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정치는 사회적 가치를 배분하는 행위다. 사회적 가치 배분과정엔 시민이 선출한 대표가 참여한다. 물론 다양한 주민참여제도를 통해 사회적 가치배분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선 선출직 대표가 그 역할의 대부분을 맡는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가치배분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이다. 권한을 위임한 시민은 선출직 대표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사회적 가치를 배분하는지 평가한다.

하지만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인 선출직 대표들은 이를 쉽게 잊는 것 같다. 대전광역시의회 일부 의원들이 그렇다. 대전광역시의회는 후반기 의장단, 상임위원장단이라는 사회적 가치 배분을 앞두고 있다. 대다수 시민은 누가 의장이, 상임위원장이 되는지에 크게 관심이 없다. 다만 그 과정이 합리적이고 공정한지에 대해선 충분히 관심이 있다. 과거 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선출에 잡음이 있을 때마다 시민의 질타가 얼마나 거셌는지 기억할 것이다.

지난 2016년 7월, 8대 의회 개원 후 상황을 기억해보자. 22석 중 21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대표해 김인식 의원이 공식 브리핑에서 “김종천 의원을 전반기 의장후보로, 권중순 의원을 후반기 의장 후보로 추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상임위원장 등 전반기 직을 맡은 의원은 후반기에 직을 맡지 않기로 한 원칙도 재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후반기 원구성을 앞두고 일부 다른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종천 의원은 합의추대가 아니라 경선으로 결정했고, 후반기 후보는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합의를 백지화하고 경선을 통해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의문이 든다. 공식 브리핑을 하고 기사화까지 된 내용이 사실과 다르면 왜 그 시점에 지적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다시 사회적 가치 배분을 생각해보자. 배분의 기준은 무엇일까. 법률, 사회적 가치, 합의, 여론 등이 있다. 기존 대전시의회 의장단, 상임위원장단 배분 기준은 합의다. 합의를 뒤집으려면 이에 걸맞은 명분이 필요하다. 명분이 중요한 이유는 권한을 위임한 시민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합의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거나, 결과를 실행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어떤 것도 명분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가치배분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가 권한을 남용하면 시민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단순히 몇몇 의원들의 다음 선거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의회에 권한을 위임하는 것 자체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이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에서 지방의회의 권한 강화를 반대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신뢰를 쌓긴 어려워도 잃는 건 한순간이다. 시민들한테 “자리싸움만 하는 지방의회 없애야 해”라는 말을 또 듣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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