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가슴 아픈 역사 볼수 있는 영화는?
  • 이주빈 기자
  • 승인 2020.06.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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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동막골
태극기 휘날리며
고지전

6.25 전쟁 가슴 아픈 역사 볼수 있는 영화는?

 6.25전쟁이 70주기를 맞으면서 전쟁의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들이 관심집중이다.

1. 웰컴 투 동막골 '6.25 안에도 온정은 있었다'

 

웰컴 투 동막골 포스터
웰컴 투 동막골 포스터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배종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국내에서 지난 2005년 8월 개봉했다. 웰컴 투 동막골은 1950년 11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함백산 절벽들 속에 자리 잡은 마을 동막골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곳에 추락한 P-47D 미 전투기 한 대. 추락한 전투기 안에는 연합군 병사 스미스(스티브 태슐러)가 있었다. 동막골에 살고있는 여일(강혜정)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소식을 전달하러 가던 중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일행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동막골로 데리고 온다.

바로 그 때, 자군 병력에서 이탈해 길을 잃은 국군 표현철(신하균)과 문상상 일행이 동막골 촌장의 집까지 찾아 오게 되면서 국군, 인민군, 연합군이 동막골에 모이게 되고 긴장감은 극도로 고조된다.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전쟁의 긴장은 동막골까지 덥치고 말았다. 동막골에 추락한 미군기가 적군에 의해 폭격됐다고 오인한 국군이 마을을 집중 폭격하기로 한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국군, 인민군, 연합군은 한국 전쟁 사상 유례없는 연합 공동 작전을 펼치기로 한다.

이 영화는 6.25 전쟁이 발발한지 모르는 깊은 산골의 주민들과 북한군, 남한군, 미군이 어울리면서 일어나는 휴머니즘을 담고 있다. 특히 영화 마지막에 북한, 남한, 미국이 연합 공동 작적을 펼쳐 마을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훔쳤다.

웰컴 투 동막골은 개봉후 43회 대종상 영화제(여우조연상), 29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촬영상-신인상, 신인감독상, 조명상), 8회 우디네 극동영화제(관객상), 3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최고의 작품상), 4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신인감독상, 음악상, 각본각색상), 8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올해의 남자배우상), 2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10선), 26회 청룡영화상(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한국영화 최다관객상)등 다수의 상을 휩쓸며 당시 영화계의 한 획을 그었다.

 

2. 태극기 휘날리며 '우린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해'

태극기 휘날리며 포스터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야 했고, 의도치 않게 서로를 겨눴던 우애 깊은 형제의 이야기로 실제 '박규철·용철'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강제규 감독이 영화 ‘쉬리’ 발표 후 6년 만에 내놓은 작품으로 직접 제작·각본·기획·연출을 맡은 대작이다.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는 제작비 170억 원과 한류열풍의 주역인 장동건 원빈 등을 내세워 크랭크인 전부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국전쟁 속에 휘말린 형제의 엇갈린 비극을 그린 ‘태극기 휘날리며’는 흥행과 비평 모든 면에서 성공을 거두며 당시 한국 영화 사상 가장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 영화로 기록됐다.

줄거리로는 1950년 6월.. 서울 종로거리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진태’(장동건)는 힘든 생활 속에도 약혼녀 ‘영신’(이은주)과의 결혼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 ‘진석’(원빈)의 대학진학을 위해 언제나 활기차고 밝은 생활을 해 나간다.

태극기 휘날리며 스틸컷

6월의 어느 날,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호회가 배포되면서 평화롭기만 하던 서울은 순식간에 싸이렌 소리와 폭발음,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해진다. 이에 , 남쪽으로 피난을 결정한 ‘진태’는 ‘영신’과 가족들을 데리고 수많은 피난행렬에 동참하지만, 피난열차를 타기 위해 도착한 대구역사에서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만다. 만 18세로 징집 대상이었던 ‘진석’은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군용열차로 오르게 되고 ‘진석’을 되 찾아오기 위해 열차에 뛰어오른 ‘진태’ 또한 징집이 되어 군용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평온한 일상에서 피 튀기는 전쟁터로 내 몰린 ‘진태’와 ‘진석’은 훈련받을 시간조차 없이 국군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으로 실전 투입이 되고 동생과 같은 소대에 배치된 ‘진태’는 동생의 징집해제를 위해 대대장을 만나게 된다. 대대장과의 면담을 통해 동생의 제대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 ‘진태’는 그 무엇보다 동생의 생존을 위해 총을 들며 영웅이 되기를 자처하는데.. ‘진태’의 혁혁한 전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성공한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북진을 시작한다.

