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사람이 살고 죽는다는 것
  • 금강일보
  • 승인 2020.07.1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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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 명예교수

지금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는 어려움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소식이다. 이런 것은 다 자연에 그러할 때가 됐기에 나타나는 일이다. 그런데도 내 맘 한 구석에 누구인가 떠나가고, 누구인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어느 심정의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 때문에 하늘이 울고 천지가 진동할 리는 없는 것이지만, 내 맘이 그러하단 말이다. 

나는 최근 몇 번 슬픈 눈물을, 남몰래 뜨겁게 흘렸다. 또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여 보았다. 김종철 선생과 박원순 선생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생각과 일과 말과 무슨 연결이 중단되는 듯한 느낌에 오래도록 사로잡혔다. 웃을 기운이 없었고, 평상시처럼 말하고 지내기가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하고 생각을 하다가도 문득 그들이 떠오르면 울컥 슬픔을 머금은 눈물이 목울대를 지나 눈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이었다. 이 두 분은 참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남기고, 또 희망을 안겨 주었다. 빚을 남겼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빚을 지었고, 희망을 주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자신들은 희망없이 보이는 세상을 온 뫔(몸과 맘)으로 헤치며 살았다. 

한 분은 ‘녹색세상’을 위하여 당신의 후반기 삶을 불살랐다. 온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녹색생활을 방해하거나 추동하는 삶과 생각들을 지식정보망을 통하여 샅샅이 뒤지면서 희망스런 씨앗 하나를 찾기 위하여 투신하였다. 동서고금의 문명과정을 철저히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세계와 사상을 펼쳤다. 그의 글들은 끊임없이 아프고 날카롭게 쏘아대는 등에와 같았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각없는 관행의 삶을 완전히 되돌려 다른 길을 가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녹색사상, 녹색세상을 찾고 전파하기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는 끊임없이 불면증과 이명에 시달리면서도, 세상과 인류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계를 찾아나섰고, 산업과 자본중심의 생명착취와 죽임, 그리고 자연파괴의 잡소리들이 바뀌어 참소리가 들려오기를 갈망하였다. 그의 글들은 읽은 사람들에게 매우 불편한 진실을 던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찔린 양심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는 깊은 녹색사상을 펼친 놀라운 사상가였다. 

한 분은 참 날카롭고 성능 좋은 스캐너와 같은 눈을 가졌다고 본다. 낙망스럽게 지저분한 이 세상을 희망스럽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꾸기 위하여 온 뫔을 던졌다. 그의 발은 온 세상이라 할만큼 많은 지역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녔고, 사람사람들을 만났다. 그 자리 그 사람에게서 용솟음치는 희망과 아름다움의 씨앗을 찾았고, 그것을 끊임없이 여기저기에 아낌없이 뿌렸다. 그의 눈은 썩어가는 것 속에서 새롭게 솟아나는 생명의 씨를 보았고, 파괴되어가는 폐허와 같은 곳에서 새로운 희망의 싹이 트는 것을 보았다. 그의 말을 듣고,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자기도 모르게 긍정스런 요소들이 자기 속에, 자기가 살고 있는 더럽다고 느낀 그 지역에 들풀처럼 깔려서 자라고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는 희망을 만들고, 아름다움을 그리고, 그렇게 변화시키는 마술사와 같았다. 그는 끊임없이 더럽게 죽어가는 강물을 맑고 생기 있는 강으로 만들려 했고, 방사능과 더러운 작은 먼지로 오염된 세상을 맑고 깨끗한 세상으로 갈 길을 세밀한 곳에서까지 찾으려 하였다. 지독하리만큼 철저하게 재산을 증식하고, 남을 착취하는 문명구조에서 아름답고 기분 좋게 주고 나누면서 사는 길과 뜻을 찾고 따르는 삶이 어떤 가치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삶으로 증거하였다. 그는 희망과 아름다움의 연금술사였다. 

그들이 이 세상에 왜 나왔는지, 왜 그런 삶을 살았는지 속 뜻을 알지는 못한다. 그 두 분은 자신들이 꿈꾸고 희망했던 세상을 찾기에 불을 밝혔고 삶을 불살랐다. 한 사람은 생각과 글로 잠자는 혼을 쏘아 깨우는 등에로, 다른 한 사람은 아픈 그곳을 어루만지고 북돋우며 풍성하게 사리며 행동하는 삶을 살았다. 그분들이 가졌던 풍성한 고뇌와 삶은 이제 일반 우리가 우리들의 일상으로 살아내야 할 과제를 가지게 됐다. 그분들은 잘 익고 틈실한 씨를 풍부한 언어와 행동으로 이 땅에 뿌렸다. 얼토당토않을 것 같은 사고와 행동의 발상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가는 한 실례를 보여주었다. 그분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시대의 십자가를 충실히 짊어지고 갔다. 그 짐은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복음이 되기에 충분하다. 다만, 그것을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어느 사람이든 그가 가지는 약점은 나에게는 관심 밖이다. 그분들이 가졌을 어떤 약점과 부족함도 나에게는 관심이 없다. 나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약점과 부족의 덩어리를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런 부족함 속에서도 스스로 날개 쳐 올라가는 불사조와 같았던 그분들의 불타는 열정을 사고 싶다. 허점투성이인 내 자신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될 것 같지 않은 엉뚱한 일을 찾아 나가고 싶다. 그 두 분은 왜 그렇게, 충분하고 왕성하게 일할 수 있을 때, 그렇게 황망히 떠났을까? 한 사람의 위대한 사상가나 활동가가 활발하게 움직일 때는 다른 일반 사람들은 대개 방관자나 관찰자로 머물기 쉽다. 일은 그렇게 타궐한 한 두 사람의 영웅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보면 그들을 영웅이 되도록 하늘은 허락하지 않은 듯하다. 모두가 함께 오래도록 할 때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한 두 사람의 불사름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을까? 아니지, 모든 사람은 다 자기가 주체로 자기 삶과 자기 세상을 꾸리는 것이지, 어느 누가 대신 해 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가? 이렇게 삶은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 연결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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