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혹은 애슐리/편견 예찬/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외 30권

▲ 에디 혹은 애슐리 = 김성중 지음

중견 작가 김성중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제63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상속’을 비롯해 모두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성 정체성을 고민하거나 유년 시절 폭력으로 정신적 상처를 받는 등 결핍에 시달리는 인물들과 운동권 학생 시절 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고달픈 인생의 바다에서 각자 삶의 의미를 찾아 항해를 멈추지 않는다.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성중은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개그맨’, ‘국경시장’, 중편 ‘이슬라’가 있다. 젊은작가상 세 차례에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창비. 240쪽. 1만4000원.

▲ 편견 예찬 = 김원우 지음

등단 43주년을 맞은 원로 소설가 김원우의 산문집이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올해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됐다.

문인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느낀 단상과 동료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감상 등을 적었다.

김원우는 소설집 ‘무기질 청년’, ‘벌거벗은 마음’, 장편 ‘짐승의 시간’, ‘모노가미의 새 얼굴’, ‘부부의 초상’ 등을 펴냈다. 동인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시선사. 520쪽. 1만6000원.

▲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 윈스턴 처칠 지음, 임종원 옮김.

영국 총리를 지낸 처칠(1874~1965)이 56세 때인 1930년 출간한 자서전을 번역했다.

아일랜드 총독이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비서였던 아버지를 따라 아일랜드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부터 사관생도, 군인, 종군기자 등을 거쳐 1901년 하원의원으로서 정치를 시작하던 시기까지를 다룬다.

처칠은 명문 귀족의 큰아들로 태어났지만,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낙제생’, ‘문제아’로 취급받으며 ‘탁한 회색빛 상처’로 남아 있는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3수 끝에 겨우 들어간 사관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는 군인이 돼 쿠바, 수단, 인도, 남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며 전쟁에 참여하고 그 경험을 책으로 엮어 유명해진다.

특히 남아프리카에서는 포로가 됐으나 기지를 발휘해 탈출에 성공하고 무사히 귀환해 전쟁 영웅이 됐고 인기의 여세를 몰아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처칠의 인생 전반기를 술회하는 이 자서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홀로 나치 독일과 싸우면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조국을 구해낸 그의 리더십이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투쟁의 결과였음을 일깨워준다.

행북. 448쪽. 2만1000원.

▲ 나, 살아남은 자의 증언 = 김정옥 지음.

100편이 넘는 연극작품을 연출했고 중앙대 예술대 학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진흥원장, 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한 저자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그 아팠던 시절을 회고한다.

소설 형식을 빌린 이야기는 책의 화자 석두(夕杜)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해방과 좌우 이념 대립의 격화, 전쟁과 같은 현대사의 격랑 속을 헤쳐나온 석두는 프랑스 유학을 떠나고, 귀국 후 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가 된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유럽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 대부분이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거나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지만, 프랑스 유학 중 이 사건의 ‘주범’ 윤이상을 만났던 석두는 용케도 피해갈 수 있었다.

월북 후 사리원대학 부학장까지 올랐다가 남파된 중학교 친구 김용구도 체포된 후 석두의 이름을 불지 않았다.

저자는 석두의 입을 통해 “운이 좋아서라면 억세게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지만…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위장된 회색분자라서 살아남았는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그는 “억울하게 죽어간 친구들, 그들을 위해 뭔가 고백하고 증언하고 뭔가 진혼하는 굿판을 벌이고 싶었고,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고 썼다.

늘봄. 284쪽. 1만5000원.

▲ 항일혁명가 최호림과 러시아지역 독립운동의 역사 = 반병률 엮음.

항일혁명가 최호림(1893~1960)은 오랜 분단과 냉전으로 그의 활동무대였던 러시아지역이 우리 역사와 단절되는 바람에 일반 대중에게는 물론 학계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지역의 군사활동과 당 단체 조직, 선전 등에서 지도자로서 면모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시인, 희곡작가, 언론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 책은 문필가로서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 최호림의 여러 작품과 더불어 러시아지역 항일무장투쟁의 역사, 사회주의 건설기의 한인 농촌 문제를 다룸으로써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항일혁명가의 삶을 되짚어본다.

제1부에서는 러시아지역 항일민족운동의 역사를 정확하고 상세하게 정리해 사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 ‘원동변강 고려인생활 역사초록’을 비롯해 논문, 논설, 시 등 최호림이 직접 쓴 글들을 모았다.

제2부에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간행된 한글 신문 ‘선봉’에 게재된 최호림 관련 기사들을 실었다.

제3부는 러시아 항일민족투쟁의 역사, 사회주의 건설기 한인 농촌 문제, 한인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한 ‘선봉’의 기원과 발전 과정 등 1920~1930년대 러시아 한인사회의 여러 문제를 다룬 편저자의 글 세편을 엮었다.

