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코로나19’로 우리가 그동안 누렸던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쉽지 않음을 확인하면서, 거리낌 없이 서로 만나 웃고 얘기하며 음식을 나누는 소박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슴 저리게 알게 됐다. 일상의 귀중함에 대한 인식은 세계사를 뒤바꾼 집단 전염병의 유행기에 반복됐음을 돌이켜 보면, 그 유사성에 소름이 돋는다. 160년대의 고대 로마에서 유행한 안토니누스역병을 잘 통제했던 이지적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살아있는 것, 숨 쉬고 사색하고 즐기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특권인지 생각하라.”

생활 속 거리 두기가 강조되면서 숲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야외에서 모처럼 마스크를 벗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길을 걷는 호젓한 즐거움 때문이리라. 지난달 말에 지인들과 금강수목원을 일주하는 등산을 했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매끈한 몸매의 목백합을 발견하고 반가움으로 나무를 올려다봤다. 연초록 잎새 사이로 튤립 모양의 녹황색 꽃이 수줍은 듯 피었다. 서대전 네거리에서 유성으로 가는 길가에 의젓하게 늘어선 목백합이 떠올라 반가움이 앞선다. 오류동 방직공장 앞쪽에 작은 방 한 간에서 신혼살림을 살 때, 버스를 타러 큰길로 나가면 목백합이 연초록 잎새를 흔들며 반겼었다. 해마다 유심히 보면 어버이날 즈음에 잎새 사이로 오렌지색을 머금은 튤립 모양의 꽃이 핀다. 그 예쁜 모습을 아내에게 전하니, 아내가 다니던 춘천여고를 상징하는 나무라며 좋아했다.

당시엔 대전시를 상징하는 나무로, 늘씬한 몸매에 부끄러운 듯 예쁜 꽃잎을 감추던 그 조신함과 우아함이 대전시의 품격을 높여준다 여겨 더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얼마 전에 확인해 보니 목백합이 미국에서 들어온 외래수종이라며 1999년에 소나무로 대전시를 상징하는 나무를 변경했다고 한다. 우아하고 품격 높은 대전시민의 정신을 소나무가 상징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100년 전에 우리나라에 전해져 높은 탄소 저감효과와 쑥쑥 자라는 속성수로 전국에서 시민의 사랑을 받는 가로수를 굳이 바꾸어야 했는지 아쉬움이 남았다.

소나무는 세종시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인접한 두 도시가 같은 나무를 상징목으로 정해 푸른 기상과 군자의 절개를 똑같이 내세우는 것은 좀 안이한 태도로 보인다. 세종시의 가로수로 눈에 띄는 나무는 대왕참나무와 칠엽수다. 대왕참나무는 둥글고 작은 도토리가 열리고 잎새는 단풍나무 같아서 참나무와는 다른 정취를 풍긴다. 아직은 수령이 어려 가냘픈 모습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듬직한 모습으로 짙은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칠엽수는 가을에 호두 모양의 열매가 열려 자세히 보니 작고 둥근 밤 모양의 씨앗이 들어있다.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서 확인해 보니 일본산 칠엽수로 서양의 가시 칠엽수인 마로니에와 비슷한 나무였다. 서울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마로니에도 일제 강점기에 심은 일본 칠엽수지만,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이나 상젤리제 거리의 멋진 마로니에 가로수를 떠올려 마로니에로 부르니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렇게 이름을 확인하고 보니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1971년 유행하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란 가요에 나오던 ‘마로니에꽃’을 보지도 못하고서 그 이국적인 이름에 매료됐던 기억이 떠올라 더 정감을 느꼈다. 그 노래를 부른 매혹적인 목소리의 가수는 이제 80대가 됐다고 한다. 하긴 내가 손자 넷을 둔 60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됐으니 그러려니 싶다. 5월 말경 아직 어린 마로니에를 유심히 살펴보니 하얀 원추형 아이스크림 모양의 꽃이 피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작은 꽃 수백 개가 모여 길쭉한 아이스콘 모양의 큰 꽃송이를 이룬 모습이 예쁘다.

나에겐 대전시의 목백합과 세종시의 마로니에가 소나무보다 훨씬 정겹다. 둘 다 자세히 보아야 나무 잎새 속에 숨은 예쁜 꽃을 찾을 수 있다. 작은 풀꽃만 자세히 보아야 하는 게 아니다. 큰 나무에 피는 꽃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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