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MBC 스포츠캐스터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최숙현 선수가 소속팀 내 폭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팀 감독과 선수가 최근 영구 제명되는 등 가해 당사자들은 징계를 받았지만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최숙현 선수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체육회, 경주시청, 경주경찰서,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피해를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느 한 곳도 최 선수의 사정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이 허무해 하고 있다.

#. 심석희 선수 사건을 벌써 잊었나?
사실 스포츠폭력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터지면 화제가 됐다가 잊히고, 또 터지면 공분에 휩싸이고, 계속 반복하고 있다. 이번 비극을 통해 지난해 초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성폭력 폭로 사건이 다시금 떠오른다.

당시 심석희 선수 사건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가혹 행위 문제가 먼저 드러난 것이었다. 대통령이 진천선수촌을 격려차 방문했을 때 주장인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코치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선수촌을 이탈한 사실에 속 내용이 밝혀지게 됐다. 이후 국정감사에서는 심석희 선수가 폭행 사실을 폭로하려던 걸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이 막으려 했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고, 대한체육회도 내부에서 쉬쉬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관리자들은 입막음에만 급급했고, 해결하려는 의지 없이 일이 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만 가지고 있던 것이다. 결국 상황을 보다 못한 심석희 선수가 꺼내기 힘든 말을 꺼낸 후에야 그제야 사회는 심석희 선수를 돌아보게 됐다.

당시 문화체육부는 “스포츠 강국이라는 미명 하에 선수들이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앞장서서 노력하겠다”며 대책을 내놨고,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 역시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미래를 무기로 부당한 행위를 일삼는 관행을 뿌리 뽑겠다”라고 밝히며 스포츠 성폭력 근절 대책을 내놨다. 스포츠혁신위원회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또 드러났다.

#. 일단은 내부에서 막고 보자?
최근 경찰 신고로 드러난 한국체대 남자 핸드볼팀의 폭력 사건. 라면을 붓고 칼을 던지는 등의 심각한 수준이었다. 평소 선후배 간의 폭력은 어느 수준일지, 선수들의 성적을 올린다며 현장 관리자와 상위 감독기관이 폭력을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있다.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는 퓨처스팀의 음주사건과 관련한 체벌, 폭력문제가 또다시 터지며 시끄럽다. SK와이번스 구단은 체벌을 가한 선배 선수 2명에게 벌금과 주의를 내렸고, 신인급 선수 2명에도 제재금을 부과했다. 아울러 반성하라며 3주간 템플스테이를 보냈다. 하지만 문제는 관련 내용을 내부 문제로만 판단했다는 점이다. 상급 기관인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보고하고 공론화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자체 징계 사유로 오판하고 당사자들에게 경징계만을 내린 것이다.

#.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지난 2월 발표된 감사원의 ‘국가대표 및 선수촌 등 운영 관리 실태’ 조사를 보면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폭력·금품수수·승부조작 등 직무상 부정, 비위 행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징계처분을 받아 체육지도자 자격취소나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지도자가 97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15명은 여전히 학교 등 체육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린 시절부터 폭력에 노출된 선수들, 이런 폭력에 대한 주변의 방관과 관리자들의 은폐. 이런 점들이 우리 체육계를 계속 병들게 하고 있다. 폭력 자체가 가장 큰 문제겠지만 이를 묵인하는 관리감독 기관의 책임도 심각한 문제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있었던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또다시 “체육계의 폭력 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이야기했다. 박양우 문화체육부 장관은 8월 출범하는 스포츠윤리센터를 통해 제도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언제까지 터진 후에야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뒷북치는 발표만 할 것인지 모르겠다.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는다면 고 최숙현 선수와 같은 비극은 또 나올 수 있다. 책임 당국은 꼭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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