한울엠플러스. 496쪽. 4만9000원.

▲ 나무의 세계 = 조너선 드로리 지음, 조은영 옮김.

영국 런던 큐 왕립식물원의 이사였고 식물에 관한 TED 강연 등으로 인기를 얻은 식물학자가 인간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나무 80종을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한다.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인란디측백은 사생활을 중시하는 영국인들에게 ‘살아 있는 울타리’로 사랑받았지만, 때로는 너무나 빽빽하게 자란 레일란디측백으로 생긴 그늘은 이웃 간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남아프리카에서 자라는 모파인나무는 곤충과 새들뿐 아니라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먹여 살리는 식량을 제공한다. 특이한 점은 사람들이 먹는 것이 나무 열매나 잎, 뿌리 같은 것이 아니라 잎에서 부화하는 나방의 애벌레라는 점이다.

아프리카 케냐의 휘파람가시나무는 가시 밑부분이 속이 빈 호두처럼 부풀어 올라 있고 바람이 불면 거기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공기가 통하면서 고음의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이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정작 염소 같은 동물이 잎을 먹으려고 할 때 나무를 지켜주는 것은 가시가 아니라 그 아래 구멍 속에 사는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다.

아시아 나무들 가운데는 일본 옻나무에 얽힌 기이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북부의 금욕주의 종파 승려들은 몇 년에 걸친 금식과 절식으로 체중을 줄인 뒤 토굴로 들어가 옻나무 수액으로 만든 차를 마시며 스스로 ‘방부 처리’를 하고 천천히 미라가 돼 간다. 끔찍한 탈수상태에서 서서히 죽어간 뒤에도 시신은 썩지 않을 뿐 아니라 너무 유독해 구더기조차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밖에 이 책에 등장하는 세계 곳곳의 나무들은 많은 적든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쳐 왔고 인간 때문에 위험에 처하기도, 혹은 번성하기도 했다.

시공사. 244쪽. 2만원.

▲ 종말의 밥상 = 박중곤 지음.

겉모습만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풍요롭게만 보이는 우리 밥상이 실은 수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 혼란의 도가니임을 파헤친다.

본래의 수확 시기와는 관계없이 사계절 내내 출하되는 ‘공산품 같은 농산품’이 범람하고 있으며 과일은 당도가 극도로 향상돼 설탕 덩어리와 비슷하게 되고 말았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링거주사를 놓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식물을 키우는 ‘양액재배’, 씨앗 없는 과일의 개발도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닭은 자연 상태에서 10년 이상 살지만 육계는 한 달 정도만 살다가 도축장으로 실려 가며 산란계가 낳은 무정란은 인장력이 약해 프라이할 때 노른자가 힘없이 퍼진다.

수컷 호르몬이 사라지게 돼 중성이나 암컷처럼 변한 수소는 사료를 먹고 배설하는 일만 되풀이하다 팔려나간다. 주둥이로 땅을 파는 천성을 거부당한 돼지는 스트레스를 받아 상대의 꼬리나 유방을 물어뜯기 일쑤이며 주인은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새끼일 때 돼지의 송곳니와 꼬리를 잘라 없앤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성 질환도 근본을 따지고 들면 결국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가축 사육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잘못된 밥상을 바로잡기 위해 자연 친화적이어서 생산자가 이름과 사진 등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농·축·수산물 생산과 제철에 생산된 농산물 사용 등을 제안한다.

소담. 248쪽. 1만6000원.

▲ 코로나 자연치유 = 정구영 지음.

언론인이자 저술가, 식물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코로나19 시대에 건강한 몸을 지키기 위해 알아야 할 건강 상식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용 식물 등을 정리했다.

저자는 인산 김일훈의 ‘신약’, 조선 시대 명의 이경화의 ‘광제비급’ 등을 인용해 암·종양·염증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유근피, 천식·염증·비염에 효과가 있다는 마가목 등 약용 식물과 이들을 약초나 차로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또 청나라 진호자가 쓴 ‘화경’에서 “1만년간 수명을 누리는 씨앗’이라고 부른 호두와 최근 약리 실험에서 거담과 진해 작용, 세포 면역 기능의 증강 등 효과가 밝혀진 오미자를 비롯해 폐에 좋은 약용 식물과 그 활용법도 알려준다.

이 밖에 인체 내 다양한 생화학 반응을 일으키도록 돕는 자연산 효소와 식초, 된장·청국장, 김치 등 천연식품을 많이 섭취하고 가급적 가공식품을 멀리하는 식습관을 기를 것을 권한다.

