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언어의 역사/집을 짓다… 외 35권

▲ 뇌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 크리스천 재럿 지음, 이명철·김재상·최준호 옮김.

일부 언론인이나 마케터, 심리치료자, 자기계발 연구자 등 비전문가들이 마구 퍼뜨려 오해와 억측을 낳게 만든 신경과학에 관한 허구들을 바로잡으려 한다.

뇌와 신경 분야의 단편적인 지식이 만들어낸 신화의 역사는 뿌리 깊다. ‘심장에 생각의 중추에 있다’라거나 ‘머리뼈에 구멍을 뚫어서 사악한 기운을 내보낼 수 있다’, ‘자폐증 환자는 독특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여자의 뇌가 남자의 뇌보다 더 균형 잡혀 있다’와 같은 이야기들이다.

신경과학 전공 박사 학위를 받은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는 책에서 8개의 장으로 나눠 신경과학을 둘러싼 41개의 신화를 하나하나 격파해간다.

특히 ‘우리는 뇌의 10%만 사용한다’, ‘우뇌형 인간이 더 창조적이다’, ‘성인의 뇌에서는 새로운 뇌세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8시간 동안 자야 한다’ 등은 웬만한 식견이 있는 사람들도 믿고 있는 ‘불멸의 신화’다.

뇌 스캔으로 마음을 읽는 기술, 불안감 해소·집중력 강화 등 효과를 가져오는 뉴로 피드백 수업, 뇌에 좋은 음식과 영양제 등에 관한 광고는 솔깃하지만 허풍인 경우가 많다.

저자는 신경에 관한 유언비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무의미한 신경 관련 언급을 조심할 것’, ‘이해충돌이 있는지 살필 것’, ‘엄청난 주장은 의심하고 볼 것’ 등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한울엠플러스. 448쪽. 4만원.

▲ 언어의 역사 =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서순승 옮김.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영국 웨일스대학교 명예교수인 저자가 언어에 대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궁금증에 답해준다.

엄마가 말을 못 하는 아기에게 건네는 ‘베이비 토크’와 아기 울음 등 원초적 언어에서 말의 기원, 문법, 철자, 문자 메시지, 정치적 공정성에 이르기까지 언어와 관련된 40개 주제에 관해 전문적이면서도 쉽게 설명한다.

누구나 궁금해할 말과 글의 기원에 관해 저자는 3만년 전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에 따르면 원시인의 두개골과 목뼈의 형태를 현대인과 비교한 연구자들은 기원전 3만년쯤에 인류는 현대인의 말과 어느 정도 비슷한 소리를 만들 수 있게 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인류 최초의 문자는 비슷한 시기 동굴 벽면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호 형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 사회계층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발음과 억양, 철자가 생겨나고 특정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가 ‘표준’이라는 지위를 누리게 되며 나이와 성별, 인종, 집단에 따라 어투나 어법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언어의 변이 과정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사용자 수가 극히 적어 곧 사멸할 가능성이 높은 ‘위기 언어’에도 주목한다. 언어학자들은 100년 내 전 세계 언어의 절반이 사멸하고 현재 2주마다 하나꼴로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보편화하면서 현대의 언어생활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약어와 이모티콘, 언어유희 등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앞으로 우리 언어생활을 어떻게 변해갈지에 대해 전망한다.

책은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는 여섯 가지의 충고로 마무리된다. ‘사멸하는 언어에 관심을 가질 것’, ‘소수 언어를 존중할 것’, ‘가능한 한 많은 언어를 배울 것’, ‘언어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인정할 것’, ‘여러분 자신의 언어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타일에 관심을 가질 것’, ‘모국어를 배우거나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돕는 데 앞장설 것’ 등이다.

‘언어를 사용할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거나 ‘듣는 행위 또한 언어의 한 부분이다’라는 번외의 조언도 추가됐다.

소소의책. 440쪽. 2만3000원.

▲ 집을 짓다 = 왕수 지음, 김영문 옮김.

중국인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으며 본업인 건축 이외에 글쓰기에서도 천재다운 번뜩임을 보여 온 저자가 건축에 관한 지론과 자신의 인생, 건축가로서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저자는 대학 2학년 때 “나를 가르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선언하며 독학을 결심했고 24살 때 ‘현대 중국 건축학의 위기’라는 논문에서 지도교수를 비롯해 건축계 원로들을 매섭게 비판해 화제를 모았다.

서양 건축에서는 지붕, 울타리, 토대, 화당(火塘·화로)을 4대 요소로 꼽지만, 저자는 화당 대신 ‘물’이 중국 건축의 핵심 요소라고 본다. 물의 물성은 텅 비어 있는 것이므로 건축물이 물을 배경으로 배치돼 있으면 자연 속에 융합돼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작업 방식은 자유분방하다. “나의 이상은 ‘마음 내키는 대로 일을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사무실을 때때로 한 달이나 몇 주간 비워두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기본적인 자유라고 느낀다”라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도서관 사서인 어머니와 극단 연기자인 아버지를 둔 덕에 문학과 예술로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으며 자연스레 어릴 때부터 문인 기풍을 몸에 익혔고 그것을 건축에 연결할 수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건축사가 되기 전, 나는 먼저 문인이었다”라거나 “집을 짓는 일은 작은 세계 하나를 만드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중국미술대학교 상산캠퍼스, 닝보박물관, 중산로 등 대표작들의 설계 의도와 작업 과정에 관한 설명도 담았다.

아트북스. 368쪽. 2만2000원.

▲ 안중근의 말 = 안중근 지음. 안중근의사숭모회 엮음.

“내가 대한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3년 동안 해외에서 떠돌아다니며 고생했으나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느니, 우리 2000만 형제자매는 각자 스스로 분발해 학문에 힘쓰고 산업을 진흥함으로써 내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한이 없겠노라.”

