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대전시 공동기획 : 2020 대전 청년을 말하다] 11. 박기태 ㈜청년목공소 대표
  • 이준섭 기자
  • 승인 2020.06.14 1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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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우직하게 목공에 빠져 23년
“제품 디자인만 하면 곧장 만들어
빠른 성취감에 마음 사로잡혔다”
“목공소는 청년들 내일 여는 공간
시행착오도 겪으며 꿈 채워가길”
박기태 ㈜청년목공소 대표가 고교 재학 중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훈장증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준섭 기자
박기태 ㈜청년목공소 대표가 고교 재학 중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훈장증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준섭 기자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청년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사회엔 자신을 자신의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꿈을 그려나가는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취직’으로 대표되는 정형화된 청년의 삶을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자신의 업(業)으로 만들어내는 청년들이다. 여기엔 소통과 협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 ‘직업’인 경우도 포함된다. 청년의 삶에 있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도전적인 대전지역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사회 혁신을 이뤄가고 있는지 기록한다. 편집자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사계절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매력을 가진 나무는 이미 오랜 세월을 우리 일상과 함께하고 있다. 책상, 장롱, 서랍 등 나무가 아닌 게 거의 없을 정도이니 퍽 그렇다고 할 만도 하다. 어쩌면 그가 목공 분야에 발을 내디딘 건 나무에 깃든 그 우직한 천성(天性)에 매료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불혹(不惑)을 바라보며 어느덧 30대의 끝자락에 선 그는 목공을 무기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목공을 통한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 창출, 청춘들의 터전을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박기태(38) ㈜청년목공소 대표를 만났다.

◆ 어른을 향해 달린 30대

젊은 스물의 아쉬움을 지나 그는 어느덧 안정적인 마흔의 설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렇게 어릴 적 꿈꿨던 어른과 닮아가고 있는 박 대표는 지나온 30대를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정신 없었던 때로 정의했다. 무모하고 용감했던 20대에서 완전히 발을 뺀 건 아니지만 어른의 역할을 요구받기엔 아직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바쁘게 뛰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에서다. 고향 대구를 떠나 서울로, 서울에서 대전으로 둥지를 튼 지 3년 차, 타향살이는 만만한 게 아니었단다. 그렇게 그의 30대는 외롭지만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다.

“아내의 본가가 대전이에요. 둘째 아이 출산 후를 고민하니 처가가 있는 대전으로 거처를 옮기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전에서 사는 건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각오는 하고 내려왔는데 마땅한 목공 일은 없었기 때문이죠. 대출받아서 직원들 유지하고 겨우겨우 버텼더니 올해는 그래도 숨통이 트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힘든 고생 다 했어도 박 대표는 오로지 목공이 제일이다.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게 목공의 특성인데 전국 어디든 3시간 내로 주파가 가능한 대전과 달리 지리적으로 치우친 곳인 자신의 고향 대구에 처가가 있었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 그다.

“사실 목공 일은 어디에 가서 하든 큰 상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공일 자체가 어려워도 물류비를 조금 더 쓰면 그래도 괜찮거든요. 대전은 전국 어디를 가든 3시간 안팎인 게 장점인 것 같습니다. 제 활동반경이 전국권이라 서울만 해도 대전에 온 이후 일주일에 절반은 늘 다녀오곤 했으니까요.”

◆ 목공, 그리고 나의 청춘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하던 때부터 나무와 연(?)을 맺었으니 박 대표가 목공과 같이한 세월만 어언 23년째다. 뭇 사람들처럼 그도 마찬가지로 자아, 커리어, 연애와 가정, 친구 등 무엇 하나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인생의 우선순위도 명확해졌다. 겸손하게 삶을 사는 것, 박 대표는 자연의 일부인 나무를 통해 이를 실천하고 있다.