전원문화사. 224쪽. 1만4000원.

▲ 난생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4 = 민은기 지음.

서울대 작곡과 교수인 저자가 막 클래식을 배우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기획한 ‘난처한(난생처음 한번 들어보는)’ 시리즈의 3·4권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다룬 1·2권에 이어 나온 3·4권은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리는 바흐와 헨델의 음악 세계로 안내한다. 전편 두 권이 클래식으로 가는 기초 근육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에 내놓는 두 권은 본격적으로 서양음악의 뿌리인 바로크 음악에 풍덩 빠져볼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3권에서는 모든 음악가의 스승인 바흐의 음악과, 그것이 성장하고 자라는 데 배경의 역할을 한 교회음악의 전통, 나아가 하마터면 잊힐 뻔했던 바흐의 음악이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인 음험한 독일 민족주의의 영향까지 짚어낸다.

4권의 주인공 헨델은 독일 출신이지만 일찌감치 영국 런던에 진출해 외국인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왕과 귀족, 시민 모두에게 크게 사랑받고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책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헨델이 가장 열정을 쏟은 오페라를 비롯해 그의 작품들과 생애를 함께 설명해 나간다.

동시대를 살았지만, 극도로 대비됐던 두 사람의 삶이 어떻게 각자의 음악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비교해 가면서 읽는다면 흥미를 더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출간된 두 권 역시 본문은 술술 읽히는 일대일 대화 형식으로 구성했으며 필요한 때 필요한 이미지를 배치하고 글을 읽다가 해당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도록 QR코드를 삽입했다.

앞으로 나오게 될 5권에서는 클래식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시기로 평가되는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 피아니스트 쇼팽과 리스트를 다룰 예정이다.

사회평론. 3권 412쪽, 1만9000원. 4권 384쪽, 1만8000원.

▲ 얼굴을 그리다 = 정중원 지음.

역대 최연소로 국회의장과 헌법재판소장 공식 초상화를 제작하는 등 초상화가로 활동해온 저자가 단순히 초상화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초상화의 역사, 의미, 철학과 미학을 탐구한다.

저자는 먼저 얼굴이라는 수수께끼는 ‘나’라는 존재를 성찰하려는 본원적 욕구와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한평생 인간의 삶을 감싸는 모든 타자의 얼굴들과도 밀접히 얽히고설켜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처칠, 헨리 8세, 클리브스의 앤, 르네상스 시대 교황 등 역사적 초상과 그것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주며 ‘얼굴’을 향한 인류의 욕망과 초상 이미지의 복잡하고 기묘한 관계를 지적한다.

나아가 컴퓨터 그래픽과 휴머노이드 로봇, 딥페이크 기술과 연관된 최첨단 초상의 현주소와 칼 세이건의 기획 아래 탄생한 ‘희미한 푸른 점’의 의의를 살핀다.

그리고 공공 기념물, 화폐, 광고와 대중매체 등이 그려내고 재현하는 ‘얼굴’의 의미를 수많은 실례와 100여 장의 도판을 바탕으로 풀어가며 개별 인간뿐 아니라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는 ‘얼굴’을 규명한다.

카메라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수백 시간의 공이 드는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를 그리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하이퍼리얼리즘은 사진과 그림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행위, 즉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복제인지, 어디까지가 가상이고 어디까지가 실재인지 고민하도록 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 방점이 있다. 즉,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민음사. 436쪽. 1만9000원.

▲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 김선지 지음.

여성에게 강요된 전통적 성 역할을 거부하고 ‘예술가’로 살기를 선택한 여성 미술가 21명의 삶과 그들이 미술사에 남긴 뚜렷하고도 날카로운 족적을 탐색한다.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라비니아 폰타나, 앙겔리카 카우프만, 로자 보뇌르, 수잔 발라동, 한나 회흐, 카린 라르손, 거투르드 지킬 등 책에서 다루는 여성 거장들은 위대한 걸작을 남기고도 미술사에서 이름이 누락되다시피 했다. 여자에게는 예술을 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없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과 가부장 체제가 그들을 이중 질곡에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힘쓴 분야도, 태어나고 살았던 시기와 장소, 환경도 모두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 앞에 놓인 다양한 유형의 편견과 모순을 넘어서며 필사적으로 미술에 매달렸고 전문 화가, 전문 미술인의 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성의 예술은 한낱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는 편견에 맞서 위대한 예술 작품을 낳았다.

은행나무. 304쪽. 1만6000원.

▲ 폭력의 위상학 =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고도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병리적 현실을 예리하게 파헤친 ‘피로사회’로 전 유럽과 한국에서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저자가 그로부터 10년 만에 내놓은 책이다.

