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작가회의 회장

[금강일보] 인간의 삶과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 불가분이 만들어가는 인류의 유구한 역사는 예술이 함께 하여 이뤄지는 것이다. 인간은 탄생과 죽음으로 일생을 마치는데, 탄생보다 죽음에 관한 문화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이 세상을 하직하는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애틋함은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그 죽은 자에 대한 마음을 담은 우리의 문화 가운데 하나로 만장이 있다.

지난달 27일 산내 골령골에서 만장(輓章)을 만났다. 만장은 고인의 공덕을 칭송하거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시(詩)를 종이나 천에 적어서 기(旗)처럼 만든 것으로서, 영구를 앞에서 끌고 인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골령골 만장은 한국전쟁 70주기를 맞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에 묻혀 있는, 무고하게 희생된 7000여의 영령들을 위한 시, 즉 만시(輓詩)를 붓으로 쓴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만장이지만 골령골 영령들을 배웅하는 만장의 울림은 깊고 컸다.

만장은 불과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장례에서 상여와 함께 흔히 볼 수 있던 것이었다. 당시에는 초상이 나면 만장을 써서 보내는 것을 가장 큰 부의(賻儀)로 여겼고, 받는 쪽도 고인의 덕망과 학식에 대해 쓴 만사(輓詞)를 받으면 매우 큰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만장의 길이와 너비는 정해진 것은 없으나 대략 길이는 240㎝, 너비는 60㎝이며 빛깔은 흰 종이나 천(비단)을 사용했다. 그 종이나 천의 위와 아래에는 작은 축대를 쓰고 대나무로 깃대를 만들었다. 만시의 규격 또한 일정하지 않았다. 한시(漢詩)의 경우 오언절구와 칠언율시로 쓰거나 고사체 정문을 짓기도 했다.

골령골 만시는 대전작가회의 시인들과 한국작가회의 지회와 지부의 시인들이 참여해서 쓴 것이다. 그 시는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러한 비통하고 참담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만장은 제상(祭床)을 중심으로 위령제 행사장 가장자리 둘레에 매어져 있었다. 색색의 천에 붓글씨로 쓴 만시는 유월의 바람에 자유로이 나부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초록과 어우러졌다. 그 광경은 무엇으로도 그려낼 수 없는 장엄에 이르는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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