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 교목

 
주형직 을지대 교목

진리가 과연 존재할까? 젊은 날, 곧잘 고민에 빠뜨리게 했던 질문이다. 경험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라도 상황이 조금 달라지면 진리로 주장할 수 없는 일을 겪게 되면서 진리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지곤 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진리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민에 대한 결론은 매듭을 져야 끝낼 수 있기에 모순되는 두 가지 논리를 진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선 사람들이 대체로 맞다 혹은 옳다고 주장한다면 다른 견해와 입장이라해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진리라고 믿기로 했다. 이것을 배움, 학문, 성숙이라 여긴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모두들 옳다고 주장해도 끝까지 타협할 수 없다면 그것만큼은 진리로 붙들겠다고 결심했다. 절대성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이지만 보편성 없는 개인의 고집을 어떻게 진리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진리를 결론내리고 보니 언제나 이 두 가지 사이에 조화가 어려운 숙제가 됐다. 도무지 어떤 것을 바꾸고 어떤 것을 붙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급격한 사회발전에 따라 패러다임 전환이 빨라지고 개인의 생각을 존중해야 되는 사회분위기에서 옳고 그름의 경계를 세우는 것이 힘들게 된 것이다.

섣부르게 정의내린 결과는 정신적 혼돈을 초래하는 법이다. 어느 것도 진리로 주장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맞고 누군가는 틀린 것이 아니라 모두 맞을 수 있고 모두 틀릴 수도 있는 상황은 혼돈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현실은 자신의 초점과 맞지 않아 버걱거리고 무엇을 입든 불편한 옷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런 가운데서 만난 종교는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통로와도 같았다. 세상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고 성찰하면서 취할 것과 버려야할 것을 가려내는 기준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기준은 오랜 세월 검증되고 용인됐으며 사회질서를 견인하는 역할을 감당했기에 비교적 안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종교 역시 상식과 보편의 옷을 입어야 한다. 사회 문화는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따라 변하게 된다. 과거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않으면 과거에 갇혀버릴 수밖에 없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달라진 현실을 대면하는 일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코로나 이후시대(Post Corona)의 대비가 우리사회 중요한 어젠다(Agenda)가 됐지만 여전히 감염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우리사회에 던진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사회곳곳에 감춰지고 취약한 것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고약한 감염병은 어둡고 음침하며 가려지고 취약했던 사회이면을 밝혀내고 들춰내며 돌아보게 한다.

평온한 일상이라면 결코 관심 갖지 않은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사회병폐와 병리적 그늘이 드러나면서 사회 곳곳이 얼마나 아파했는지를 깨닫게 한다. 코로나 초기 한 사이비 종교에서 비롯된 집단감염을 통해 이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였는지를 알게 했다. 또한 콜센타와 배송물류센터의 집단감염을 통해 감춰지고 취약했던 그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은 감춰진 성소수자의 현실을 들춰냈고 소규모 종교행사를 통한 집단감염 역시 교회의 공공성이 얼마나 부재했는지를 알게 했다. 아울러 개인의 일탈과 거짓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사회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회질서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규칙과 규범의 중요성도 일깨우고 있다.

이를 지키는 것은 사회적 책무에 해당되지만 위반한 대가는 치명적이다. 집단 감염이 드러난 현장은 공교롭게도 규칙과 규범을 무시하고 책임을 회피했으며, 숨겨지고 감춰지며 취약한 곳들이다. 코로나로 인해 멈추고 돌아보지 않았다면 쉽게 발견하지 못했을 그늘이었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숨겨지고 감춰진 것이 드러난 것을 계시라고 말한다. 종교는 이 계시를 진리라고 말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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