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충남대 인연으로 시작
삼고초려 받고 스몰랩에 입사
해외박람회 돌며 기술력 입증
“건강한 직원이 건강한 회사로”

[금강일보 김현호 기자] 후한시대 촉나라 황제를 지낸 유비의 시작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도원결의를 통해 관우와 장비란 용장을 얻고 조자룡이란 맹장을 거뒀음에도 제대로 된 책략가가 없어 거처 없는 객(客) 생활을 20년 넘게 면치 못 했다. 그러나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이란 당대 최고의 브레인을 달고 비상했다. 이처럼 2인자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한 국가를 이끌어 가는 것은 물론 하나의 기업을 경영할 때도 보그 역량은 성패를 좌우한다.

김성남(54) ㈜스몰랩 전무이사는 이정규 대표이사의 제갈량이다.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 끝에 모신 것처럼 김 전무 역시 세 번의 입사제의를 받은 끝에 스몰랩에 합류했고 결국 스몰랩을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한 축이 됐다. 인물의 중요성, 그리고 나아가 직원들의 중요성을 아는 김 전무를 영입한 스몰랩은 이 자체로도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졌다.

 

김성남 ㈜스몰랩 전무이사

#. 고등학교 동문과의 인연

김 전무와 이 대표의 인연은 고등학교에서 시작했다. 대전고를 1년 차이로 졸업한 이들은 대전고 재학 당시는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1000명에 달하는 남학생들이 죄다 빡빡머리를 하고 있었으니 누가누군지 알았을까. 안타깝게도 이들의 인연은 대전고에서 시작됐지만 이뤄지진 않았다.

1985년 대전고를 졸업한 김 전무는 충남대 화학과에 입학했고 이 대표와의 인연의 끈으로 묶였다. 이 대표는 고등학교 동문인 김 전무와 금방 친해졌고 그렇게 충남대 화학과 안에서 대전고 모임이 만들어졌다. 모임의 이름은 ‘6인방’. 남고와 공대로 이어지는 상남자들의 단순한 작명이었다. 이 중에서도 유독 김 전무는 한 학년 선배인 이 대표를 무척이나 따랐고 이 대표 역시 김 전무를 무척이나 아꼈단다.

6인방은 수업이 끝나면 항상 주머니 탈탈 털어 막걸리를 자주 마셨고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6인방은 하나둘 살길을 찾아 사회로 진출했고 6인방의 막냇동생이자 귀염둥이인 김 전무는 애경산업에 입사하며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끈은 충남대를 넘어 사회생활에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대전고-충남대 화학과란 교집합을 가진 이들은 비슷한 고민을 술자리에서 자주 나눴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 등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가지는데 6인방에서 이 대표 역시 이 같은 문제를 비롯한 복합적인 이유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학원을 차렸다.

“6인방 모두 사회로 진출하고 나서도 자주 모임을 가졌죠. 모두 회사생활을 하면서 적응하느라 힘들어 했고 결국 이 대표는 학원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3년 정도 학원을 계속 운영했는데 별로 행복해하지 않았어요, 다시 회사생활로의 회귀를 노렸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회사원이 아닌 CEO로서 말이죠.”
 

김성남 ㈜스몰랩 전무이사

#. 스몰랩의 탄생과 이 대표의 삼고초려

이 대표는 3년 동안의 학원경영을 마치고 충남대 화학과에서 갈고 닦았던 연구개발(R&D)을 자산으로 2008년 화장품을 만드는 스몰랩을 세웠다. 이 대표가 스몰랩을 창립했을 당시 김 전무 역시 투자금을 받고 공장을 운영하는 나름의 경영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속사정’을 알았기에 그에게 적지 않은 응원을 보냈단다. 하지만 경영의 길은 얼마나 험하던가.