죽음을 초월한 의연함 중에도 조국과 민족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던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위 글은 ‘대한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1910년 3월 25일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됐다. 그는 나라의 운명이 스러져갈 때 혈혈단신으로 이역만리 만주 하얼빈역에서 침략의 원흉을 처단해 대한 남아의 기개와 한국인의 민족혼이 살아 있음을 온 세계에 알렸다.

이 책은 안 의사가 순국을 앞두고 자신의 길지 않았던 삶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기록한 옥중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에 남긴 글들을 담았다. 다음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체포돼 첫 심문에서 한 진술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너희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이다북스. 280쪽. 1만4500원.

▲ 고구려의 핵심 산성을 가다 = 원종선 지음.

안시성과 백암성을 비롯한 고구려 수도방어의 전략적 핵심 산성 85곳을 지난 5년 동안 직접 답사한 기록이다. 현장에서 현지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민담을 모으고, 지형과 연관된 산성들의 포진 형태를 분석해 고구려 산성의 전략적 가치를 들춰낸다.

고구려는 특별한 산성이 있었기에 중원 세력과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물리칠 수 있었다. 요동 지역에 무려 158개나 분포한 고구려 산성들은 적은 병력으로 대규모 적군을 잘 막아낼 수 있게 설치됐다.

저자는 “산성을 답사하면서 그 병사들의 모습을 그리며 다녔다. 그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석재를 가공하고 돌 하나하나를 쌓아 올렸으며 전시에 산성으로 모여들어 함께 무기를 들었을 주변의 주민들을 떠올렸다”며 “너나없이 고구려의 백성이었던 그들이야말로 고구려를 700년, 아니 900년 동안 지켜낸 힘이다”고 말한다.

이 책에 앞서 저자는 2018년 고구려의 73개 산성을 답사해 기록한 ‘요동 고구려 산성을 가다’를 전작으로 내놓은 바 있다. 또 2014년에는 중국 대운하의 전 구간을 답사하고 ‘중국운하대장정’을 연구 성과로 출간했다.

통나무. 448쪽. 2만3000원.

▲ 조선의 권력자들 = 조민기 지음.

권력이란 사람을 탐욕에 빠뜨리고 타락시키는 마물인 동시에 혼란을 잠재우고 기강을 바로 세우는 정의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역시 절대권력을 쥔 자의 행보 하나하나로 누군가의 성공과 몰락, 삶과 죽음이 정해지고 백성의 평안과 고통이 결정됐다.

임진왜란 발발부터 대한제국이 생겨나기까지 300여 년, 때로는 충신이자 왕의 동지로서, 때로는 간신이자 왕권을 위협하는 적으로서 수많은 권력자가 있었다. 이 책은 임진왜란 이후 왕 못지않은, 때로는 왕보다 막강한 권력으로 시대의 흥망성쇠를 만들어간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이 다룬 권력자는 이이첨, 김자점, 송시열, 홍국영, 김조순, 흥선대원군, 명성황후, 김홍집 등 8명이다. 이들 권력자의 흥망성쇠는 ‘전쟁과 평화’, ‘사대부의 부활’, ‘세도정치의 시작’, ‘왕실의 재건’, ‘국가의 몰락’이라는 5가지 테마로 설명된다. 저자는 전작인 ‘조선의 2인자들’을 4년 전에 펴냈다.

책비. 396쪽. 1만9800원.

▲ 노동의 미래 = 유경준·이상협·이종훈·이철수 지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발간한 ‘2019 OECD 고용전망: 일의 미래’를 통해 가까운 미래에 중간숙련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우려했다. 자동화로 향후 15~20년 사이에 14%의 직업이 사라지고, 32%의 직업이 업무 형태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리라 전망한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노동환경에 따른 훈련, 질 좋은 직업의 제공, 소득분배와 사회안전망 제고 등 밝은 미래를 위한 정책 제안에 고심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움직임과 달리 국내에서는 논의가 단편적 차원에서만 일어나고 있어 안타깝다.

저자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노동과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동에 대한 가치와 시스템 재정립, 고령화와 노동시장, 소득불평등, 노동소득 분배와 소득주도성장, 노사 문제와 새로운 시스템, 유연화와 비정규직, 저출산 고령사회와 사회안전망 등의 논의를 통해서다. 모두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먼저 우리 사회의 급격한 저출산·고령화가 경제와 고용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각국의 비교로 분석한다. 그리고 고령화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연금 개혁, 정년 연장, 기본소득 등을 중심으로 노동의 미래도 내다본다.

현암사. 324쪽. 1만7000원.

▲ 나는 단호해지기로 결심했다 = 롤프 젤린 지음. 박병화 옮김.

사람은 누구나 일, 사랑, 가정, 우정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런 인간관계 속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보다 남을 더 신경 쓰느라 정작 자기 마음이 곪아 터지는 것은 보지 못한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스스로를 지켜야 하지만 관계가 멀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싫어도 좋은 척한다.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면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솔직한 감정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나 불친절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까지만 배려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선을 긋는 게 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관계심리 전문가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 자신이 치유한 많은 이들의 진료 기록을 바탕으로 단호하게 선을 그었을 때 일어난 기적 같은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인간관계에서 손해 보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지키며 건강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일러준다.

걷는나무. 244쪽. 1만5000원.

▲ 웃음보따里에서 띄우는 행복편지 = 홍헌표 지음.

저자는 11년 전 ‘암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 2008년 대장암 3기 수술을 받은 그는 예정했던 항암치료를 3분의 1로 끝낸 뒤 삶의 방식을 통째로 바꿔 암을 이겨보겠다는 의지로 ‘암을 내 편으로 만들기 프로젝트’를 실천했다.

그는 치열하게 암을 공부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마음습관, 몸습관을 180도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재발 없이 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저자는 “암 덕분에 삶이 바뀌었고, 바뀐 지금의 삶이 행복하고 앞으로도 쭉 행복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며 “그렇기에 암이 고맙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말한다. 그는 2012년 암 체험 에세이 ‘나는 암이 고맙다’를 쓴 바 있다. 이번 책은 이후 암 환자 치유 프로그램 진행, 건강 강의 등을 하면서 얻은 달라진 삶과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힐러넷. 240쪽. 1만4000원.