애국 이념도 민주 사상도 없이 오직, 동생의 생존을 위한다는 이유 하나로 전쟁영웅이 되어가고 있는 ‘진태’와 전쟁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진석’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 평양으로 향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운명의 덫이 그들 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형제의 상
사진=형제의 상

한편 태극기 휘날리며는 '박규철·용철' 형제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1950년, 두 형제는 황해도 평양군 신암면에 가족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광복을 맞은 이후 형은 소련군에 불만을 품게 됐고 동생에게 가족을 부탁한 채 홀로 월남했다. 이후 보병 8사단에 입대한 뒤 많은 공을 세워 소위로 전시 임관하게 된다. 그 시점 동생 박용철도 강제 징용돼 북한 8사단 소속 하전사로 전쟁에 참여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지 못했지만, 양 측의 8사단은 6.25전쟁을 치르면서 여러 차례 부딪혔던 부대였다. 이후 박 소위는 도망치는 북한군 사단을 추격하게 됐고, 충북 단양군 죽령에서 마지막 결전을 펼쳤다. 그날 밤 그는 찝찝한 꿈을 꿨다. 꿈에 나온 어머니가 박 소위에게 호통을 쳤던 것.

다음날, 박 소위는 도망치는 한 북한군을 잡게 된다. 그때 뒤숭숭했던 꿈자리가 떠올라 북한군을 다시 확인했다. 박 소위는 이내 엎드린 적이 동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은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이후 동생은 박 소위의 소속 지휘관의 배려로 8사단으로 입대해 형과 함께 전쟁을 치르게 됐다.

이 이야기는 박 소위의 전우 안만옥 상사가 1989년 전쟁기념사업회의 한국전쟁 참전 수기에 공모해 입상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서울 전쟁기념관에 형제의 동상이 세워졌다.

 

3. 고지전 '고지를 점령해라'

고지전 포스터

장훈 감독의 2011년 작 고지전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 전쟁의 말미에 일어난 소규모 고지탈환전을 다룬다. 군인은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싸우고 있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애록고지는 실제 백마고지를 모티브로 한 곳이다. 중공군으로 고지를 사수한 9사단이 고지의 이름을 따서 백마부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영화 고지전은 9사단장병의 처절한 고지전을 그렸다.

영화의 시작은 판문점에서 휴전 협정이 진행되는 중에 있다. 강은표 중위(신하균)는 상관에 말실수를 하여 영창 대신 애록고지에서 전투 중인 악어부대로 파견 간다. 악어부대의 중대장이 죽어 나가는데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발견되어 강은표는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려 보내진 것이다. 죽고 죽이는 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전쟁이 끝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이다.

영화 고지전 스틸컷

영화 배경인 애록고지의 모티브인 백마고지는 강원 철원군에 있는 6·25전쟁 때의 격전지로 6·25전쟁 때 국군과 중공군이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해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됐다.

1951년 7월 정전회담이 시작되면서 정전협정이 체결되는 시점의 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기로 정한 뒤 한국·유엔군과 북한·중공군 양측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지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백마고지는 중부전선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철의 삼각지대(철원·김화·평강)'의 하나인 철원평야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당시 김종오소장이 지휘하는 국군 제9사단이 방어하고 있었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은 백마고지 일대에 2000여 발의 포탄을 투하하며 공격을 개시했다. 중공군은 제38군 예하의 제112·113·114사단의 약 4만 5000명의 병사를 동원하였으며, 아군은 제9사단 예하의 제28·29·30연대를 비롯하여 경장비 제51연대, 53전차중대, 제1포병단 등의 국군과 제5공군, 제73전차대대, 제49·제213·955 포병대대 등의 미군이 맞서 싸웠다.

10월 6일에서 10월 15일까지 열흘간 24차례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혈전을 치른 끝에 제9사단이 중공군을 격퇴하고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21만 9954발의 포탄을, 중공군은 5만 5000발의 포탄을 발사한 것으로 기록된다. 중공군은 1만여 명이 사상자 또는 포로가 되었고 제38군은 막대한 타격을 입고 후방으로 물러났다. 제9사단도 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 전투의 승리로 백마부대로 불리게 됐다.

이 전투의 대승으로 휴전을 앞두고 군사적 요지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유엔군은 정전회담에서 계속 유리한 입장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전투를 기념하여 백마고지 정상에 기념관과 전적비, 호국영령 충혼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해마다 10월 16일을 전승(戰勝) 기념일로 삼아 민·관·군 합동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사진=MBC 진짜 사나이

한편 2019년, 화살머리고지에서는 정전 이후 최초로 비무장지대 내 전사자 유해발굴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계획되었던 남북 공동 발굴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우리의 단독 발굴을 통해 작년에만 추정 261구의 유해를 찾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으로 중단됐던 유해발굴작업이 지난 4월 말부터 재개됐다. 아직도 DMZ 지역에는 수많은 유해가 깊은 땅속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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