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경험 통해 장비구조·원리 터득
현상서 필요로 하는 장비제작 집중
국내외 공장에 맞춤형 장비 납품
국가·국제공인교정기관으로 발전

대전 유성구 소재 나노하이테크 전경.

[금강일보 정은한 기자] 상인들이 시장에서 사용하는 저울조차 수입해 쓰던 대한민국이 정밀계량·계측분야에서 자주독립을 이뤄낸 데는 ㈜나노하이테크의 도전이 한몫했다. 이들은 각종 산업용 계량·계측 장비를 개발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장비운용을 이끎으로써 산업품질 향상에 이바지 중이다. 타이어, 식품, 방산, 제약·의약 등 고객이 원하는 계량·계측장비가 있다면 무엇이든 제공할 수 있다는 게 ㈜나노하이테크의 자신감. 30여 년간 쌓아온 기술력의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 아무도 가지 않는 외길을 꿋꿋이 걷고자 했던 고집스러운 우직함일 것이다.
 

김병순 나노하이테크 대표.

#. 1990년 대덕연구개발특구 벤처기업 창업

㈜나노하이테크의 현재를 돌아보자면 김병순(66) 대표의 외길을 먼저 살펴야 한다. 그는 흔히 말하듯, 찢어지게 가난했던 한국의 1960년대 말 첫 직장을 잡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학업을 계속 잇지 못했던 것이 설움이었으나 그는 기술을 배워 일인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열 다섯부터 그릇 점원 등 안 해본 게 없었고, 열 일곱엔 시장용 저울을 납품·수리하는 업체에 발을 들여놓은 게 첫 시작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시장용 저울조차 제작하지 못해 일본 등 해외 제품을 써야 했다. 그야말로 단순한 수리만 할 수 있는 정밀계량·계측분야의 신생아였다. 알음알음 수리 경험을 통해 장비의 구조와 원리를 터득하는 것만이 유일한 배움이었고 그것이 국내 정밀계량·계측분야의 태동이었다.

그렇게 업계에서 잔뼈를 키운 김 대표는 1978년 대전의 한 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디지털 전자저울이 나올 때인 1980년대 중반까지 정밀계량·계측 기술력을 키웠으나 그에겐 기존 장비에 만족할 수 없는 ‘백색의 고집’이 커져만 갔다. 결국 직원 2명과 함께 1990년 대덕연구개발특구 벤처기업으로 창업한 이래 산업현장과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계량·계측 장비 제작은 물론 국내 주요 계량·계측 장비를 교정할 수 있는 국가·국제공인교정기관으로 발전시켰다. 이는 기계·전자·제어·소재분야의 각종 장인과 협업을 통해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하며 계량·계측분야의 선도국가인 스위스·독일·일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제품 다변화에 힘쓴 결과였다.
 

나노하이테크 기업부설연구소에서 김병순 대표와 연구진의 연구가 한창이다.

#. 산업·연구현장의 맞춤형 계량·계측장비 공략

김 대표는 창업 초기 산업현장과 연구기관에서 요구하는 정밀 계량·계측장비에 집중했다. 선도국가들이 점유하는 기존 장비 시장에선 승산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서다. 대신 장비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 마다치 않고 달려갔고, 현재 사용하는 장비들이 현장에 맞게 수정할 경우 매우 큰 비용이 추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로써 저렴한 가격에 맞춤형 장비를 제작하겠다는 틈새 전략을 내세워 한국타이어가 원하는 ‘Bead I.C Tester’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당시 국내 타이어는 1987년경 타이어에 둥근 철심을 넣어 형태를 유지하는 비드 와이어 타이어가 개발됐는데 일정한 구조가 형성됐는지 파악하는 품질관리에 허점이 존재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타이어 국내·외 8개 공장에서 사용하는 각종 타이어 계량·계측장비를 도맡아 나노하이테크를 국내 선도기업으로 키워냈다. 또 유제품과 분유 등의 식품포장 정밀측정분야에 진출한 이래 방산분야 시장도 개척했다. 발사관 통합 검사장비, 박격포 모사장비, 유도탄 무게 중심 측정기 등 방위산업체에서 무기 개발에서 필요한 계량·계측장비가 있다면 기술력을 총동원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장비를 납품했다.

이밖에 제약·의약분야에선 의료 수술에 사용하는 봉합사의 직경을 측정하는 ‘Suture Diameter Measurement System’을 비롯해 제약 시료검사기 등 연구현장에서 원하는 장비를 끊임없이 개발했다. 현재 매년 다수의 신제품에 대한 연구개발과 기존 제품의 성능 향상에 주력해 수많은 특허등록과 해외규격 인증을 획득하고 있으며, 활발한 해외시장 진출에 나서 이를 공로로 2007년도엔 대통령 표창, 2013년도엔 제43회 한국정밀산업기술대회에서 동탑 산업훈장을 거머쥐었다.

 

나노하이테크가 LG에 납품 중인 배터리 두께 측정기.

#. 안정적인 교정 수입 바탕으로 연 매출 100억 원

계량·계측장비의 자주독립에 기여한 ㈜나노하이테크는 월등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2001년부터 한국인증기구(KOLAS)로부터 국가·국제공인교정기관에 지정됐다. 측정기가 측정기다워야 산업현장의 품질과 연구현장의 성과가 혁신되는 만큼 국가·국제공인교정기관의 역량이 매우 중요해서다. 이를 바탕으로 100억 원의 연 매출 중 30~40%의 자금을 매년 안정적으로 확보한 덕분에 유저가 요구하는 맞춤형 계량·계측장비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현재 40명의 직원이 국내는 물론 헝가리·폴란드·체코 등에 파견돼 해외 산업현장의 유저가 원하는 장비 납품을 90% 이상 부합하고 있으며, 협력관계인 대기업도 한국타이어, SK, LG 등으로 확대됐다.

그럴수록 직원들의 공을 높게 평가함으로써 15년 근속이자 공헌도가 높은 직원의 경우 몇 년 치 연봉을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파격적인 보상에 나서고 있다. 김 대표 역시 끊임없이 성장하기 위해 뒤늦게 검정고시로 중등, 고등 과정을 거쳐 2016년 한밭대학교 경영회계학과에 진학했고 올해 졸업과 동시에 다시 충남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가는 등 계량·계측장비의 Total Solution을 강화하고자 관련 학문도 수학 중이다. 앞으로 그는 창립 때부터 다짐한 ‘기본에 충실하자’, ‘인화와 가치창조’, ‘신용과 신뢰의 경영’이라는 3대 경영철학을 앞세워 기초와 신뢰가 탄탄한 백년기업 나노하이테크를 이끌 생각이다.

#. 딸을 여읜 아버지, 청년들에게 힘이 되다

그에겐 깊은 슬픔이 있다. 지난 2005년 8월 ‘루프스병’으로 한남대 일어일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딸을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딸의 이름으로 ‘김희진 장학금’을 만들어 그해부터 15년째 한남대에 1억 원을 기탁했고, 또 올해 2월 늦깎이로 한밭대를 졸업한 것을 계기로 교내 한밭페어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한 그룹은 500만 원, 개인 300만 원의 후원금 6년분을 미리 예치해 놓았다.

그는 말한다. “사업을 이끌어오는 동안 주변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은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나 자신이 먼저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유능하고 믿음직한 인재가 나노하이테크와 함께해 준다면 우린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를 선도하는 계량·계측분야의 일인자가 될 것입니다.”

글=정은한 기자 padeuk@ggilbo.com·사진=함형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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