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법은 지엽적인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대단히 포괄적인 내용을 담기도 한다. 포괄적인 내용은 해석하면서 본질을 벗어나기도 하고, 구체적이지 못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법은 상위법과 하위법이 존재하고, 본질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상위법 우선의 원칙이 적용된다. 상위법이 지나치게 포괄적 내용만 담고 있으면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하위법을 만든다. 그래서 헌법-법률-명령-규칙-조례라는 위계가 성립한다.

헌법은 가장 상위법인 만큼 가장 포괄적이다. 큰 윤곽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법률로 그 내용을 보완하고 법률에 다 담지 못하는 내용은 시행령(명령·대통령령)을 통해 재차 보완한다. 법률은 헌법을 어길 수 없고, 시행령은 법률을 어길 수 없는 구조이다. 상위법을 벗어나는 하위법은 존재할 수 없다. 헌법은 국가 존립의 근거이며, 모든 법의 모법이다. 모든 법은 헌법을 어겨서도 안 되고, 그 정신을 훼손해서도 안 된다. 헌법정신을 어긋나는 법은 위헌법률 심판 절차를 통해 사장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평등권을 가지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아주 단순한 한 줄의 조문에 불과해 보일지 몰라도 이는 엄청난 의미를 품고 있다. 대한민국 땅에서 누구나 평등하고, 누구도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했으니 단 한 명의 국민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사람을 차별하고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다. 헌법 조문을 허울 좋은 문구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구체적 내용을 법률로 만들어 보완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차별금지법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은연중에 차별받고 있는 약자나 소수자를 보호하고 이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되고, 그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헌법정신에 부합되는 법률이다. 굳이 법률이 없어도 모두가 평등한 대접을 받고 차별받지 않는다면 굳이 법을 제정할 이유도 없지만, 이 사회에 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2007년 노무현정부 때 정부 발의로 차별금지법 제정이 처음 시도됐지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며 불발됐다. 당시 20개 차별 항목을 정해 금지조항을 마련하려 했으나 7개 항목이 삭제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를 비롯한 재계는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막는다는 이유를 들어 ‘병력’, ‘학력’, ‘범죄전력’에 의한 차별금지를 반대했다. 종교계는 ‘성적 지향성’ 항목을 문제 삼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차별금지법은 제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 하지만 이 역시 입법절차를 진행하지 못해 제정이 무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추진된 바 없다. 21대 국회 들어 정의당이 입법 추진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그러나 초미니정당인 정의당의 힘만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리 만무하다. 거대 여당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보수 야당이 이 법안의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당초에 어렵다. 이 나라에서 이미 거대한 세력으로 자리 잡은 재계와 기독교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헌법정신을 살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면 정의당 혼자 힘으론 어림도 없다.

결국, 진보를 자처하며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표방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적으로 나서 힘을 보태야 이 법안은 국민의 품에 안길 수 있다. 헌법정신에 맞게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데 나서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생각을 하고, 대놓고 특정 부류의 사람을 차별하겠다는 의도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법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절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수 없다.

다수가 아닌 소수라는 이유로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공공연히 차별받는 국민이 존재하는 나라가 어찌 세계 속의 선진국이 될 수 있겠다는 말인가.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약자와 소수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다. 그들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똑같은 권리의 주체이다. 그들이 권리의 주체로 당당히 인정받기 위해 ‘차별금지법’은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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