▲ 나뭇잎 묘지 = 고원영 지음

6·25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당시 세대가 흘린 피를 기억하고 다시 다가오는 전화 위기를 경계하고자 쓴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네 명의 주인공은 6·25 전쟁 발발 이전에 군대에 입대해 전쟁 기간 온갖 고생을 한다. 국군 2사단 17연대 소속의 이 젊은이들은 1952년 10월 ‘저격능선 전투’에 투입된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고전하던 미군을 대신해 배치된 것이다.

이들은 42일간 28차례나 고지를 뺏고 빼앗기며 혈투를 벌인다. 피아 양쪽에서 2만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6·25 전쟁사 최대의 인명 피해를 기록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적인 혈투에서 이들은 휴전 또는 철수를 소망할 뿐이다. 마침내 11월 중순 철수가 이뤄지지만, 주인공 중 둘은 죽거나 행방불명됐고, 살아남은 둘은 전쟁이 끝난 뒤 매년 이들을 추모하러 저격 능선을 찾는다.

고원영이 쓴 두 번째 6·25 전쟁 소설이다. 그는 “미래의 전쟁이 궁금하다면 70년 전 한반도를 뒤돌아보라”고 말했다.

지유서사. 326쪽. 1만5000원.

▲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 박형준 지음

현역 최고 서정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박형준의 일곱번째 시집이다.

등단 30주년을 한 해 앞두고 낸 이번 시집은 예민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감각적 이미지를 형상화하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우리 곁의 자연과 일상의 풍경을 찬찬히 돌아보며 사색과 명상에 젖게 하는 노래가 울려 퍼진다.

‘자신의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모든 테두리는 슬프겠지// 슬퍼하는 상처가 있어야/ 위로의 노래도 사람에게로 내려올 통로를 알겠지’(시 ‘테두리’ 일부)

박형준은 196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불탄 집’ 등과 산문집 ‘저녁의 무늬’ 등이 있다. 현대시학작품상, 소월시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을 받았다.

창비. 156쪽. 9000원.

▲ 마스 룸 = 레이철 쿠시너 지음, 강아름 옮김

스티븐 킹과 마거릿 애트우드가 추천한 소설이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고 맨부커상과 미국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아이가 있는 20대 독신녀 로미는 스토킹을 지속한 남자를 공구로 살해했다. 종신형을 받고 수감된 그에게는 교도소 역시 폭력적인 공간이다. 누군가에게 스토킹 당하듯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

로미는 여자 교도소에서 만난 죄수들의 사연을 차츰 알아가며 수감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작가는 이런 로미의 이야기를 통해 사법 시스템과 교정 시스템의 불합리성과 한계를 드러낸다.

미국에서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고 있는 작가 레이철 쿠시너의 세 번째 장편이다. 강아름 옮김.

문학동네. 524쪽. 1만6000원.

▲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중남미 호러 소설의 진수를 보이는 소설집. 라틴 아메리카 고딕 호러의 여왕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작가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작품이다.

폭력과 납치, 가정 폭력과 여성 혐오, 계층 간 차별 등 좌파 포퓰리즘의 결과로 발생한 부조리를 호러를 통해 풍자한 단편 12편이 실렸다.

소설은 사실 지옥이 현실에 있다는 점을 말하는 듯하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적지 않은 남미 국가 국민들이 공포 영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소설은 에둘러 보여준다.

현대문학. 380쪽. 1만5000원.

▲ 지배, 그리고 저항의 예술: 은닉 대본 = 제임스 C. 스콧 지음. 전상인 옮김.

권력과 지배 그리고 저항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권력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고 지배가 늘 성공적이거나 안정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저항이 없는 지배도 없다고 한다.

지배와 저항을 동전의 양면처럼 이해하는 저자는 권력자의 감시를 피해 장외나 막후에서 형성되는 지배 권력에 대한 비판과 반대, 저항을 ‘은닉 대본’(hidden transcript)이라고 부르고, 이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형태가 매우 다양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으며, 스스로 이름조차 갖지 못하는 피지배계급의 생생한 하부정치를 다루면서, 은닉 대본이 가식적인 수사보다 얼마나 다채롭고 흥미로운지 보여준다.

후마니타스. 456쪽. 2만5000원.

▲ 혁명의 세계 반란의 역사 = 배성인 지음, 전국금속노동조합 기획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부조리한 세상을 극복하기 위해 나선 세계 민중의 투쟁사를 다룬 책이다.

1부에서는 로마의 역사를 바꿀뻔했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 당나라의 민중 반란 황소의 난, 고려의 망이·망소이의 난 등 고대와 중세에 일어난 동서양의 반란을 다룬다.

2부에서는 아이티 혁명, 프랑스 혁명, 미국의 메이데이, 동학농민혁명 등 근대 혁명을, 3부에서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중국공산당 대장정, 쿠바혁명 등 현대의 혁명을 이야기한다.

각 장의 말미에는 해당 사건의 원인과 결과, 교훈을 간략하게 요약했다.

나름북스. 480쪽. 1만8000원.

▲ 마르크스는 인간을 어떻게 보았는가 = 죄르지 마르쿠스 지음. 정창조 옮김.

헝가리 철학자 죄르지 마르쿠스(1934∼2016)가 1966년 쓴 마르크스주의 철학 입문서다.

저자는 책에서 마르크스의 인간학과 인류학을 토대로 인간이 지닌 사회성의 유기적 조건과 인간이 역사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인간의 본질은 역사를 초월해 있지 않고, 역사 속에서 형성되며, 서로 관계하는 가운데 드러난다는 것을 마르크스의 주요 저작을 통해 밝힌다.

두번째테제. 189쪽. 1만4000원.

