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선 대전시립연정국악원장

송인선 대전시립연정국악원장

코로나19 상황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최근 우리 지역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고강도 생활 속 거리두기 실시에 따라 국악원도 진행 예정이던 대면 공연을 중지하고 비대면 온라인 생중계 등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은 생존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기회다. 전통음악의 역사도 그런 과정을 겪어왔다. 중국 문화권의 영향 아래 독자적인 민족 문화를 일궈온 역사 속에서 전혀 문화적 맥락을 달리한 서양 문물이 유입돼 전통음악은 말 그대로 멸절과 단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시기 서양식 극장의 등장 또한 전통음악계에 있어서는 접해보지 못한 최대의 위기였다. 마당 등 열린 공간이나 풍류방 등 소규모 공간에서 펼쳐졌던 대부분의 전통예술은 서양식 극장에서 연희되기에는 근본적 한계를 가졌다. 또 서양에서는 관객들에게 감상의 대상으로 전제된 작품의 연주라는 역사가 전개됐지만 전통음악은 대부분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 연주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의례, 연회, 제례 등 목적이 분명한 효용에 음악이 사용되는 측면이 강했다는 점에서 서양음악과는 달랐던 것이다.

여기에 근대시기 음악유통의 주요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군대, 교회, 학교에서는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전통문화에 대한 의도적 배제와 서양음악만을 주요한 기재로 사용했다. 서양식 군악대의 출현, 찬송가 등 교회에서의 서양음악 유통, 학교 음악 교과를 통한 서양음악 교육은 우리의 음악적 미감을 완전하게 서양음악에 익숙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근대 시기 이후 진행된 이런 상황은 1980년대가 돼서야 우리 전통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돌아보게 했다.

그러나 전통음악의 멸절과 단절 위기상황에서도 큰 성과를 일궈냈다. 서양식 극장과 당대 관객들의 수요에 대처한 창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과 가장 대표적인 기악 독주곡인 산조(散調) 탄생이 대표적이다. 창극은 한 사람의 소리꾼과 반주자인 고수가 긴 서사의 내용을 노래와 소리, 몸짓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배역을 나누고 무대장치와 서양식 극장 형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대표 장르로 자리잡았다. 전통 판소리 뿐 아니라 문학 등 다양한 장르와 교섭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 타진하고 있는 중이다.

기악독주곡 산조는 작곡자라는 서양음악 생산자의 역할과 달리 연주자가 직접 만들어낸 연주곡이다. 전통음악이 독주곡 위주의 편성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기악 독주곡으로 하나의 장르를 개척한 컨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최초의 산조인 가야금산조가 1800년대 후반 처음 나타났다는 점은 전통음악의 근대에 대한 대응의 모범으로 손꼽을 수 있다. 이후 각 악기별 산조가 연주가들에 의해 탄생했으며 1990년대까지 계속 이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서양음악 위주로 편성된 음악계에 전통이 계속 현대와 소통하고 관객과 합의할 수 있는 점을 찾는 노력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빠른 속도의 변화와 위기에 대한 대응은 이제 변수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상수의 조건으로 놓고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우리가 제어할 수 없었던 서양문물의 도입과 근대화, 그리고 오늘의 코로나19의 상황은 전통음악이 위기에 대응했던 모범적 사례를 바탕으로 생존 및 소통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전회의 연재를 통해 언급했듯 전통음악은 문화 콘텐츠로서도 소중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당대의 관객과 소통하고 널리 유통돼야 하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드라마를 시작으로 K-pop, 영화 등 한류는 이미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잡았고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기생충’, 방탄소년단(BTS)의 ‘대취타’ 등의 음악은 한국적 소재나 재료의 활용을 통해 세계화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사례다. 이제는 한류를 대표한 K-pop을 넘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K-Classic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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