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나 둘은 어떤 사실을 일반화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하지만 셋은 다르다. 일반화할 수 있는 수치이다.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무려 세 곳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의 성추행이 발생했다. 전 국민이 시청하는 TV 화면에서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시장·지사의 모습은 이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카메라 앞에 설 용기가 없던 한 명은 자살이라는 아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추행을 저지른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자의든 타의든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그래서 국민이 느끼는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사건이 두 건 연이어 발생할 때까지만 해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세 번째 사건이 터지자 다수 국민의 생각은 달라졌다. 성추행의 원인이 구조화돼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재발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건의 주인공인 세 명이 같은 정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특정 정당을 부도덕한 정당이라고 몰아세우는 이들이 생겨났고, 이것이 광역자치단체장들의 일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정당을 초월해 발생할 수 있는 일이며 모든 기관과 기업·단체 등에서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사한 일이 터질 때마다 나는 이것이 공직사회에 구조화된 제왕적 관료주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공직사회를 오랜 기간 가까이서 지켜본 입장에서 노골적으로 말하면 한국사회는 기관장이 되는 순간, 신격화의 대상이 된다. 평범한 일상인이 갑자기 제국의 황제로 돌변하게 된다. 과도한 섬김과 불가침의 대상이 된다. 인격까지 신성시 된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범접할 수 없는 지존이 된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당사자가 그걸 원하거나 시켜서 그러는 게 아니라 조직문화가 아주 오랜 시간 그렇게 세팅돼 있다는 점이다.

기관장이나 단체장에게 베푸는 특별한 예우를 조직에서는 ‘의전’이라는 이름으로 행한다. 외부인이 볼 때는 민망할 정도로 과도한 예우지만, 조직 내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아주 오랜 세월 굳어진 관행이다. 처음 기관장이 되면 과도한 예우를 거북하고 불편하게 여기다가 세월이 지나면 시나브로 익숙해진다. 한국사회에서 기관장이 되면 상상도 못 할 혜택을 받게 되고, 더불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다. 특히 조직 구성원들에 대한 인사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큰 힘이 된다.

의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과도한 예우를 보면서 ‘(의전을 행하는) 저들은 자신의 부모에게도 저런 예우를 할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눈에 보이는 예우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 기관의 모든 일은 기관장 중심이다. 공무원이 본연의 업무보다 의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일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기관장이 참여하는 행사는 며칠 전부터 관련 직원이 총동원돼 미리 동선을 파악하고, 기관장이 불편을 느낄 만한 일이 없는지 살핀다. 국민의 눈으로 볼 때는 소모적인 행정력 낭비일 수밖에 없다.

모든 조직 구성원은 기관장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다. 인사와 승진이 모두 기관장의 손에 의해 집행되기 때문이다. 여러 기관장이 참석하는 행사가 벌어지면 그곳은 기관들의 의전 경연장이 된다. 볼썽사나운 의전 경쟁이 전개된다. 이런 생활을 수개월, 수년에 걸쳐 겪게 되면 기관장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달콤함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 조금씩 월권과 일탈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은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된다. 기관장들이 자행하는 성추행도 이 같은 실상의 연장선에서 살펴볼 수 있다.

기관장을 신격화하는 잘못된 공직문화가 그들을 파렴치범으로 만들고 있다. 공직사회를 아주 가까이서 오래 지켜본 내 눈에는 적어도 그렇게 비쳤다. 공직사회에 오랜 세월 만연된 과도한 의전이나 무소불위의 권력집중 등을 견제할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만들지 못하면 유사한 사건은 언제고 재발할 수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직시하고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특히 공무원의 인사와 승진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사태의 재발은 공직사회 문화와 시스템을 바꾸는 일을 시작점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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