▲ 턴어라운드 = L. 데이비드 마르케 지음, 김동규 옮김

패배주의가 만연했던 조직에 혁신을 불러일으켜 탁월한 성과를 거둔 미국 해군 핵잠수함 함장의 실화다.

저자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꼴찌’로 악명 높던 산타페 함을 이끌게 된다. 더욱이 이 함정을 6개월 안에 실전 배치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시키라는 난제까지 부여받는다.

부임 후 잘못된 명령을 받고서도 “위에서 시켰으니까요”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따르는 승조원들을 보면서 저자가 절감한 것은 ‘리더-팔로워’ 모델이 내포한 위험성과 그런 관행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었다.

함장이 되고서 그가 설정한 첫 번째 목표는 장교와 승조원들에게 통제권을 넘겨주는 것이다. 통제권은 일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최종 목표에 관한 의사결정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잠수함에는 일정한 지위계통을 따라 결정권자에게 정보가 전달되는 구조가 단단히 자리잡혀 있다. 저자의 계획은 의사결정 권한을 정보가 처음으로 생성되는 제일 아래 단계까지 내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보를 권한에 맞추지 말고 권한을 정보에 맞추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장들은 직속 부하들의 휴가 신청 정도는 자기 선에서 재가할 수 있기를 원했지만, 규정에 따르면 휴가를 승인받기 위해서는 7단계를 거쳐 올라갔다가 다시 7단계를 내려오는 결재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반장의 권한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반장에게 휴가 승인권을 준다면 과도한 휴가 신청이 있더라도 부하들에게 인기를 잃을까 염려한 반장이 승인을 남발할 우려가 있었지만, 저자는 관련 규정을 변경해 반장들의 요구를 들어줬다. 그 결과 반장들이 단지 부하 사병들의 휴가뿐만 아니라 정찰 근무 편성에서 자격시험 일정, 훈련소 등록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 걸쳐 관리 책임을 지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제권을 하부로 이양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저자는 역량, 즉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전문적 능력의 강화와 명료성, 다시 말해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이 조직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동반돼야 권한의 하부 이양이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역량과 명료성을 제고하기 위한 원칙들을 실제 적용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이렇게 저자가 구축한 ‘리더-리더’ 모델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산타페 함은 각종 훈련과 실전배치에서 ‘턴어라운드(바닥에서 탈출)’가 일어났으며 ‘만년 꼴찌’에서 가장 우수한 해군함정으로 거듭나게 된다.

세종서적. 364쪽. 1만9000원.

▲ 아파트 민주주의 = 남기업 지음.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지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한 주민자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많은 아파트 주민과 마찬가지로 저자 역시 관리사무소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아파트 활동’에는 무관심했다고 한다.

뜻하지 않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의 강권으로 동대표에 출마한 후 내친김에 회장 선거까지 나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 당선된다.

그러나 막상 회장이 되고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아파트에서 회장만 4차례 했던 ‘거물’과 한편인 다수의 동대표가 일찌감치 새 회장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고 사사건건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쪽으로 완전히 갈라선 아파트 자치조직의 갈등은 상대 세력의 해임 추진으로 이어졌고 비방과 협잡이 난무하는 가운데 법정 소송이 반복되는 등 정치판의 이전투구를 축소해 재현하는 것 같은 양상을 보였다.

‘적폐 세력’과의 지난한 투쟁 끝에 두 차례의 임기를 마치고 뜻을 같이하는 후임자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는 데까지 성공한 저자는 자신의 ‘분투기’가 아파트 운영 구조에 대한 제도개혁의 마중물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그간의 과정을 정리해 책으로 내게 됐다고 한다.

이상북스. 240쪽. 1만6000원.

▲ 나는 말하듯이 쓴다 = 강원국 지음.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하는 등 10년 이상 정·재계 주요 인사의 연설문을 썼던 저자가 말과 글에 관한 생각과 두 가지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선 말과 글이 ‘한 쌍’임을 강조한다. 잘 쓰려면 잘 말해야 하고 말을 잘하려면 잘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말 같은 글, 글 같은 말이 좋은 말과 글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책 제목 ‘말하듯이 쓴다’는 ‘평소 말하는 만큼 자주 쓴다’, ‘말 같은 구어체로 자연스럽게 쓴다’, ‘먼저 말해보고 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저자는 말과 글의 기본을 든든하게 만드는 7가지의 힘이 있다고 설명한다. 질문, 관찰, 공감, 통찰, 비판, 감성, 상상의 힘이 그것이다.

이어 말하기와 글쓰기에 필요한 기본 태도와 말과 글의 맛을 끌어내는 재료들에 관해 논한 뒤 ‘조금 쓰고 늘리기, 말해보고 줄이기’ 요령을 설명한다.

여기까지 숙달된 독자라면 다음 단계로 저자가 제시하는 ‘책 한 권 써보기’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위즈덤하우스. 380쪽. 1만6000원.

▲ 인문학으로 읽는 국악 이야기 = 하응백 지음.

민요를 비롯한 국악의 노랫말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배경과 의미를 설명한다.

고어 투거나 한문이 많이 섞여 있어 현대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국악 노랫말의 뜻을 찾기 위한 요령으로 우선 방언에 대한 이해를 꼽는다.