“목공기술을 배운 건 1998년부터입니다. 대학에서도 공예를 전공했어요. 어떤 사연이 있다기보단 순전히 나무를 만지고 싶어서였죠. 20여 년 나무를 만지면서 살아왔는데 워낙 변수가 많은 소재라 작업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안 괴롭게 할 수 있을까’ 애를 태우기 일쑤예요. 역시 사람은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그 나름의 끌림이 있기 마련이다. 그가 목공에 이끌린 건 다름 아닌 성취감 때문이었다. 있는 재주를 요령껏 살려 침대나 가구를 손수 만들어 박 대표의 집에도 들여놓았을 정도이니 목공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연을 물어 무엇하랴.

“목공은 빠른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목재가 다루기도 쉬워서 가구나 뭘 만들어도 일반 건축보다도 기간이 짧고 내가 만들려는 제품을 디자인만 하면 곧장 결과로 나올 수 있으니까요. 집에도 손수 만든 침대와 가구들이 있지만 모두 다 그런 건 아닙니다. 만드는 것도 좋지만 사는 게 더 손쉽다는 이점은 절대 못 따라가죠.”

목공에 한해선 그의 뛰어난 손재주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연륜을 머금으며 숙성되고 있지만 좀처럼 성한 곳 없는 몸은 정반대다. 박 대표와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에겐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휴대전화 벨소리가 참 바쁜 일상을 보여주지만 속내는 다르다. 연신 ‘죄송합니다’를 외치던 그가 “제가 몸이 성치 않아서 친한 선배가 자기 좋은 물 마신다고 한 박스 가져다주신다네요”라며 불현듯 내뱉은 한 마디에 묘한 웃음이 터진 까닭이다.
 

◆ 청춘터전 ‘청춘목공소’

요즘 박 대표는 청년공간을 만드는 일에 여념이 없다. 취업과 공부, 창업, 연구, 놀이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근거지를 조성하는 것인데 그는 이곳을 목공 메이커 스페이스로 꾸미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안고 있다. 전국을 뒤덮은 코로나19 여파에 멈칫할 법도 한데 청춘목공소가 안착하면 국가기술자격증 취득 지원을 위한 강좌 개설 등 나름 포스트 코로나 구상도 가지고 있다.

“건물 1층은 카페, 휴게공간 등으로 꾸미고 지하에는 목공소를 만들려고 합니다. 목공을 진로로 선택하거나 여기서 기술을 배워 직업을 선택하겠다는 친구들에겐 안성맞춤이겠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청년들이 목공에 관심갖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여타의 수익사업을 하기보단 목공메이커 문화를 알리는 게 주목적이에요.”

청년이 청년으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한탄이 나오는 세상이다. 청년의 치기 어림이 쉽게 공격받는 오늘날 세태가 그렇다. 그래서일까. 박 대표는 청년목공소에서만큼은 청년들이 마음껏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공이란 수많은 실패를 통해 얻은 경험이 축적돼 나온 결과물임을 누구보다 그 스스로 잘 알고 있어서다.

“‘왜 하필 쉬는 곳이 목공소냐’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목재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게 제 직업이고 생계 현장인 목공소잖아요? 청춘목공소가 만든 청년공간이 그들의 응어리진 마음의 빈 공간을 메우는 역할을 했으면 해요. 이곳이 청년들에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징검다리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박 대표는 도서관처럼 지역 곳곳에 있는 청년목공소를 꿈꾸고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겐 진로체험 공간, 청년에게는 직업 교육의 장, 기술을 필요로 하는 시민에게는 말 그대로 마을 목공소가 되길 갈망(渴望)한다.

“사회 구성원을 위해 그게 기술이든 진로든, 정책이든 청년목공소가 뭔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을 거예요. 마을과 시민의 열린 목공소를 만들기 위해 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운명은 그저 찾아드는 우연이 아니다. 목공에 대한 간절함 깃든 숱한 선택에 의해 오늘의 그가 존재하는 것처럼 포기와 망설임 없는 결정이 운명을 좌우한다. 청년공간을 넘어 마을과 함께하는 목공소를 만들겠다는 박 대표가 다시 운명의 타이밍을 노리는 이유다.

글=이준섭 기자 ljs@ggilbo.com·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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