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우리가 무엇인가 스스로 옳다거나 정당하다고 확신하는 것에 깊이 빠져들다보면 종종 곁길로 빠질 때가 많다. 이념, 믿음, 학문, 정책이나 전통에 깊이 관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도 우리들의 의식이나 행동은 마치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나 활동이 곧 영원무궁할 것처럼 믿거나 생각하면서 할 때가 많다.

가족끼리 형제끼리는 우애가 있어야 한다거나, 부부 간에는 갈라지지 않고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이나, 민족 간에는 갈등 없이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느 한 때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런 것들이 이데올로기로 만들어질 때의 상황은 항상 변함없는 진리로 존속하지 않는다. 설령 그런 어떤 인연이나 연관이 없다고 할지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우애하고, 사랑하고, 사이좋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보편 인간의 문제를 형제나 친구나 민족이라는 것으로 좁혀서 생각하면 언제나 큰 모순에 스스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단 말이다.

우리 한반도 남북 간의 관계도 그러하다. 한 민족이라고 하여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이데올로기다. 상황에 따라서 때때로 갈라져서 다른 체제를 형성하고 살 때도 있고, 상황이 되면 하나로 합하여 살 수도 있다. 실제가 이제까지 그래왔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두 나라로 갈라져서 갈등하는 것이 정당하고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두 나라로 갈라졌다고 할지라도 사는 것은 평화롭게 사이좋게 살 수는 있다고 본다. 나는 우리 한반도에서는 한 민족을 강조하거나, 한 민족이기에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체제와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것이 더욱 큰 과제라고 본다. 그러므로 남북 간에는 민족이라거나 동족이라거나 형제라는 정에 호소하는 말이나 정책으로 나가는 것은 옳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동족이지만 두 체제로 갈라져서 산다는 것은 기정 사실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통일이라는 것에 집중하면 매우 폭이 좁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의 통일부는 남북관계부라든지 뭐 이런 비슷한 이름으로 바뀌는 것도 좋다고 본다.

한 동안 남북관계는 어느 정도 기대를 걸어도 좋을 만큼 분위기가 좋아질 듯이 보였다. 남북의 정상들 간에 주고받고 합의한 것들은 내가 보기에 매우 긍정스러운 것들이었다. 그 합의대로 되기만 하면 전쟁 없이 사이좋게 살 수 있는 한반도를 그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살아가는 것은 남북한만의 이야기나 합의로 되는 것은 아니다. 너무 복잡하게 얽힌 국제관계가 함께 풀어져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북미관계가 원활히 풀어지면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무성의하거나 무책임한 자세로 모든 기대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에 따라서 남북 간에 합의된 것들도 진행되고 실행되는 것이 없다. 이것에 실망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남북이 똑같다고 본다. 그러나 더욱 실망을 표현하고 공격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것은 북쪽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최근 며칠간 북쪽에서는 아주 강한 어조로 남쪽을 공격하여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게 하였다. 이 국면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양 정상에게 건의한다.

1. 김정은 위원장과 북쪽 정부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은 유연할 필요가 있다. 민족 자주와 강성국가 주장을 이해할 수 있지만, 혼자서 사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듯이 부드러울 필요가 있다. 최신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함으로써 모든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라고 본다. 무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본다. 물론 세계 모든 나라들이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고 확보하지만, 시대착오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이라고 본다. 그런 대결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으로 나가야 할 때라고 본다. 남북관계나 대외관계를 그렇게 유연하게 전환하면 좋겠다. 그에 앞서서 위원장 한 사람에게 부여하는 ‘최고존엄’이란 이데올로기를 버리는 것이 좋겠다. 모든 인간, 생명체는 다 존엄하다. 그러므로 ‘최고존엄’을 인민들에게 돌려주기 바란다. 인민 자체가 ‘최고존엄’한 존재다. 다른 나라의 지도자나 시민도 ‘최고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실제로 그렇게 대하여 주면 좋겠다. 지나치게 상대방을 모욕하는 일은 서로 삼가는 것이 좋다. 지금의 한국정부만큼 북쪽을 안고 인정하고 함께하려는 정부를 세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것을 짓밟거나 무시하는 험한 말들을 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겠지만, 함께 존엄한 존재들이다.

2.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상생의 정책과 구상은 옳다고 본다. 특히 한반도에서 어떤 형태의 전쟁도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 그것을 위하여 남북 간에 대화하고, 북미 간의 대화를 주선하고 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답답한 일이지만. 그래서 북쪽에서 아주 험하게 모욕하는 발언을 듣게 되었고, 남쪽 일부에서도 비굴하다거나 허약한 존재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지금까지의 기본 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가야 한다고 본다. 다만 미국의 눈치나 정책에 지나치게 신중하게 대하지 않고, 남북 간에 합의한 것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상당한 부분 한미 간의 갈등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풀어간다는 입장으로 갈 때 일은 풀어지리라 믿는다. 그래서 예정대로 전시작전통수권을 인수하고, 상당한 부분 독자노선으로 나가면서 국민들을 설득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당차게 나갈 때 국민들은 적극 지지하고 함께 할 것이다. 최근 몇 년간의 일을 보면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단순한 곁가지의 일이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잘 알려 주었다. 우리 문제를 우리 스스로 풀려는 치열한 노력 없이 남의 협조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고 본다. 부드럽지만 당차게 나가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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