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위원장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조차 없는 코로나19 시대, 우리가 확인한 것은 차별과 불평등이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했고 가장 쉽게 노출되었다. 이대로 가면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더라도 차별은 공공연히 만연하고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 방역 당국이 ‘혐오는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 말을 빌리면, 코로나19 시대에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배제, 혐오, 차별이 아니라 연대와 공존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코로나19를 통해 다시금 확인했듯이, 언제든지 차별받을 수 있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법적으로 보호하거나 구제할 수 있는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누군가 차별금지법은 코로나19 전파를 막는 마스크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내가 받을 수 있는 차별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고 내가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0일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 9명이 국회 중앙홀에 모였다. 그들은 성명서를 낭독한 다음 한쪽 무릎을 꿇고 손팻말을 손에 든 채 8분 46초 동안 묵념했다. 그들이 든 9개의 손팻말에는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성 차별에 반대한다’, ‘#인종 차별에 반대한다’, ‘#장애인 차별에 반대한다’, ‘#지역 차별에 반대한다’, ‘#학력 차별에 반대한다’는 문구들이 하나씩 적혀 있었다.

8분 46초는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에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목이 짓눌려 죽어가던 고통의 시간이다. 미국 의회에서 그랬듯이 우리나라 의원들이 조지 플로이드 추모 행동에 동참한 것이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들이 미래통합당 소속이라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지난 4·15 총선 직전에 42개 시민단체가 주요 정당 국회의원 후보자 384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들은 86%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했던 것을 상기하면 말이다.

차별에 반대하는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용기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거나 적극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거대 여당으로 몸집을 키운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7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우리 정부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권고했지만 14년째 표류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정부 입법으로 법안을 발의했고, 국회에서는 고 노회찬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지만, 두 법안 모두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18대 국회에서는 권영길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19대 국회에서는 민주통합당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각각 법안을 발의했다가 교회 등의 반발로 법안을 철회했고,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20대 국회에서는 법안 발의조차 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2008년 5월 29일, 2012년 5월 29일, 2016년 5월 29일은 모두 차별금지법이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날짜가 되었다.

차별금지법에 관한 한 국회를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3월 9일 인터뷰를 통하여 2020년 9월 발의, 연내 제정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한 것은 반갑고 환영할 만하다. 21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정의당이 각 정당들에게 차별금지법을 공동 발의하자고 제안하고,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보수 종교단체와도 활발히 대화하여 법 제정에 힘을 쏟겠다고 의지를 밝힌 것도 예전보다 진일보한 모습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뜻을 모으고 함께 행동하는 것은 기본 인권을 지키기 위한 저항권의 발로이다. 모두의 인권을 지키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나중은 없다. 모든 차별을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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