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대중의 취향을 폄하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 과격한 말은 도대체 누구의 말일까. 바로 1912년 러시아 미래주의 시인 블라드미르 마야콥스키(Vladimir Vladimirovich Mayakovsky)가 발표한 ‘미래주의 선언문’의 제목이다. 20세기 초 러시아 예술의 최첨단, 최전선에 섰던 마야콥스키의 이 말은 대중을 무시하거나 자기도취에 휩싸인 예술가의 오만함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기존의 취향 혹은 진부한 관념에 결단코 묶이지 않겠다는 예술가의 실험적 태도와 그 의지를 선명히 한 것일 뿐. 앞줄을 맞춘 일반적인 시 쓰기 형태를 탈피해 계단형태의 쓰기구조인 ‘계단 시’로 시각적 시 쓰기를 시도했던 마야콥스키의 실험적 예술세계는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대중들에게 흥미로움과 새로움을 안겨주고 있으니 말이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하고 있는 전시 ‘이것에 대하여’ 역시 시인이 추구했던 것과 같은 동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을 주목하고 있다. 마야콥스키의 동명의 시집 제목에서 전시 타이틀을 빌려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수집된 8000여 점의 소장품 중 유명 서양 현대미술 작품으로만 구성돼 소개되는 최초의 전시다.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돼 민족주의, 국가주의 등 집단주의가 전에 없이 강화되고 있다. 차이를 경계할 수밖에 없는 펜데믹은 인종주의와 이에 대항하는 폭력적 상황의 전개로 이어져 세계가 어수선하다. 2020 광주비엔날레는 물론 아트바젤 등 세계 각국의 국제 행사들은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를 결정했다. 그야말로 집단과 갈등, 경계와 공포가 교차하는 자가 고립의 시대, 고립을 자초해야 하는 시대다.

바이러스로 인한 고립의 시대엔 어떤 곳으로의 여행도, 그 누구와의 접촉이나 왕래도 금지될 수밖에 없다. 금지와 고립의 시대에 이것에 대하여 전시가 제공하는 미덕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루이즈 부르주아, 요제프 보이스, 피에르 술라주, 안토니 타피에스, 로버트 라우젠버그 등 미술사 속 유명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전 지구화시대의 국제적인 스타 작가 윌리암 켄트리지, 왈리드 라드 등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특히 흰 한복치마를 연상시키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설치작품 ‘위안부(1997)’는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직접 제작한 것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로 끌려가 폭력과 착취, 실존이 부정된 위안부 여성에 대한 위로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강한 감동을 준다. 지난 역사가 안겨준 절망과 상처를 예술이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전시는 국제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과 시민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임과 동시에 예술이 추구하고자 하는 새로움이라는 실험정신이 결국 우리 사이에 가로놓여진 경계와 공포, 갈등과 폭력을 걷어내는 일이며 미술관의 수집 행위가 그 모든 것들 간의 대화를 가능하게 했음을 말하고자 했다. 예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은 단절된 것들의 만남과 대화를 이어주는 것이다. 전시를 통해 예술의 미덕을 실천하고자 꿈꿨던 지난 일년 가까운 기간은 큐레이터로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난 아직도 그 미덕이 실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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