예를 들어 ‘상주 모심기 노래’에 나오는 “능청능청 저 비 끝에 시누올케 마주 앉아 / 나두야 죽어 후생 가면 낭군 먼저 섬길라네”라는 구절은 핵심 단어인 ‘비’가 경상도 방언으로 ‘절벽’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雨)’라고 잘못 이해하면 도저히 뜻을 알 수 없게 된다. 시누이와 올케 사이인 두 여자가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있다 강물에 빠지게 된 것을 보고 화자의 오빠가 자신의 아내, 즉 화자의 올케만 구한 것을 원망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또 전설과 지명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황해도 민요 ‘연평도 난봉가’에는 “긴작시 강변에 아가씨나무 바람만 불어도 다 쓰러진다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긴작시’는 연평도 북쪽 해안의 지명이며 ‘아가씨나무’는 가시나무가 변형된 말이다. 여기에 임경업 장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세자를 구하기 위해 항해하던 중 연평도에 기항했을 때 부식을 구하려고 바다에 가시나무를 꽂아두고 조기를 잡았다는 전설까지 알아야 이 구절이 나쁜 날씨를 우려하거나, 어떤 일이 잘 안될 것을 염려하는 뜻을 담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평안도 민요 ‘간아리’에 나오는 “뒷문 밖에야 시라리 타레 / 바람만 불어도 날 속이누나”라는 구절에서 ‘시라리 타레’는 시라리(시래기)를 말리려고 걸어놓은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평안도 출신인 김소월이 이 노래를 듣고 자랐을 것이며 그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 나오는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는 여기서 따온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밖에도 사당패 소리인 ‘놀량사거리’에는 시조와 한시, 18세기 한글 가사, 사당패들의 공간이동이 노랫말 속에 녹아 있다면서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해야 실체적 내용에 다가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휴먼앤북스(Human&Books) . 300쪽. 1만5000원.

▲ 에게해의 시대 = 송동훈 지음.

‘문명탐험가’를 자처하는 저자가 그리스와 에게해를 무대로 펼쳐진 500년간의 전쟁사를 정리했다.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알렉산드로스 전쟁, 헬레니즘 전쟁 등 고대 세계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전쟁들과 그 사이사이에 발생한 작은 전쟁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각각의 전쟁이 어떻게 맞물렸는지를 설명한다.

아테네, 스파르타,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등 도시·국가들과 크세르크세스, 레오니다스, 페리클레스, 알렉산드로스 등 한 시대를 수놓은 영웅들이 명멸하는 과정을 영화를 보여주듯 현장감 있게 서술한다.

또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등 철학자와 역사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그들의 외침과 가르침이 그 시대와 이후에 어떤 울림을 주었는지를 탐구한다.

저자가 역사의 현장을 찾아 직접 찍은 사진과 전쟁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도와 그래픽이 흥미를 더한다.

저자는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에 걸친 시대와 지중해 동부라는 장소가 멀고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펼쳐지는 끊임없는 문명의 충돌과 제국의 투쟁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썼다.

시공사. 432쪽. 1만9000원.

▲ 독한 세계사 = 이선필 지음.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격화한 개에서부터 한국 전래동화와 설화에 등장하는 개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등장하는 개 이야기들을 모았다.

사후 세계가 중요했던 고대 이집트에서는 망자의 삶을 심판하는 죽음의 신 아누비스는 검은색 개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지녔다. 장례사도 아누비스 형상, 즉 검은색 개 모양의 가면을 썼다.

저승에서 죽은 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개가 맡는다는 이야기는 동서양에서 공통되는데 저자는 무서움과 친근함을 동시에 지니고 특출한 능력으로 집이나 재산을 지켜주는 개의 속성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인간 중심의 문화가 팽배하던 중세에는 개가 부엌의 불을 때기 위해 쳇바퀴를 굴리기도 하고 인간들의 발을 데우기 위해 강제로 식탁 아래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고 계급이 발생하면서 개는 귀족과 엘리트들의 소유물이 됐고 그 덕분에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사육되면서 ‘동반자’의 위치까지 이르게 됐다.

동양에서는 개가 과거와 현재 따질 것 없이 꾸준히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고대 한국의 주류였던 북방 민족들은 전통적으로 늑대 숭배 문화를 가졌고 불교가 숭상하던 시대에도 살생을 억제했으므로 한국에서 조선 시대 이전까지 개고기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주장도 한다.

은행나무. 212쪽. 1만4000원.

▲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 김민정 지음

20편의 스토리텔링이 있는 드라마 비평을 묶은 책이다. 잡지 쿨투라에 연재한 글을 다듬어 출간했다.

‘드라마로 읽는 일상의 미학’, ‘영혼을 보듬는 드라마 한편’, ‘삶과 예술 사이에서 드라마의 길’, ‘드라마로 세상 낯설게 보기’ 등 네 가지 주제로 국내와 해외 드라마를 넘나든다. ‘동백꽃 필 무렵’, ‘열혈사제’, 미스터 션샤인’, ‘워킹 데드’, ‘굿 플레이스’ 등의 비평이 골고루 실렸다.

드라마 평론가인 저자 김민정은 “어떤 때는 인생의 조언을 듣는 마음가짐으로, 어떤 때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절실함으로, 어떤 때는 다시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굳건히 하기 위해,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듯 한 편의 드라마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나의 생각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도서출판 작가. 165쪽. 1만2000원

▲ 18세기의 방: 공간의 욕망과 사생활의 발견 = 민은경 등 27명 지음.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27명이 18세기 방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를 탐구한다. ‘18세기의 맛’, ‘18세기 도시’에 이은 이 학회의 세 번째 책으로, 포털에 연재됐던 내용을 재정리해 엮었다.

서양에서 집이 사생활을 보장하는 안락한 공간으로 재정의된 것은 18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다. 개인 공간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종류의 방이 배치됐고, 이에 따라 새로운 가구와 물건이 인기를 끌게 됐다.

제인 오스틴은 응접실 창가 작은 탁자 위에 아버지가 선물한 ‘글쓰기 상자(writing box)’에서 글을 썼다. 프랑스에서 수입된 ‘화장방’은 17세기 말부터 영국에 유행하기 시작했고 조너선 스위프트가 1732년 발표한 시 ‘귀부인의 화장방(The Lady’s Dressing Room) 등 문학작품과 그림의 소재가 됐다.

18세기 들어 영국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벽난로는 연기와 그을음을 처리하고 열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집안의 안락함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벽난롯가에서 책을 읽는 습성이 퍼지게 되는데 당대의 일부 문호들은 이를 부적절한 쾌락으로 연결해 우려하기도 했다.

