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금강일보] 한국전쟁 70주년을 눈앞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유지되던 평화와 화해협력 기조가 호전적인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적대적 대립관계로 급선회했다. 급기야 ‘작은 통일’의 상징으로 평가받던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가 거친 폭음과 검은 연기 속에 무너져 내리는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면서, 냉전의 마지막 섬이자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반도의 험난한 숙명을 되새기게 된다.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6·25전쟁’은 남북의 극한적 이념대립이 빚은 참혹한 동족상잔을 언제 어느 쪽이 먼저 시작했는가를 말해 줄 뿐, 이 전쟁의 성격과 진행 과정 그리고 임시적 결말 등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간 체제경쟁의 대리전이라는 정체성을 간과하게 한다. 사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맺어진 미국과 소련의 동맹관계가 와해되면서 새로운 전후 질서에 합의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반도 분할 점령은 이미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소련의 동아시아 지역 참전의 대가로 약속됐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드러난 미국과 소련의 갈등은 1947년 공산주의 세력 저지를 공식화한 ‘트루먼 독트린’에 대한 스탈린의 불가피한 투쟁 표명으로 최고조에 이르면서 이른바 ‘냉전’이 시작됐고, 이는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린다. 이런 세계적인 냉전 와중에 25개 나라가 관여한 뜨거운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그래서 한국전쟁은 ‘냉전시대 최초의 열전(熱戰)’으로 불린다.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으로 약 450만 명이 희생됐는데 그 중 3분의 2가 민간인으로, 이 전쟁의 잔혹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피어린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 작가 김성동의 아픈 가족 이야기 ‘눈물의 골짜기’가 발간됐다. 이번 소설집은 그의 가족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극한적 이념 대립으로 풍비박산이 난 아픈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좌익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김봉한과 남편의 순수한 이상에 동조해 남로당에 가입하고 인민공화국 시절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을 맡았던 어머니가 겪은 감옥살이와 고문 후유증을 중심으로, 인민공화국 시절 애국자의 유가족으로 고향에서 토지분배위원장을 맡았던 조선왕조 마지막 선비셨던 할아버지, 조선민주청년동맹위원장을 했던 큰삼촌 그리고 고향에서 면장을 하다가 인민군에게 처형당한 외삼촌을 곁가지로, 전쟁의 광기로 친가와 외가가 함께 몰락해 남은 가족이 평생을 찰가난 속에 살아야 했던 이야기들을 약간의 허구 또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마술적 사실주의’로 풀어냈다.

한국전쟁 70주년은 산내학살 희생자들이 희생된 지 70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50년을 숨죽이며 살던 유족들이 용기를 내 이곳에서 산화한 희생자들의 넋을 함께 기리는 합동위령제는 이번이 21회째다. 산내 희생자 유족인 김성동은 합동위령제에 공식적으로는 딱 한 번 참석했다. 2016년 그의 선고(先考) 탄생 100년이 되던 해에 아버지께 올리는 제문인 제망부가(祭亡父歌)와 함께 덧붙여 쓴 중편소설 ‘고추잠자리’를 헌정했다. 이번엔 피 맺힌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그의 가족사를 그린 작품들을 모은 소설집 ‘눈물의 골짜기’를 70년 만에 희생된 영령들께 올려드리니 그 의미가 자못 크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우리 국토 어디인들 아픔 없는 곳이 있으랴만, 지금도 우리 민족사와 강산을 관통하는 한(恨)으로, 한국전쟁 전후 겪은 ‘학살의 상처’를 들 수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민간인 집단학살 희생자가 어림잡아 100만 명은 될 것이라 하니, 이를 기억하고 기록해 진상을 밝히고 원혼들의 억울함을 달랜 뒤 유가족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적절한 배상을 하며, 이런 만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학살 현장을 평화교육의 장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학살의 기억을 문학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화석화된 역사를 육화(肉化)된 현실로 복원해내는 작업이어야 할 것이다. 김성동의 이번 소설집 출간이 이런 복원과 치유작업의 큰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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