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세계문화유산!
문화유산에는 어떤 것들이?
돈암서원, 소수서원 등 서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원들

조선 중기 이후 명현을 제사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워진 사설 기관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서원이다. 서원은 조선시대 당시 성균관과 향교와 비교할 때 현대의 사립지방학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 장소이다.

이 서원들 도동서원, 소수서원, 돈암서원 등 9개의 서원들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 소수서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소수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 55호로 지정된 서원이다. 소수서원 경내 건물로는 문성공묘, 명륜당, 일신재, 직방재 서장각 등이 있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였던 주세붕과 고려 말 유현인 회헌 안향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소수서원에서 제향하는 인물로는 회헌안향과 신재 주세붕이 있다.

회헌안향은 본관은 순흥이며 시호는 문성공이다. 안향은 소백산 정기를 받고 태어난 위대한 인물로, 우리나라에 중국 주자학을 최초로 보급하며 우리나라에 유교의 토대를 만든 분이다.

신재 주세붕은 조선시대 석학이며 도학자로 호는 신재, 본관은 상주, 시호는 문민공이며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의 시초인 백운동서원의 창건자이다.

소재지 : 경북 영주

건립년도 : 1543년

제향 인물 : 안향, 주세붕

 

◎ 도산서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사면 토계리에 위치하여 있다. 서원의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져 있다.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도산서원은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이황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이황이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원은 배향공간인 상덕사, 동편 도산서당건물인 박약재와 서편건물인 홍의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산서원에서 제향하는 인물로는 퇴계이황이 있다.

퇴계이황은 연사군 7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이황은 어릴 적부터 배우기를 좋아해서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고, 깊이 사색하고 스스로 깨우치고자 한 인물이다.

퇴계이황은 조선시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교육자, 정치인으로 그는 40년 가까이 관직에 머무르며 300명이 넘는 제자들을 양성한 인물이다. 또한 조선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선비인 퇴계이황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위인 중에 한 분이다.

소재지 : 경북 영주

건립년도 : 1574년

제향 인물 : 퇴계 이황

 

◎ 병산 서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에서 비롯되었다.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으로,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풍악 서당의 유생들이 난리 중에서도 학문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이를 보고 왕이 크게 감동하여 많은 서책과 사패지를 주어 유생들을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설화가 있는 병사서원은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게 되는데 이때부터 병산서원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병산서원에서 제향하는 인물로는 류성룡이 있다.

서애 류성룡의 본관은 풍산, 자는 이현, 호는 서애, 시호는 문충이며 1542년 의성현 사촌리 서림 외가에서 류중영의 둘째 아들로 출생한 인물이다. 서애 류성룡은 도학, 문장, 덕행 글씨로 이름을 떨쳤고, 특히 영남 유생들의 추앙을 받았다. 저서로는 징비록, 구경연의, 문산집등 다양하다. 서애 류성룡은 1614년 병산서원 존덕사에 제향 되었고, 그 후 상주 도남서원, 의성의 빙계서원, 군위의 남계서원, 예천의 삼강성원에 제향 된 인물이다.

소재지 : 경북 영주

건립년도 : 1613년

제향 인물 : 류성룡

 

◎ 옥산서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적 제154호로 1572년 경주 부윤 이제민과 도내 유림들의 공의로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 자리를 정하고 묘우를 건립한 것이 옥산서원이다. 이러한 옥산 서원은 다음 해에 서악의 향현사에 있던 위패를 묘셔왔고, 1574년 옥산이라고 사액 되었다. 이러한 옥산서원은 서원 철페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옥산서원에서 제향하는 인물로는 이언적이 있다.

본관은 여주 호는 회재 자계옹, 자는 복고 원래 이름은 적이었으나 중종의 명령으로 언적으로 고쳤따. 이언적은 경주에서 태어나 손중돈에게 글을 배웠으며, 1514년 문과에 급제하여 별슬을 시작하였다. 그는 기보다 이를 중시하는 주리적 성리설은 이황에게 계승되고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설이 되었으며, 조선 성리학의 한 특징을 이루게 한 성리학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봉선잡의, 구인록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소재지 : 경북 경주

건립년도 : 1572년

제향 인물 : 이언적

 

◎ 도동서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동서원은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 김굉필을 배향한 서원으로써 400년된 은행나무와 함께 아름 다운 담장으로 전국 최초 담장이 보물로 지정된 곳이다.

1964년 전면 보수를 한 도동서원의 경내 건물은 사당, 중정당, 거인재, 거의재, 수월루 등이 있다.

도동서원에서 제향하는 인물은 김굉필이다.

김굉필의 본관은 서흥, 자는 대유, 호는 사옹 한훤당이며, 시호는 문경이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소학에 대하여 심취한 그는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칭하였다.

김고이필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로,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를 만나 학문을 전수해준 인물이다.