수세식 화장실은 하수도 시스템이 정비된 18세기 말에 가서야 실용화되고 그 이전에는 옥외 화장실을 꺼리는 상류층이나 여성들은 침실용 요강과 좀 더 발전된 형태인 의자형 변기를 사용했다.

18세기 유럽의 방은 중국풍 가구와 인도산 면직물, 오스만 제국의 카펫 등 온갖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물건들로 가득했다. 이는 식민지 개척, 세계 교역의 활성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애완동물 기르기가 유행했던 것도 이 시기였는데, 식민지의 슬픈 산물이라고 할 흑인 시동을 ‘애완동물’의 일종으로 여겼음을 당대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주인의 초상화나 가족 초상화에 절대 등장하지 않는 다른 하인들과 달리 흑인 시동은 애완견, 원숭이, 앵무새와 함께 ‘애완동물’의 하나로 그림에 나타난다. 흑인 시동이 한결같이 개 목걸이를 연상시키는 은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책은 문학, 역사, 미술·디자인·조형, 도시·건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주로 18세기 서양의 방을 둘러보지만, ‘조선 시대 상층 여성의 거주공간과 삶’, ‘선비의 공부방이자 놀이터였던 사랑채’, ‘청대 귀족의 실내 풍경과 가구’, ‘일본의 도코노마와 장식용 선반’ 등과 같은 한국과 아이사 국가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문학동네. 440쪽. 2만5000원.

▲ 디어 마이 네임 = 샤넬 밀러 지음, 성원 옮김.

미국에서 ‘미투’ 운동의 불을 댕긴 2015년 스탠퍼드대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그 사건과 그 이후의 날들에 관해 털어놓는다.

파티에서 만취해 의식을 잃은 저자를 성폭행한 브록 터너는 ‘완벽한 유죄’였다. 목격자들이 있었고 현장에는 증거가 널려 있었으며 도주하다 붙잡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1년 반 동안 이어진 재판에서 ‘화장실에 숨어 있고 싶을 만큼’ 수치심과 고립감을 느껴야 했던 것은 피해자였고 유명한 수영 선수였던 가해자는 고작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그나마 3개월이 감형됐다.

그러나 저자인 피해자가 법정에서 최후 낭독한 의견 진술서가 인터넷과 SNS를 통해 퍼지면서 반전이 찾아왔다. 진술서가 공개된 지 4일 만에 1100만명이 읽었고 의회는 낭독회를 열었으며 진술서는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됐다. 담당 판사는 파면당했다.

2019년 ‘에밀리 도’라는 가명으로 진술서를 썼던 저자는 진짜 이름을 내걸고 더 크고 깊은 뒷얘기를 책으로 냈다.

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사건 이후 일상이 어떻게 뒤죽박죽이 돼가는지, 쉽게 말하는 ‘치유’가 실제로는 어떻게 가능한지, 다른 범죄에서와 달리 이름을 갖추고 살아가는 성폭력 피해자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통과 유머를 교차해 가며 기술한다.

말미에 ‘에밀리 도의 피해자 의견 진술서’ 전문을 실었다.

동녘. 544쪽. 1만9800원.

▲ 대격변 = 애덤 투즈 지음, 조행복 옮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분석한 ‘붕괴’로 주목을 받은 저자가 그에 앞서 출간한 책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대공황에 이르는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을 다룬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당시 영국의 군수장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Deluge)’에 빗대어 다가올 대격변을 예견했다. 이 말은 원서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의 말대로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의 정권 장악에 이어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제국의 왕가 몰락과 베르사유 협정, 유럽과 중동에서 국민국가의 탄생, 동유럽의 혁명과 반혁명, 러시아의 내전과 기근,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등 세계 각국의 정세는 숨 쉴 틈도 없이 요동쳤다.

대격변은 새로운 세계 질서로 대체되지 못한 채 대공황에 휩쓸려 파국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승리 없는 평화’와 강력한 디플레이션에 연계된 군비축소, 금본위제의 재건이 실패하고 미국이 국가주의로 회귀하는 과정을 세세히 분석한다.

윌슨을 비롯한 혁신주의자들은 미국이 20세기 역사의 대혼란에서 비켜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립주의를 택했으나 1930년대 국제적 도전이 거세지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정부는 그러지 못했다.

루스벨트의 뉴딜로부터 적극적이고 개입주의적 의미에서 세계 무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미국이 출현했으나 불안한 결론을 피할 수 없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사후에 비판하기는 쉽지만, 국제적 동맹과 협력의 추구는 당시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는 미완의 역사로 열려 있다는 사실 때문에 훨씬 감동적인 드라마이며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절대 작지 않은 도전”이라고 썼다.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전염병 대유행 이후의 전망을 다룬 ‘셧다운’과 기후위기의 정치학 ‘탄소’ 등 글로벌 위기 4부작 시리즈 가운데 남은 두 편도 집필 중이다.

아카넷. 748쪽. 3만3000원.

▲ 세계시민주의 전통 = 마사 누스바움 지음, 강동혁 옮김,

그리스와 로마의 스토아주의 철학자들부터 17세기의 휴고 그로티우스, 18세기 애덤 스미스를 거쳐 현대의 국제 인권 운동가들에 이르기까지 세계시민주의의 철학적 전통을 탐구한다.

저자에 따르면 서구 사상에서 세계시민주의 정치의 전통은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세계 시민”이라고 대답했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로부터 시작됐다.

그리스와 로마의 스토아주의자들은 세계시민의 이미지를 훨씬 더 완전하게 발전시켜 세네카가 말한 ‘태어난 공동체가 아니라 진정으로 위대하며 진정으로 공유되는 공동체, 어느 한구석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태양에 비춰 국경을 측량하는 인간적 포부의 공동체’가 우리의 도덕적·사회적 의무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그로티우스는 스토아주의 전통을 근대사회로 끌어들여 인류에 대한 존중이라는 자연법의 이념을 평화시와 전시 모두의 국제관계에 대한 주장에 적용했으며 스미스는 세계시민주의 전통의 통찰을 수용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인간의 능력을 떠받치는 물질적 토대를 새롭게 인정했다.