‘피로사회’의 마지막 장에 제시된 ‘피로는 폭력이다’라는 테제를 이어받아 전작에 전개된 사유 아래에 깔린 폭력의 논리를 담았다.

사회적 구도가 변화함에 따라 폭력의 양상도 달라진다고 지적한 저자는 오늘날의 폭력에 관해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정면 대결성에서 바이러스성으로, 노골성에서 매개성으로, 실재성에서 잠재성으로, 육체성에서 심리성으로, 부정성에서 긍정성”으로 이동하며, 그리하여 폭력이 사라진다는 잘못된 인상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책은 1부에서 부정성의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 즉 자아와 타자, 내부와 외부, 친구와 적 사이의 이원적 긴장 관계 속에서 전개되는 거시물리적 현상으로서 폭력에 관심을 기울인다.

오늘날의 사회는 타자의 부정성, 낯선 것의 부정성에서 해방돼 가지만, 부정성의 축소를 폭력의 소멸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부정성의 폭력과 나란히 적대관계나 지배관계 없이 작용하는 긍정의 폭력도 존재하는데 2부에서 다루는 주제가 바로 그것이다. 긍정성의 폭력은 어떻게 보면 부정성의 폭력보다 더 치명적이다. 그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불명확한 데다, 긍정성으로 인해 면역저항에 부딪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주권사회에서 근대 규율사회로, 다시 오늘날의 성과사회로, 사회가 변천하는 것과 더불어 폭력이 위상학적 변화 과정을 밟아왔으며 오늘의 폭력이 점차 내부화, 심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영사. 232쪽. 1만4800원.

▲ 인도 한 접시 = 이민희·카잘 사르마 지음.

출판사의 발행인이자 작가인 저자가 친구가 된 펀자브 출신 인도인과 함께 인도 음식과 식문화, 그리고 그것들의 역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펀자브는 탄두리 치킨부터 로티와 난까지, 달 마카니부터 라씨까지 우리가 국내 인도 식당에서 접하는 음식의 기원지다. 한국인 저자는 인도인 저자를 친구로 사귄 이후 인도를 오가면서 그곳 음식에 조금씩 빠져들게 되고 우리가 오해하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음식과 문화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가장 흔한 오해는 카레다. 우리가 카레라고 알고 있는 음식은 인도에서 지역마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릴 뿐만 아니라 재료도 조리법도 모두 다르다. 남인도의 드레싱 가운데 하나인 ‘카리(kari)’가 영어의 ‘커리(curry)’가 됐다는 불확실한 설명만 있을 뿐 카레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호하다.

인도에서는 사람들이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이야기도 부분적으로만 옳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고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음식의 종류나 지역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음식을 먹는 사람의 마음과 세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카레와 함께 가장 글로벌화한 인도 음식인 탄두리 치킨을 인도 사람들이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일은 거의 없는데, 그 설명도 흥미롭다. 대개 채식주의자 비중이 높은 힌두교도들 가운데서도 특히 여성들은 “고기를 먹는다면 죽어서 어떻게 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느냐”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아 식구 중에서 고기가 먹고 싶은 사람은 나가서 먹는 것이 상식이 됐다는 이야기다.

이 밖에도 다양한 인도 음식뿐만 아니라 인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우리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유사한지를 알려주는 많은 일화가 소개된다.

산디. 448쪽. 1만6500원.

▲ 도시로 보는 유럽사 = 백승종 지음.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곳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던 저자가 지난 30여년 간 여행하고 머물렀던 유럽 18개 도시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 아테네와 로마가 차례로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했던 고대와 스톡홀름의 8∼10세기 바이킹 시대 등 해당 도시가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를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해설하며 사진을 곁들여 답사하듯 안내한다.

두 도시에 이어 콘스탄티노플, 베니스, 브뤼헤, 프라하, 마드리드, 암스테르담, 런던 등 도시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럽 역사, 나아가 세계사가 흘러가는 큰 흐름을 읽게 된다.

인간의 문명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도시를 위주로 발달했으며 유럽의 중세와 근대에는 도시의 역할이 더욱 빛났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베니스 편에서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탐험한 대단한 모험가로서 카사노바를 소개하고 베를린 편에서는 빌헬름 2세와 불화 끝에 물러나면서 “앞으로 15년쯤 뒤 독일제국이 파멸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언한 독일제국의 재상 비스마르크의 일화를 소환하기도 한다.

비유럽인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스트라스부르와 프라이부르크를 각각 ‘유럽 통합의 상징’과 ‘세계가 주목하는 생태도시’로 부각한 점도 이채롭다.

사우. 392쪽. 2만원.

▲ 교회가 가르쳐주지 않은 성경의 역사 = 정기문 지음.