소재지 : 대구 달성

건립년도 : 1605년

제향 인물 : 김굉필

 

◎ 남계서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 명종 7년 개암 강익이 문헌공 정여창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고 남계서원이라 칭한 서원이 남계 서원이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사액된 서원으로 명종 21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남계서원은 6·25전쟁이 일어나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 하지만 1990년에 영천 이씨, 남양 홍씨, 경주 이씨, 연안 이씨 등 7개 문중 후손들이 뜻을 모아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남계서원에서 제향하는 인물은 정여창이다.

정여창은 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로 본관은 경남 하동이나 그의 증조인 정지의가 처가의 고향인 함양에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함양사람이 되었다. 조선 전기 문신 겸 학자인 정여창은 성리학의 대가로서 경사에 통달하고 실천을 위한 독서를 주로 한 인물이다. 그의 저서로는 용학주소, 주객문답설, 진수잡저 등이 있다. 이 저서들은 무오사화 때 그의 부인에 의해 태워져서 현재는 없다.

소재지 : 경남 함양

건립년도 : 1552년

제향 인물 : 정여창

 

◎ 필암서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75년 4월 23일 사적 제 242호로 지정된 필암 서원은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전쟁으로 인하여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24년에 다시 세워진 필암 서원은 유생들의 소청으로 1662년 사액을 받고 1672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868년 흥성대원군이 서원철페령을 내렸을 때에도 호남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사액서원으로 역사가 깊은 사원 중에 하나이다.

필암서원에서 제향하는 인물은 김인후이다.

김인후의 본관은 울산으로, 자는 후지, 호는 하서 담재, 시호는 문정이다. 1510년 전라도 장성현 대맥동리에서 출생한 김인후는 1528년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이후에는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치는 등 훌륭한 인물이었다. 인종이 즉위 9개월만에 사망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성리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정진하였다.

소재지 : 전남 장성

건립년도 : 1590년

제향 인물 : 김인후

 

◎ 무성서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성서원은 조선시대 핵심 이념인 성리학을 보급한 무성서원은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령 속에 살아남았던 전북지역의 유일한 서원이다. 무성서원에는 고운 최치원 선생과 국내 가사 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을 지은 정극인 선생 등 7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정읍시는 무성서원 본연의 교육 기능을 살리고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무성서원에서 제향하는 인물은 최치원, 신잠이 있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를 대표할 만한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최씨 가문출신이다. 최씨 가문 중에서도 유명한 한 사람으로서, 새로 성장하는 6두품출신의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치원은 자신을 유학자로 자처하면서, 불교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며 승려들과 교류하고, 불교관계에 대한 많은 글을 남기었다.

신잠의 본관은 고령이며 호는 영천자 아차산인, 자는 원량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잠은 1553년 상주목사를 지냈으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부모처럼 받들은 인물로 인품이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는 시, 서, 화에 모두 능하여 삼절이라고 불리었다.

소재지 : 전북 정읍

건립년도 : 1615년

제향 인물 : 최치원, 신잠

 

◎ 돈암서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이 타계한지 3년 후인 1634년 충청도 연산현의 임리에 창건되었다. 창건시 김장생을 주향으로 모셨고, 1658년 신독재, lawlq을 추배하였다. 이어 1688년 동춘당 송준길, 1659년에는 우암 송시열을 각각 추배하였다.

돈암서원은 호서는 물론 기호 전체에서 존숭받는 서원으로서 김장생을 제향하는 서원 중 가장 비중있고 영향력 있는 서원으로 인정받았다.

돈암서원에서 제향하는 인물은 김장생이다. 사계 김장생은 예학의 선구자이다. 예학은 조선 중기 성리학의 새로운 흐름이다. 예학은 엄격한 질서와 정교한 형식을 중시하는 연구 학문인데 김장생이 주도 해준 덕분에 연구가 활발해졌다.

소재지 : 충남 논산

건립년도 : 1634년

제향 인물 : 김장생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위의 서원들은 한국 서원의 특성과 발전을 보여주며, 서원이 건축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 발전하였는지 각각의 과정을 보여주며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여주었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선정된 서원은 필수 공간 요소인 제향공간, 강학공간, 교류와 유식공간을 구성하는 가 건축물뿐만 아니라 원래의 지형, 주변 환경을 온전하게 유지하며 완전성을 인정받았다.

위의 서원들은 기록유산, 무형유산에 속하는 것들도 잘 보존, 전승하고 있으며, 제향은 지금까지 창건 당시의 모습 그대로 계승되어 시행되고 있다. 기록유산과 무형유산 모두 개별 유산들의 지속된 전통을 보여주며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완전성, 진정성 등을 인정받아 한국의 9개의 서원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위의 서원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만큼 사람들에게 더욱더 알려져서 이들 서원이 각광 받으면 좋겠다.

 

김선욱 대학생 기자 06ks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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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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