정치가 인간을 서로 평등한 존재인 동시에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진 존재로 여겨야 한다는 생각은 서구 사상의 가장 근본적이고 영향력 있는 통찰 중 하나로, 이러한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가치 추구는 현대의 인권운동으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이러한 전통이 철저히 인간중심주의적이며 존엄성의 핵심을 도덕적 추론능력과 선택능력을 가졌는지에 둔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세계민주주의 전통을 동물들과 자연계로 확장하고 물질적 불평등, 이민이나 시민권의 조건, 종교적 다원주의, 인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포용과 같은 문제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뿌리와이파리. 348쪽. 1만8000원.

▲ 생각의 시대 = 김용규 지음.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모스(수), 레토리케(수사) 등 고대 그리스인들이 고안해낸 5가지 생각의 도구들을 해설하고 그것이 인류 문명과 지성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풀이한다.

문명 전반에서 이집트인들에게, 건축과 천문학에서는 바빌로니아인들에게, 법률과 문학에서는 수메르인들에게 뒤졌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문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기원전 8세기 이들 생각의 도구를 하나둘씩 개발해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이 도구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창의력, 상상력, 문제 해결 능력, 비판적 사고력, 의사소통 능력을 제공했고 이는 합리적인 지식, 창조적인 예술, 민주적인 사회제도의 생산으로 이어져 기원전 450년에서 기원전 322년 사이 그리스의 황금기를 일구는 데 바탕이 됐다.

저자는 각각의 도구들이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전되고 적용돼 왔는지, 오늘에도 여전히 필요한 까닭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까지 철학, 고전학, 역사, 문학과 뇌신경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언어학, 교육학을 종횡무진으로 오가며 설명한다.

2014년 처음 펴낸 책을 개정해 재출간했다. 대중적 철학서와 인문교양서를 다수 집필한 저자는 앞으로 ‘이성의 시대’와 ‘융합의 시대’ 등 후속작도 잇따라 펴낼 계획이다.

김영사. 508쪽. 2만2000원.

▲ 달러의 부활 = 폴 볼커·교텐 토요오 지음, 안근모 옮김.

1970~80년대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을 주도한 두 저자가 브레턴우즈 체제의 성립과 붕괴, 1970년대 들어 심화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과 이에 대처하기 위한 양국 통화 당국의 움직임 등을 회고한다.

주로 폴 볼커(1927~2019) 전 미국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썼고 교텐 토요오(行天豊雄·1931~ ) 전 일본 대장성 재무관(국제 담당 차관)이 기억을 보탰다.

당연히 볼커의 기록은 1979~87년 연준 의장 재직 때 겪었던 일이 중심이다. 이 기간 제2차 오일쇼크와 인플레이션, 경기침체와 중남미 부채 위기, 급격히 부상한 일본의 경제적 위상 재정립을 추구한 플라자 합의, 지나친 달러 하락세에 제동을 걸기 위한 루브르 합의 등 세계 경제와 국제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볼커는 연준 의장으로 재임하면서 공격적인 통화 긴축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처해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경기침체와 실업률 급증의 여파로 곳곳에서 공격을 받았으나 볼커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잡을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1992년 쓴 이 책의 서문에서 볼커는 자신이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1950년대와 비교했을 때 당시의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강조했지만, 30여년이 흐른 지금의 경제 상황 역시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변화했다. 일본과 유럽의 경제적 부상과 미국의 하강이 주된 관심사였던 당시 논의들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경제 대국이기는 하지만, 갈수록 내부에서 보호주의적 세력과 맞부딪치고 있다. 우리가 국제금융기구들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는 갈수록 눈앞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만 사로잡혀가고 있다. 이런 기구들 안팎에서 기존의 재정적 기여를 줄이면서도 지배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목표는 장기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그의 지적은 마치 오늘날 미국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어바웃어북. 584쪽. 3만3000원.

▲ 디지털의 배신 = 이광석 지음.

첨단 기술이 가져온 성장의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와 기술 숭배의 부작용을 살핀다.

인류가 도구적 이성에 기대어 테크놀로지를 욕망할수록 지구환경과 인간 삶의 생태 순환계에 점점 균열이 가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제 그 균열은 일상, 사회, 노동, 미디어, 생명에 걸쳐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유튜브는 구글이 인수된 후 ‘자동 재생’ 기능을 서비스에 추가하면서 중간 광고를 제외하고 각자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원 없이 소비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그러나 투명한 듯 보이는 자동 알고리즘 장치에 편견과 관성을 내재화하고 재생산하는 문화 검열의 자동화 원리를 숨겨두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한다.

넷플릭스가 사용하는 알고리즘 ‘시네매치’는 영상 해석 주체인 전통의 시청자 개념을 완전히 해체했다. 그저 소수 태거에 의해 생산된 데이터와 알고리즘 기계에 의해 세분된 취향의 분류 틀 아래서 자족하는 콘텐츠 소비 주체만 남게 됐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거의 모든 인간 일상의 데이터 활동을 자본주의의 노동으로 형질전환하고 있다. 여기서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계약 노동자들의 플랫폼 활동을 감시·통제하고 고객의 체험정보를 연산 처리하는 고도화된 자동 명령어 구실을 한다.

저자는 자동화 논의를 숙명적으로 다가올 ‘노동 종말’의 상상 시나리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질적으로 나빠지고 위태로운 기술 예속형 ‘유령 노동’의 부상을 어떻게 현실주의적으로 대면할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물과사상사. 272쪽. 1만5000원.

▲ 돈이 된다! 주식투자 = 김지훈 지음.