성경 안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순과 기괴함’을 필사 과정의 ‘변개’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서울대에서 로마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천국에 가고 싶은 미련’을 버리지 못해 기독교와 고전 문헌학을 탐구해 왔다고 한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교의 탄생’, ‘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박해했을까’ 등 여러 권의 기독교 관련 서적을 냈다.

저자는 신약성경에 포함된 문서들이 당초에는 ‘성경’이 아니었으나 2세기에 와서 기독교 신자의 증가와 함께 신약성경에 포함될 문서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빈번히 필사하는 과정에서 원문이 바뀌거나 생략되는 변개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단순한 실수에 의한 변개는 쉽게 알아볼 수 있고 여러 필사본을 구해 비교해보면 쉽게 교정할 수도 있지만, 의도적인 변개는 문제가 간단치 않다. 필사자들은 원본의 문법이 틀렸거나 다른 성경 본문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또는 기존의 교리와 맞지 않다고 봤을 때는 종종 의도적으로 변개했다고 한다.

현재 그리스어로 쓰인 성경 필사본은 5800종이 넘지만 그중 어떤 것도 다른 것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성경 본문이 변개돼 온 장구한 역사와, 논란이 됐고 아직도 논란이 되는 구절들을 살펴본 저자는 “이 작업을 통해서 성경은 인간이 만든 ‘텍스트’이며 성경의 본문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지 말고 그 의미를 새겨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썼다.

아카넷. 208쪽. 1만3000원.

▲ 문제적 고전 살롱: 가족 기담 = 유광수 지음.

옛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인간의 내밀한 본성을 탐구하는 데 천착해온 저자가 ‘가족’을 주제로 고전을 톺아본다. 2012년 출간된 ‘가족 기담’을 전면 개정했다.

책을 이루는 9개의 ‘관’ 가운데 첫째는 ‘쥐 변신 설화’와 ‘옹고집전’, ‘배따라기’ 등을 통해 ‘불변의 희생양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세 편의 이야기는 모두 쥐가 핵심 요소로 나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들이 아내 또는 며느리에게 죄를 전가하고 자신들의 죄는 털어내려는 행태다.

2관에서는 ‘열녀 함양 박씨전’을 통해 ‘열녀 이데올로기’를 파헤친다. 겉으로만 보면 박지원이 혼인한 지 반년 만에 세상을 떠난 남편의 삼년상을 치르고 자결한 열녀를 칭송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무모한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읽어낼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밖에 고전과 설화를 읽으면서 ‘처첩의 세계’, ‘가부장의 이중생활’, ‘은폐된 패륜’, ‘자식 사랑의 패러독스’ 등을 분석한다.

유영. 320쪽. 1만6000원.

▲ 숲의 아이들 = 박주영 지음

유년 시절 여동생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실종된 이후 상실감 속에 살아온 의사 이영우.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유괴됐다가 그 친구만 살해당한 이후 미제 사건 전담 형사가 된 은혜주. 그리고 당시 이 유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장기수로 복역하며 출소를 앞둔 조남국.

이 세 사람이 각자 사연과 비밀을 안고 한 자리에서 만난다. 어린 시절 실종됐던 이영우 동생의 유골이 20년이 지나 발견된 것이 계기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이영우와 은혜주는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면서 교도소에 있는 조남국을 함께 찾아가 진실을 추궁한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조남국은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은 채 출소한다.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의 주변에 비밀처럼 묻혀있던 사건의 진실은 뭘까?

박주영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2006년 ‘백수 생활백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2016년 ‘고요한 밤의 눈’으로 혼불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실연의 역사’, 장편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무정부주의자들의 그림책’ 등이 있다.

문학동네. 292쪽. 1만3500원.

▲ 소설보다 : 여름 2020 = 강화길 외 지음

문학과지성사가 2018년부터 분기마다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프로젝트에 따라 올해 여름 작품으로 뽑힌 작품들을 단행본 ‘소설보다’ 시리즈로 엮었다.

강화길의 ‘가원’(佳園), 서이제의 ‘0%를 향하여’, 임솔아의 ‘희고 둥근 부분’과 작가 인터뷰를 실었다.

가원은 요즘 유행하는 가족 안에서의 ‘사회적 성’(젠더) 문제를 다루고, ‘0%를 향하여’는 영화에 관한 작가의 개인 체험을 담았다. ‘희고 둥근 부분’은 망막의 희고 둥근 부분인 ‘맹점’을 상징하는 말이다.

문학과지성사. 162쪽. 3500원.

▲ 우리는 같은 곳에서 = 박선우 지음

2018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박선우의 첫 소설집이다.

