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노사연구원 노무사

 

공사현장과 대략 5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변사체가 발견됐다. 망인은 홀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로 미혼이며 자녀도 없었다. 경찰 수사 결과 열사병에 의한 사망(직장체온 41.7도)으로 추정됐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당시 폭염주의보 35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상태였다. 회사에서는 노동부 권고에 따라 얼음물과 그늘 막 등 쉼터 등을 제공했으나, 작업공정상 근로자가 임의로 또는 수시로 쉴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회사는 망인이 작업구역을 벗어난 지점에서 사망한 만큼 업무 외 재해로 주장했다.

이에 우리 사무소는 회사의 관리감독상의 책임 등을 이유로 업무상 재해를 주장했다. 블랙박스 영상에서 망인이 혼자 걸어오다가 사고 현장 부근 풀 속에서 쓰러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검토건대, 망인은 심한 고온에 열사병 증상으로 의식장애를 일으켰으며, 생존본능으로 귀가하려다가 중간에 쓰러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사망에 이른 것으로 판단됐다.

다행스럽게도 우여곡절 끝에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하지만 뜻밖에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망인은 처나 자녀가 없는 홀몸이었으므로 산재법상 유족급여 수령권은 형제자매로 지정된다. 3명의 형제와 2명의 자매가 유족급여를 균분할 것이다. 그런데 이 중 1명의 형제가 이미 죽었고 그의 처와 조카가 있는 경우였다. 유족급여가 민법상 상속재산이라면 이들에게도 균분하지만 산재법은 이와 다른 것이 문제였다. 이들은 다른 형제자매보다도 생계에 어려운 처지였다. 입법의 미비로 생각됐다. 아마도 형제자매뿐 아니라 조카에게도 유족급여의 일정 부분이 돌아가는 것이 외롭게 죽은 망인의 뜻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15여 년 전의 경험담이다. 식당에서 일하는 대학생이 늦은 밤 배달하다가 번화한 도심 사거리에서 오토바이 배달사고를 당해 현재 의식불명의 상태라는 것이다. 산재보험 미가입 사업장이지만 업무상 재해가 맞다면 산재처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노부부의 희망이자 유일하게 온전한 자녀였다. 취업이 곤란할 정도의 정신지체 장애인 자녀가 있었고, 노부부 역시 당뇨와 뇌졸중 증세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노부부는 의식불명인 아들의 치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다행히 산업재해로 인정됐지만, 건강하고 똑똑했던 아들은 식물인간이 됐다. 해당 요양급여 기간 동안 휴업급여가 지급됐다. 노부부는 이 돈으로 정신지체 장애인인 다른 아들을 보살피며 살고 있었다. 이후 5년이 지나고 우리 사무실에 연락이 왔다. 눈만 말똥말똥하던 아들이 죽었다고 노부부는 울먹이며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담당자가 오랜 기간 침상에서 누워만 있었으므로 산재법상 유족신청이 거절될 수도 있다고 한 모양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조의금을 드리고, 노부부를 안심시켰다. 결과는 당연히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노부부는 일정 부분의 유족연금을 받게 됐다. 아들의 휴업급여와 유족연금으로 생활해야만 하는 노부부의 슬픔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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