=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

 

관동묘려 가는길에 마주한 대청호
근장골 전망대에서 본 대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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