표제작과 ‘밤의 물고기들’, ‘휘는 빛’ 등을 비롯해 지난 2년간 각종 지면에 쓴 8편의 단편소설을 모았다.

작가는 인물들이 겪는 관계의 어려움과 미숙함을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동성애 감정과 소수자의 심리에 천착한다. 정체성 혼란을 겪는 사회상을 가감 없이 잘 반영해내고 있다.

자음과모음. 252쪽. 1만3000원.

▲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툰베리와 위기의 행성 = 마이클 파트 지음, 김연정 옮김.

최연소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거물로 우뚝선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전기다.

2003년 1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연극배우인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툰베리는 8세 때 학교에서 지구온난화로 생긴 플라스틱 쓰레기 섬과 빙하가 녹아 굶주리게 된 북극곰의 영상을 본 뒤 말하고 먹는 것도 거부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11세가 되자 기후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부모나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었지만, 친구들한테는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고 어른들은 기후변화의 문제에 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 세상이 미워졌다. 이로 인해 툰베리에게는 강박 장애와 ‘선택적 함구증’이 찾아왔다.

도서관에서 혼자 기후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툰베리는 아버지의 증조할머니의 사촌인 100년 전의 화학자이며 지구온난화를 최초로 예언했던 스반테 아레니우스를 알게 되고 삶의 목표를 ‘기후 운동’으로 정한다.

15세이던 2018년 툰베리는 스웨덴 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한다. 그의 운동에 가장 먼저 동참한 것은 부모였다. 아버지는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됐고 어머니는 해외공연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지구환경을 생각해 더는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시민들도 뜻을 함께하며 툰베리의 연설을 경청했고 1인 시위 종료 후 결성된 청소년 환경운동 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일’ 주도로 세계 24개국 1만7000여명의 학생이 학교 파업에 동참한다.

그 이후 2019년 1월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고 일갈한 ‘다보스 포럼’ 연설을 계기로 툰베리는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한다.

책은 2019년 8월 중순 영국 플리머스 항을 출발한 툰베리가 ‘무탄소’ 대서양 횡단 항해 끝에 한달여 만에 뉴욕에 도착해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 것으로 끝난다.

1시간 앞서 “우리도 ‘나무 1조 그루 심기’ 운동’에 동참하겠다”고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툰베리는 소리쳤다.

“아니요, 나무 심기로는 불충분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멈춰야 해요. 우리들 집이 불타고 있는데, 여러분의 무대책이 불난 집에 시시각각 부채 질이나 하고 있지 않나요?”

굿모닝미디어. 196쪽. 1만3000원.

▲ 최고들의 이상한 과학책 = 신규진 지음.

인류 과학사의 발전을 이끈 28명의 과학자와 그들의 업적을 쉽고 재미있게 풀이한다. 과학자의 일생에 담긴 흥미로운 일화들을 많이 소개하면서도 과학 개념과 원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빠트리지 않는다.

책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는 첫 번째로 등장하는 영국의 로버트 훅처럼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과학자도 적지 않다. 뉴턴과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훅은 용수철처럼 탄성이 있는 물체가 외부 힘의 작용에 의해 늘어나거나 줄어들었을 때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려는 복원력(F)의 크기와 변형(x)의 관계를 나타내는 ‘훅의 법칙’을 발견하고 현미경 제작, 세포 발견, 진공 실험, 망원경 제작, 기상학, 광학, 운동 역학, 화석학, 인지심리학, 건축학 등 여러 방면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그러나 중력의 법칙을 둘러싸고 그와 불화를 빚었던 뉴턴이 훅의 사후 영국 왕립학회 회장이 되고서는 그의 논문과 원고를 모조리 불태우고 걸려 있던 초상화마저 없애버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원자폭탄 제조를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으면서도 ‘폭탄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게 된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도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마이트너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도출된 ‘E = mc²’을 이용해 우라늄 원자 1개가 분열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약 2억전자볼트(eV)인 것으로 계산했고 이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중요한 이론적 기여를 했다. 그러나 마이트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궁핍하고 고독한 생활을 해야 했고 그의 학문적 진가를 알아본 학자들의 제보로 원자폭탄에 기여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 무명의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 밖에 갈릴레이, 뉴턴, 다윈, 파스퇴르, 아인슈타인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생각의길. 416쪽. 2만2000원.

▲ 우주 비밀 파일 = 스티븐 그리어 지음, 박병오 옮김.