특히 R&D를 사랑하고 학원을 차릴 정도로 서생에 가까웠던 이 대표에겐 가시밭길이었다. CEO의 입장으로 큰 사안을 결정할 때 그의 직원들은 “대표님이 연구실 생활만 하셔서 잘 모르시는데…” 같은 말을 자주 했다고. 이 때문에 스몰랩은 CEO와 직원 간 소통이 잘 안 됐고 성장이 매우 느렸다. 이 대표는 이런 고민을 누구에게 상담하지 못 했고 소싯적부터 함께한 6인방에게만 털어놨다. 같은 경영인 입장이었던 김 전무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시간이 흘러도 스몰랩은 여전히 흔하디흔한 기업 중 하나에 불과했고 2014년 이 대표는 결국 김 전무에게 영입의사를 밝혔다.

“친형 같은 선배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동생으로서 당연히 가슴이 아팠죠. 이 대표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저도 나름의 사업을 하고 있던 상태여서 어떻게 도와드릴 방법이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거절 의사를 밝히긴 했으나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하지만 이 대표는 김 전무 영입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20대 청춘시절부터 함께 지내 신뢰할 수 있었고 특히나 이 대표를 몹시 따르던 김 전무를 반드시 영입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단다. 그렇게 2년이 흐른 2016년 투자자와의 갈등이 폭발한 김 전무는 사업을 접었다. 김 전무의 소식을 들은 이 대표는 다시 한 번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김 전무의 건강이 발목을 잡았다. 경영 당시 워낙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나빠져서다. 두 번째 제의 역시 김 전무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 정도면 포기할법한데 이 대표는 이듬해 또 한 번 김 전무를 불렀다. 역시 영입 제의였다. 건강을 크게 회복한 김 전무는 이 대표의 삼고초려에 감격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서생인줄 알았던 이 대표의 숨겨진 CEO 기질이 여기서 나타난 걸 수도 있다.

“이 대표가 세 번째 제의를 했을 땐 승낙했습니다. 건강도 좋아졌고 항상 마음 한편에 선배에 대한 걱정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평소 선배가 갖고 있던 고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힘이 돼 드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김성남 ㈜스몰랩 전무이사

#. 스몰랩의 비상

2017년 9월 스몰랩에 입사한 김 전무는 가장 먼저 인력 충원에 나섰다. 그가 입사한 당시 스몰랩의 인력은 기업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꽤 공을 들여 인력을 하나 둘 충원했고 곧바로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김 전무가 입사하기 전에도 스몰랩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긴 했으나 결실은 없었다.

김 전무는 곧바로 해외에서 열리는 박람회엔 모두 참가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연히 리스크는 있었다. 해외 박람회에 참가하긴 위해선 팀 단위로 움직여야 했고 교통비와 체류비 등을 고려하면 1000만 단위의 돈이 깨졌다. 그렇다고 곧바로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김 전무는 해외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스몰랩에게 해외시장의 문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해외박람회를 1년 동안 계속 참가하자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바이어가 그러더라고요. ‘1년간 해외박람회에 참가하는 걸 모두 지켜봤다’고. 스몰랩이 꾸준히 해외박람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가졌는지 보고 있었단 뜻이죠. 이 대표의 R&D 실력도 제가 뻔히 아는 만큼 하나가 터지면 연이어 터지겠단 자신감도 있었죠.”

그렇게 스몰랩은 해외시장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해외 매출 역시 크게 뛰었다. 화장품 시장에서 스몰랩은 업계 1위를 추월하진 못하더라도 견고한 2위란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김 전무가 입사하고 1년 만에 나타난 성과다. 화려한 조명은 그의 몫일 것 같지만 그는 모든 게 자신을 믿어준 이 대표와 믿고 따라준 직원들 덕분이라고 했다. 특히 직원들이 건강한 마음가짐을 가진 만큼 예전 소통의 문제도 금방 해소됐다고.

“하루 중 가장 많이 머무르는 곳이 회사죠. 가고 싶은 회사를 만들어야 조직에 생기가 돌 것이라 생각했어요. 처음 제가 입사할 때 그래서 마음이 건강한 직원 위주로 뽑았습니다. 건강한 조직문화가 이렇게 좋은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직원들 보세요. 항상 웃고 있지 않습니까?”

스몰랩은 올해 목표를 매출 60억 원 달성으로 잡았다. 코로나19란 악재가 있지만 이 대표와 김 전무가 만든 건강한 스몰랩에게 넘을 수 있는 허들처럼 보인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사진=함형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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