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장

 

자가격리의 시초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라는 유머가 흥미를 끈다. 곰은 빛도 없는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인간이 됐고 호랑이는 자가격리 기간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인간이 못 됐다는 얘기다. 때론 코로나19에 걸린 곰과 호랑이가 자가격리 처분을 받았지만 곰만이 순응해서 치료됐고 그런 곰의 후손인 우리나라가 코로나를 잘 극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유머다.

코로나19로 전국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신화 속 곰과 호랑이 이야기가 잠시나마 마음을 위로해 준다. 덕분에 마늘 소비가 늘었을 법도 하고 마늘 농사 풍년으로 오히려 걱정하는 농민들에게 작은 보탬이라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튼 격리를 잘한 곰은 땅을 대표하는 인간이 돼 하늘에서 온 환웅과 결혼해서 개국시조 단군을 낳았다. 하늘을 상징하는 남자와 땅을 상징하는 여자의 결합이니 동양적 ‘천지합일’의 정신이 담겼다. 하늘과 땅의 결합으로 한민족 지도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렇듯 한민족 건국신화의 의미가 새롭다. 하느님 환인은 인간세계를 널리 이롭게 하고자 하는 ‘홍익인간’의 원대한 뜻을 품고 아들 환웅에게 그 사명을 맡겼다. 하지만 홀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함께할 배필을 찾았고 거기서 곰과 호랑이가 경쟁자로 나섰다. 하느님은 제한된 공간 자가격리를 통한 인내력 테스트로 웅녀를 선택했고 이들이 결혼해 공동체의 기초인 가정을 이루고 단군을 낳았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자가 인간이 되고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신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상극이 아닌 상생 공존을 그리고 있다. 선택한 경쟁방법도 상대와 치고받는 난타전이 아닌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경쟁해서 이긴 곰은 지도자의 어머니가 되었고, 패한 호랑이는 죽지도 죽이지도 않았다. 이긴 자와 진 자의 결과가 피를 부르며 살인으로 이어지는 서구사회 신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승자로 영웅이 된 곰에 대한 민간의 이미지는 오히려 부정적이다. 미련하고 게으르고 둔탁한 사람을 가리켜 곰에 비유한다. 현대사회 만화 캐릭터로 등장한 귀여운 곰들이 분위기를 바꾸기는 했지만 전통적 곰의 이미지는 ‘미련 곰퉁이’형이 대부분이다. 반면 경쟁에서 진 호랑이는 사람을 해친 못된 짐승으로 일부 나오긴 하지만 민간에 전래된 설화의 이미지는 친숙하고 어려움을 도와주는 고맙고 따뜻한 존재이다. 질병과 악귀를 물리치는 신비한 힘의 소유자 영물로 호랑이를 그리고 있다. 길조인 까치와 더불어 호랑이는 민화의 주인공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천사와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 효심에 감동해서 도움을 주는 주역으로 호랑이만큼 많이 나오는 동물도 없다. 병든 부모 치료에 정성을 다하는 효자에게 꿩과 노루를 물어다 줬고 술 취해 잠든 노인 주변 숲에 불이 나자 온몸에 물을 적셔 불을 꺼 줬다. 깊은 산에서 시묘살이하는 효자를 지켜주며 3년간 호위무사역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전 은진송씨 가문의 기틀을 마련한 쌍청당 송유의 모친, 고흥유씨가 남편 잃고 시부모 봉양 위해 개성서 대전까지 내려올 때 호랑이가 안내했다는 설화도 유명하다. 청상과부 유씨는 어린 아들 송유를 업고 내려오면서 폭도를 피해 주로 밤길을 이용했는데, 한밤중 나타난 호랑이가 유씨 모자를 안내하며 호위했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경쟁해서 승패가 갈리긴 했어도 둘 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각각의 역할을 했다. 이는 상생 공존을 추구하는 한민족 정서와 가치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갑갑한 격리를 감내한 곰은 묵묵히 일하는 지도자의 성실한 모습을 그렸고 인내하지 못하고 동굴을 벗어난 호랑이는 특유의 날쌔고 용맹한 모습으로 악귀를 쫓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효자를 돌보는 착한 역할로 등장했다. 동물의 특성을 빗대어 각기 맡은 책무를 반영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사회분위기 속에서 인내의 미덕으로 귀감이 된 곰의 리더십과 비록 인내심은 부족했어도 강한 힘을 좋은 일에 사용한 호랑이에 대한 신화와 민간의 이야기를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상생 공존의 우리 문화가 나왔고, 핵심요소로 효문화가 뿌리내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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