미확인비행물체(UFO)와 외계존재, 첨단 우주기술, 행성 간 문명 교류에 관해 연구해온 저자가 정부, 군대, 정보기관, 군산복합체 등에 소속됐던 목격자 및 내부고발자 800명에 대한 인터뷰 등을 토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UFO가 존재하고 외계 존재와 인류가 조우했음을 밝힌다.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중 한 명인 고든 쿠퍼, 아폴로호 우주비행사 에드거 미첼, 영국 국방부 장관을 지낸 힐 노튼 경과 같은 중요 인물 33명의 실명 증언을 담았다는 점에서 단순한 음모론이나 SF와는 차원이 다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국립정찰국(NRO) 등의 기밀 서류와 역대 미국, 소련의 대통령, 정보기관 책임자 등의 발언도 인용한다.

책에 나오는 여러 사례와 증언, 기록들은 진보한 외계문명이 우리를 찾고 있으며 UFO와 외계존재 문제는 미국 및 여러 국가에서 ‘비밀 특수 인가 프로젝트’로 은폐돼 왔을 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들은 법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 있었음을 말해 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 일부 정보기관이 ‘외계비행선’이라고 부르는 외계에서 기원한 진보적 우주선들이 이르면 1930년대부터 격추돼 수거됐고, 이들에 대한 연구와 그 이전부터 이뤄진 기술 혁신의 결과 화석연료를 태우거나 핵발전을 하지 않고도 생산할 수 있는 ‘프리 에너지’ 기술이 개발됐으나 이로 인해 손해를 입게 될 기업과 정치 권력에 의해 사장되고 말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느린걸음. 456쪽. 3만원.

▲ 팬데믹 패닉 =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현대철학자이자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저자가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의 의미와 대처 방안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정리했다.

저자는 “감염병 덕분에 우리가 더 현명해지리라는 주장은 의심스럽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바이러스가 우리 삶의 기반들 자체를 흔들어놓을 것이며, 엄청난 고통은 물론 대공황보다 더 극심한 경제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길은 없고 새로운 일상이 우리 삶의 잔해들로부터 만들어지거나, 이미 조짐이 선명하게 보이는 새로운 야만에 접어들게 될 터”라고 비관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수년에 걸쳐 경고했음에도 우리를 아무 대비 없이 파국에 빠지게 만든 우리 시스템은 뭐가 잘못된 것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병철의 ‘근시안적’ 사태 진단과 조르조 아감벤의 국가권력에 대한 ‘반사적’ 비판 등 다른 철학자들의 발언을 검토한 뒤 “지금 이 순간 어느 정도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반사적으로 ‘감시’와 ‘통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방역과 경제를 양립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방역과 대립하는 것은 빈부 격차와 노동 착취로 연명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경제일 뿐이며 이 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기회비용만 따져 한시적 위기를 넘기려는 조치는 불안정 노동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명을 담보로 건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해결책으로 ‘공산주의’를 들고나온다.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현실에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구체적 정치체제로서 공산주의가 아니라 ‘누구나 능력에 따라, 누구나 필요에 따라’라는 마르크스의 슬로건에 담긴 정신을 구현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마스크, 진단 키트, 산소호흡기 같은 의료장비부터 곡물에 이르기까지 생명과 생존에 관련된 물품의 생산과 공급을 시장 메커니즘에 의탁하지 않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조절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올해 미국에서 출간된 ‘Pandemic! COVID-19 Shakes the World’를 번역한 한국어판에는 저자의 별도 서문과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기고문 세 편, 옮긴이 해설 등이 추가됐다. 저자의 인세는 전액 ‘국경없는의사회’에 기부될 것이라고 한다.

북하우스. 200쪽, 1만5000원.

▲ 그들은 말을 쏘았다 = 호레이스 맥코이 지음, 송예슬 옮김

절망과 꿈이 공존했던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할리우드 스타를 꿈꾸던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펼치는 이야기를 그렸다.

암울한 삶 속에서 만난 그들은 숙식을 제공한다는 이유만으로 댄스 마라톤 행사에 짝을 지어 참가한다. 행사는 원형 경기장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때까지 끝없이 춤을 추며 도는 것으로 우승자를 가린다.

이들은 1시간 50분 동안 춤을 추고 10분을 쉬는 일을 포기하거나 우승자가 될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제대로 쉬거나 잘 수도 없다.

오로지 며칠이나마 의식주를 해결하려고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동물원에 갇힌 짐승처럼 사람들의 볼거리가 된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을 달려가는 인생의 비극적 측면이 겹쳐진다.

누군가 죽어야만 끝날 것 같은 댄스 마라톤 대회. 생존에 대한 열망과 추한 욕망이 만난 기묘한 경쟁은 황망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간다.

20세기 초중반 활동했던 미국 현대소설 주요 작가 호레이스 맥코이의 장편소설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소설을 “미국 최초 실존주의 소설”로 평했다. 

레인보우 퍼블릭 북스. 210쪽. 1만3000원.

