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예가, 전 대전시의회 의장

 
조종국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농경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개방성보다는 폐쇄성이 강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특성이라 하겠다. 더구나 그 농경사회의 기본 틀이 대개 집성촌의 동성동본들끼리 살아온 형태이거나 몇 가구가 오밀조밀 모인 취락구조의 특성이 그대로 남아서 배타성을 조장시켜온 것도 사실이다.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들보다는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선 산 넘어 저쪽 마을이 늘 생소하기만 하고 두렵기만 했다. 생소하고 두려운 것은 적대시하게 마련이고 적대시 하다 보니 이쪽에서 그쪽에 가기도 싫고 그쪽에서 이쪽에 찾아오는 것도 전혀 반갑지 않다. 이러한 산간(山間) 취락 형태는 결국 오늘날까지도 큰 강이나 산맥을 중심으로 시(市), 도(道)를 구분하게 됨에 따라 지역감정을 형성·조장해 왔으며, 이는 최근 민주화의 열기와 병행해서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충남이나 대전도 이러한 폐쇄성과 배타성이 비교적 강한 지역이다. 충남은 좋은 의미로 보면 양반의 고장, 선비의 고장으로 전통성이나 역사성이 크게 부각되지만, 나쁜 의미로 보면 쓸데없는 아집과 보수적인 배타성이 아직도 엄존(儼存)하고 있는 지방이라 하겠다. 따라서 충남의 행정·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였던 대전은 1989년 직할시로 승격했지만 충청도의 그런 장단점을 짙게 내포하고 있는 고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폐쇄성 내지 배타성은 자신들끼리만의 밀착성 내지 편애성을 낳게 되고, 이는 어느 지방, 어느 고장 할 것 없이 소위 ‘텃세’라는 기형적 자기애와 이질적 대상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낸다. 이와 같은 편파성은 지방색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크게는 우리나라 국민 전반의 의식구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우선 우리 민족이 한민족이라고 하는 단일혈통의 민족인 점에서도 심한 편파성 내지 편애성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가령 필리핀이나 브라질 같은 나라처럼 동서양 혹은 흑백 인종의 피가 뒤섞인 혼혈 국가라면 편애성이나 편파성이 거의 없고 모든 면에서 개방하고 공생·동조할 수 있는 의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배달민족이니 백의민족이니 해가면서 민족 전체의 순수성과 단일성을 자랑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배타와 반외세(反外勢)의 구호를 많이 내세우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동족애, 동포애, 동향애, 동지애 등의 의식에 투철하고 이는 지방마다의 향토애, 도시·농촌마다의 텃세 등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동일집단의 편애 내지 과보호의 결과를 낳아 흔히 말하는 ‘그룹 파워(Group power)’ 형태로도 나타나게 된다. 그 단적인 예가 지연·학연·혈연 등이고, 그 밖에도 같은 사업, 같은 학문, 같은 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도 이러한 그룹 파워가 위세를 떨치기 마련이다. 행이든 불행이든 필자가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보니 이러한 텃세 내지 그룹 파워는 문화예술계에도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특정인들을 의도적으로 배타하고 백안시하려는 경향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집단적으로, 다시 말해 그룹 파워를 이용해 특정인을 매도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텃세의 횡포라 할 수 있다.

예술 창작은 여럿이 떼를 이뤄 집단적으로 행하는 행위가 아니다. 예술은 오로지 개인적 창조 작업이요, 개인의 재기와 역량으로 표출되는 행위다. 따라서 백 사람이 똘똘 뭉쳐도 어느 위대한 예술가 한 사람의 창작세계를 무시하거나 폄하할 수 없다. 정치에는 다수결이나 집단의 중의가 큰 힘을 발휘할지 모르지만 예술세계에는 결코 다수결이 통하지 않는다. 예술은 작품 그 자체의 우열로 그 가치가 판단되기 때문이다.

충남이나 대전에서도 지방색도 좋고 지방에서 오랜 인연을 맺은 분들의 그룹 파워도 좋지만 이제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문화예술계부터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인 성향을 지양해 나아가야 한다. 문화예술은 특정 지방은 고사하고 국가와 민족도 초월해 범세계적으로, 초국가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보다 폭넓은 인간애와 예술애를 가지고 사소한 텃세에 안주하기보다는 진정한 예술창작을 위해 우리 지방 문화예술인들부터 확 트인 예술관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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