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보 거듭하는 진실 바로잡기
뼈아픈 해방 후 친일 청산 좌절
“가혹하게 성찰해 개혁적 청산해야”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호국보훈의 달을 지나고 있지만 그들의 호국을 제대로 평가하고 보훈하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역사의 흐름 속 은폐된 허위를 들춰내 부끄러운 사실을 진실에 바탕을 두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답보를 거듭하고 있어서다. 해방 75년이 지난 지금까지 풀지 못한 숙제인 과거사 청산, 정녕 해법은 없는걸까.

우리 역사는 무엇 하나 온전히 정리해본 적이 없다.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의 역사도, 불행했던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독재 청산도 해내지 못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일제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켰고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그들의 통제 아래 놓였던 만주군 중위 출신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년간 군사독재의 주인공이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피의 학살을 자행하고 군사독재를 계승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대한민국은 여전히 매국을 해도, 이적을 해도, 쿠데타를 일으켜도 떵떵거리며 큰소리칠 수 있는 나라다. 청산 못한 과거사의 업보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과거사 청산이 지지부진한 원인을 친일파 정리 실패에서 찾는다. 해방 후 건국 과정을 주도한 정치 세력의 근간이 친일파였던 게 뼈아팠다. 이진모 한남대 사학과 교수는 “광복 이후 미군정 기본정책은 한반도 점령 통치에 방점이 찍혀있었고 친일파 청산이나 민주화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며 “미군정은 점령 통치의 안정을 위해 친일 인사를 적극 동원했으며 이들은 건국을 주도하는 정치 세력이 돼 훗날 반공, 친미주의자로 변신했다”고 꼬집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친일 과거사 청산이야말로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하는 것이자 동시에 헌법 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며 국민 모두의 과업”이라면서 “정의 없는 권력은 제복 입은 강도와 같다. 과거사 청산은 다소 지연될지라도 국가가 시효 없이 항구적으로 추구해야 할 기본적 가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사 청산은 지속적인 성찰 과정이어야 하며 개혁 지향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가혹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뒤늦게 철거된 전 전 대통령의 현판부터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논란, 안팎으로 끊이지 않는 과거사 망언 등 제 때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어두운 그늘을 벗어날 수 있다. 이 교수는 “세계의 과거사 청산은 그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진행됐는데 이 가운데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 국가 범죄와 인권 침해를 조사한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좋은 사례”라며 “과도하고 성급하게 추진하면 오히려 역풍이 분 경우도 적잖기에 철저한 역사 연구, 토론을 통해 성숙한 역사 문화를 키우는 것이 느려 보이지만 과거사 청산의 가장 본질적인 해법”이라고 진단했다.

방 실장은 “과거사 청산은 과거사정리위원회와 같은 법적 기구의 진상규명을 기초로 해서 민주시민교육을 통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며 “향후 10년 내에 가해자와 피해 당사자가 모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대비해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어떻게, 무엇을, 왜 교육해야 하는지 각계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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