▲ 세상을 담고 싶었던 컵 이야기 = 박성우 지음, 김소라 그림

“한없이 둥글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서정시인 박성우가 이 책을 펴내며 한 말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어도 좋을 듯한 책이다.

버려진 컵 하나가 자연 속 동물과 식물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 소중한 가치를 깨달아간다. 그리고 타자의 존엄성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인다.

시인은 외면받는 존재라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고 말한다. 

오티움. 232쪽. 1만4000원.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 허연 지음

‘중심을 무시했었다/ 귀하지 않았고 거추장스러웠다/ 중심이 없어야 한없이 날아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알겠다/ 중심이 있어/ 날아오르고, 흐르고, 떠날 수 있었던 거구나’ (시 ‘중심에 관해’ 일부)

등단한 지 햇수로 30년을 맞은 허연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이다.

시인 특유의 니힐리즘 냄새가 여전하지만, 그동안 단단해지고 성숙해진 내공이 냉담을 넘어서는 사유의 깊이를 보여준다.

‘날아오른 자만이 떨어질 수 있다’는 시인의 말은 이제 인생의 이치를 깨우치려는 노래로 다가온다.

문학과지성사. 158쪽. 9000원.

▲ 신과 로봇 = 에이드리엔 메이어 지음, 안인희 옮김.

탈로스 신화를 비롯한 여러 옛날이야기 속에 숨겨진 과학적 상상력을 살펴보면서 자유의지, 노예제, 악의 기원, 인간의 한계 등 기술과 윤리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스 신화 속 발명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청동 거인 탈로스는 지구 위를 걸어 다닌 최초의 로봇이었다. ‘영생’을 미끼로 탈로스의 욕망, 즉 알고리즘의 맹점을 파고든 마녀 메데이아는 최초의 해커라고 부를 만하다.

고전학자인 저자는 탈로스의 신화에서 현대의 인공지능을 둘러싼 의문을 읽어낸다. ‘탈로스는 왜 영생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는가’, ‘이 로봇이 죽음 혹은 소멸을 두려워했다면 그를 인간적인 존재로 보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적인 존재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보면 판도라의 신화도 새롭게 읽힌다. 제우스가 인류를 파멸시키기 위해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들어 ‘악덕으로 가득한 항아리’와 함께 지구에 파견한 것이 판도라라는 식의 독법이다.

저자는 인공창조물에 관한 놀라운 상상력이 그리스 신화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자의식을 가진 안드로이드의 고뇌를 그린 ‘블레이드 러너’를 갈라테아 신화와 연결하고 저주가 돼 버린 영원한 삶을 그린 티토노스의 이야기는 소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와 비교한다.

이밖에 ‘마징가 Z’, ‘천공의 성 라퓨타’ 등 신화 속의 발상에 기초해 만들어진 다양한 현대 작품들을 소개하고 역사와 과학을 혼합한 새로운 신화 읽기를 제안한다.

을유문화사. 452쪽. 2만원.

▲ 비코 자서전 = 잠바티스타 비코 지음. 조한옥 옮김.

이탈리아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1668∼1744)의 ‘자서전’을 우리말로 옮겼다.

1725년 비코가 57세에 쓴 책으로 미숙했던 청년 시절의 비코가 원숙한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17∼18세기 지식인들이 어떻게 인맥을 형성하고, 그것이 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와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곤궁한 삶이 학문에 더 정진하라는 신의 섭리라고 생각했던 비코는 나폴리 뒷골목의 한 구석방에서 서양 지식인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작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켰다.

교유서가. 272쪽. 1만8000원.

▲ 물과 꿈 =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김병욱 옮김.

프랑스 현대 사상사에서 독보적 존재로 평가받는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가 자신의 독특한 문학적인 상상력 연구를 확장하며 낸 책이다.

바슐라르는 시와 예술에 잠재된 인간의 상상력을 물, 불, 공기, 흙이라는 질료에 따라 분류하고, 특히 물은 시적 영감을 고취하는 질료라고 주장한다.

그는 다양한 시와 문학작품을 통해 생동하는 물의 이미지가 어떻게 몽상을 불러일으키고 생기를 부여하는지 살펴본다.

이학사. 332쪽. 2만원.

▲ 생명에 대한 인식 = 조르주 캉길렘 지음. 여인석·박찬웅 옮김.

프랑스 생명과학철학과 의학철학을 대표하는 조르주 캉길렘(1904∼1995)의 생명에 대한 사유를 모았다.

책은 캉길렘 철학의 핵심 개념을 소개하고 생명에 대한 실험, 세포설, 생기론, 유기체와 기계, 생명체와 환경의 문제 등을 다룬다.

코로나19 시대에 독자들이 생명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

그린비. 336쪽.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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