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0주년
김영옥 대령은 누구?
김영옥 대령의 전쟁이후의 삶

김영옥 대령 '미군 최초 유색인종 대대장' 그를 잊지마세요..."나는 100퍼센트 한국인이며 100퍼센트 미국인"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6·25전쟁이 70주년이 다가온 가운데 미국 최초 유색인종 대대장 김영옥 대령이 재조명 되고 있다.

김영옥(1919~2005) 미국 육군 대령은 재미교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제대했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 그는 한국인 유격대를 지휘하며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했고, 미 7사단 31연대 정보참모로도 활동했다.

1951년 4월 중공군의 공세로 소양강 지역을 방어하던 31연대가 철수하자 미군과 한국군을 엄호하라는 명령을 받아 적을 저지하기 위해 후퇴하는 중대급 한국군 병력을 집결시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작전을 수행했다.

같은 해 5월 중공군의 2차 공세가 이어지자 구만산·탑골 전투와 금병산 전투에서 직접 부대를 진두지휘하며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들을 독려해 승리로 이끌었고, 유엔군 부대 중 가장 빠르게 진격해 제일 먼저 캔자스선(임진강~양양을 연결한 유엔군 방어선)에 도달했다.

이후 철의 삼각지대에서 전투를 수행하던 중 중상을 입고 일본 오사카로 후송돼 치료를 받은 후 다시 전선에 복귀해 1952년 9월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과 동성무공훈장을 받았으며 2005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또한 지난 2018년 지난 3월, 2005년 세상을 떠난 ‘아름다운 영웅 김영욱 대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 하의원 최석호 의원과 샤론 쿼크 실바 의원이 한인 밀집 거주지인 오렌지 카운티 북부 지역의 5번 프리웨이 구간을 ‘김영욱 프리웨이’로 도로명을 명명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발의했으며 7월 이 결의안이 상의원 40명 중 34명이 참석한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김영옥 대령 기념 고속도로’로 미국 최초 한인 도로명이 명명 됐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한편 김영옥 대령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군으로 전쟁에 참전해 이탈리아 – 프랑스 해방의 주역이 되어 두 나라 정부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 후 제대했지만,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바로 자원입대를 하고 한국으로 오게 됐다.

1951년 4월에 미 육군 제7보병사단 31보병연대 정보참모로 임명되었으며 31연대는 연전연승을 거두게 되며 김영옥 대령의 활약은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 후 소령으로 진급과 함께 1대대 대대장이 되어 미 육군 최초의 아시아계 보병 대대장이 되어 ‘불패 신화’를 일구며 전쟁영웅으로 불렸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을 지키며 직접 고아원을 설립해 수백 명의 전쟁고아를 돌보았으며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귀국한 이후에도 다방면으로 사회봉사를 이어나갔다. 또한 미군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의 진상 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일본군 위안군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요지의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사회적 약자를 위해 나서기도했다.

국내에서도 진정한 영웅인 그의 업적을 잊지 않기 위해 경기도 평택에 들어선 새 유엔사령부·주한미군사령부 본청작전 회의실을 ‘김영옥 회의실’로 명명하며 별도로 주한 미군사령부 본부 건물 하나를 ‘김영옥 빌딩’으로 명명했다.

 

---

김영옥 대령 '미군 최초 유색인종 대대장' 그를 잊지마세요..."나는 100퍼센트 한국인이며 100퍼센트 미국인"

6·25전쟁 70주년
김영옥 대령은 누구?
김영옥 대령의 전쟁이후의 삶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