대형 자산운용사에서 대체투자 운용 업무를 맡으며 기업분석 블로그를 운영 중인 저자가 초보 투자자를 위해 펴낸 책이다.

저자는 차트 분석이나 기술적 분석보다 먼저 ‘좋아하는 기업’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초보 투자자들에게 조언한다. 일상생활에서 접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만족한 경험이 있다면 기업 분석이 한층 쉽고 재미있어지기 때문이다.

책은 독자들이 넷플릭스를 즐겨본다면 ‘미디어’를, 4차 산업에 관심이 많다면 ‘전기자동차’를, 스마트기기를 좋아한다면 ‘폴더블폰’을 펼쳐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독자 스스로 관심 기업을 찾고 조사하면서 실전 투자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끈다.

진서원. 408쪽. 2만4000원.

▲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 = 마이클 린치 지음, 성원 옮김.

자신이 보고 싶은 것, 자신이 믿고 싶은 것 이외에는 모두 부인하고 ‘가짜 뉴스’로 몰아붙이는 섣부른 자기 확신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미국 코네티컷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가짜 뉴스와 음모론에 불을 지피는 파벌적인 자기 확신과 이로 인해 초래된 웃지 못할 일화들을 소개하면서 이런 행태가 초래하는 진정한 문제는 진실이 무엇인지가 더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양산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트럼프의 트위터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류 미디어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 사안을 트럼프가 기꺼이 입에 올린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를 통해 그동안 무시당해온 감정과 과소평가된 경험들, 이를테면 ‘기후변화는 사기’라거나 ‘이민자가 미국을 장악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비로소 재평가받는다는 것이다.

좌파도 대동소이하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똑똑하며 올바른 관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정하에서 많은 좌파는 마치 모든 보수주의자가 잘못된 가치를 좇을 뿐 아니라 멍청하거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 틀림없다는 듯 행동한다.

저자는 이처럼 집요한 오해와 의도적인 경멸이 일상화한 풍경 속에서 무너진 공공 담론을 회복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한다.

소크라테스는 정치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고 봤다. 저자는 이 질문을 바꿔 이제는 “우리는 어떻게 믿는가”를 물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메디치미디어. 280쪽. 1만5000원.

▲ 파시즘과 싸운 여성들 = 캐스린 애트우드 지음, 곽명단 옮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와 맞서 싸운 독일, 폴란드,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영국, 미국 등 8개 국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이 전쟁에서 영웅으로 기록된 이름은 대개 남성이고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여성도 자신이 벌인 활동보다는 ‘미녀’ 스파이 등 수식어로 더 주목받곤 했지만,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주부로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나치에 조국과 자유를 빼앗기고 그들의 반인륜적 행위를 목격하자 주저 없이 들고 일어선 여성들도 많았다.

오빠와 함께 ‘백장미’라는 조직을 결성해 반나치 전단을 돌리다 체포돼 처형당한 독일인 조피 숄은 법정에서 장광설을 늘어놓던 판사에게 “누군가는 시작했어야 했어요. 우리가 말하고 쓴 것이 바로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자기 생각을 당당히 밝힐 엄두를 못 낼 뿐입니다”라고 소리쳤다.

자신이 가정부로 일하던 독일군 장교의 집에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가 발각된 뒤 유대인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그 독일군 장교의 내연녀가 돼야 했던 폴란드인 이레네 구트는 전쟁이 끝난 후 이 사실을 내내 감추다 홀로코스트가 거짓이라는 신나치주의자의 말을 듣고 분개해 자신의 경험을 알리는 강연과 저작 활동에 나섰다.

미용사로 일하다 첩보원이 된 프랑스인 앙드레 마르타 비로 필은 나치에 발각돼 수용소로 보내졌고 처형되기 직전에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에 의해 해방됐다.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이렇듯 국적도, 직업도, 처한 상황도 모두 달랐지만, 광기로 뒤덮인 전쟁에서 정의의 편에 서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점에서는 한결같았다.

돌베개. 324쪽. 1만5000원.

▲ 페미니즘들의 세계사 = 플로랑스 로슈포르 지음, 목수정 옮김.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 이후 세계 근대사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돌아본다.

페미니즘이 시대적 조건과 추구하는 지향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는 점에서 페미니즘’들’이라는 표현을 제목에 담게 됐다.

평등과 자유라는 개념의 폭넓은 적용 범위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왜 페미니스트 운동에서 수많은 계파가 생성되고 그들 간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단일 목표냐 가능한 한 지평을 넓힌 목표냐, 개혁이냐 혁명이냐, 법률적·문화적 변화냐 광범위한 정치적 프로젝트와 연계한 변화냐에 따라 페미니즘의 지도는 복잡해졌고 아나키즘적, 사회주의적, 국가주의적, 시민주의적, 반식민주의적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가장 많이 회자하는 논쟁 중 하나는 선거권을 둘러싼 입장이었다. 여성의 선거권을 주장하던 그룹은 폭력적 행동까지 불사했다.

이 같은 의견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여성 운동가들은 선도적인 요구들을 둘러싸고 국가 단위, 국제 단위에서 종종 연대해왔고 억압적이거나 반동적인 정치 세력이 집권할 때는 다시 후퇴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연대투쟁은 자주 성공을 거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과함께. 184쪽. 1만1000원.

▲ 다 함께 놀자, 음악놀이터 = 한승모 지음, 박지원·박채현 그림

음악과 놀이가 한데 어우러진 교육현장의 생생한 풍경으로 초대한다. 자연스럽게 체화된 음악, 미술, 문학 등의 예술이 좋은 표현으로 아이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꿈꿔온 교육방법론이다.

책에서는 음악과 함께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이사이로 햇살처럼 퍼지는 음악적 배움이 느껴진다. 아이들이라는 음표가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교실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우고 싶은 교사들에게, 다양한 맥락에서 음악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들의 좋은 길잡이가 될 이 책을 추천한다.

에듀니티. 292쪽.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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