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짙은 초록으로 그 빛을 더해가는 6월.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를 지나 본격적인 더위가 성큼 다가왔음이 느껴진다. 초여름이라고는 하지만 한낮의 이글거림은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코로나19라는 초대형 악재에 초여름 무더위가 겹치며 심신이 지쳐가는 요즘 싱그러운 초록과 물기 가득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가득한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 호반낭만길을 찾았다.

 

녹음짙은 호수 걸음마다 신록샤워
푸른하늘 형형색색 꽃과나무 손짓
보석같은 풍경 마음속엔 초록쉼표

 

슬픈연가 촬영지 가는길에 바라본 대청호

마산동 삼거리에서 시작하는 호반낭만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지난 2005년 권상우, 김희선 주연의 ‘슬픈연가’ 촬영지로 가는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과거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최근엔 제법 널찍한 주차장을 마련, 이곳을 찾는 이들의 작은 불편을 해소했다. 또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도 들어서 편리함을 더했다. 여기에 슬픈연가 촬영지로 향하는 길에도 변화가 생겼다. 데크길 중간에 슬픈연가 촬영지로 바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생긴 것. 과거엔 데크길을 따라 첫 번째 전망대와 ‘대청호오백리길’이라는 한글 조형물이 있는 곳을 지나 슬픈연가 촬영지로 갈 수 있었다면 이제는 슬픈연가 촬영지를 먼저 본 뒤 앞의 두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간 다소 밋밋한 맛이 나던 슬픈연가 촬영지가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리저리 나있던 길도 단정히 정리하고 이곳을 찾은 이들이 쉴 수 있는 정자 등이 들어서는 공원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찾던 명소에 불편함과 아쉬움을 지우고 보다 행복감 가득한 곳으로 다시 태어날 슬픈연가 촬영지를 뒤로 하고 두 번째 목적지인 추동생태습지보호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무성한 가지에 초록이 피어나고 푸르게 물든 호수풍경은 한걸음 쉬어갈 길동무가 되어준다. 사진은 슬픈연가 촬영지 가는길에 마주한 대청호.

슬픈연가 촬영지를 벗어나 추동생태습지보호구역까지 걷게 된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봄이 왔었던가?’라고 할 만큼 너무나도 빠르게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몸소 체험한다. 머리 위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잎 무성한 나무들의 도움을 받아 걸었음에도 이미 옷 곳곳엔 열기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시원한 물 한잔을 들이켰으면 좋으련만 손에 쥔 통 안의 물은 이미 찬기가 사라졌다. 목을 축일 수 있다는 데 만족하며 어렵사리 추동생태습지보호구역에 도달했다.
추동습지보호구역은 ‘보호구역’이라는 데에도 의미가 있지만 억새와 갈대의 환상적인 화음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을 훔친다. 가을이면 바람을 따라 은빛의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그 모습은 아직 제철이 아닌 탓에 볼 수 없지만 이 시절에만 볼 수 있는 녹빛 가득한 그 모습도 아름답다.

 

추동생태습지보호구역
억새와 갈대가 군락을 이루는 추동생태습지보호구역, 여름에는 녹빛 물결이 바람에 일렁인다.

데크길을 따라 큰 도로로 나오면 생태습지와 연못, 실개천, 야생초 화원 등이 조화를 이룬 대청호자연수변공원도 만날 수 있다. 색색의 꽃들과 생명력을 뿜어내는 나무, 시선을 끄는 풍차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정자까지 제공되는 이곳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명소로 이름나 있다. 다만 최근 지역에서 확산세를 보이는 코로나19로 잠시 폐쇄돼 공원 안으로의 진입은 불가하다. 공원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머지않은 그날을 기대하며 다음 목적지를 향한다.
추동취수탑을 지나 산내음 가득한 흙길을 따라 걷다보면 대청호는 가끔 얼굴을 비추고 그 대신 산의 울창함이 성큼 다가온다. 바삐 날며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이 귓가를 간질이고 대청호를 거쳐 불어오는 바람이 땀방울을 훔쳐갈 때쯤이면 다시금 대청호가 얼굴을 내민다. 때로는 흙길이, 때로는 바위들로 가득한 산길이 등장하며 색다름을 선사해주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일상의 스트레스는 온데간데 없고 이 계절에 또 자연이 주는 생명력으로 가득찬다. 글·사진=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