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아크로폴리스
아크로폴리스 입구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제각각 아크로폴리스(Acropolis)와 아고라(Agora)를 갖고 있었다. 아크로폴리스는 도시의 약간 높은 언덕에 세웠는데, 아크로란 그리스어로 ‘높다’이고, 폴리스는 ‘도시국가’이니 결국 ‘언덕 위에 있는 도시국가’라는 의미이다. 사실 그리스에서 폴리스가 얼마나 존재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먼 훗날 이오니아족인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에 380개의 폴리스가 참여하고, 도리아족인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Peloponnesian League)의 200여 개의 폴리스만 500개 이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발칸반도에 있던 도시국가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아크로폴리스가 신들의 공간이라면, 아고라는 시민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인간들의 공간이었다.

광장의 개들
블레의 문

발칸반도에서 동쪽 에게해 쪽으로 뻗은 아티카(Attica) 반도에서 해발 약 150m의 나지막한 언덕에 건설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BC 2000년부터 아테네인들의 제사 장소였다. 약 9000평가량 되는 이곳은 BC 13세기경까지 그리스 신화의 펠롭스(Pelops), 에렉테우스(Erechtheus),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Aegeus)와 그의 아들 테세우스(Theseus) 등이 살던 왕궁터였는데, 호메로스에 의하면 펠롭스는 탄탈로스와 어머니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던 피사의 왕이었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라는 지명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에렉테우스는 아테나 여신에 의해서 양육된 아테네의 전쟁영웅이었다.

아테네 시내 어디서건 보이는 아크로폴리스는 동서남북 네 방향이 모두 깎아지른듯한 절벽인데, 서쪽이 유일한 통로이다. 이것은 당시 도시국가들이 적의 공격과 침략을 막기 위해 만든 산성(山城)임을 알 수 있는데, 그리스인들은 우리의 삼국시대의 산성과 달리 달리 성벽을 쌓기보다는 험준한 자연 지형을 이용한 것 같다.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길은 올리브나무가 무성한 비탈길이다. 지중해 연안에는 올리브나무가 풍성하게 자생하고, 올리브 열매는 식용과 등유 등 쓰임새가 아주 많다.

아그리파 기념상 대좌
아그리파 기념상 안내판

아크로폴리스의 입장료는 20유로이다. 그러나 아테네에서 디오니소스 극장, 아고라, 하드리아누스 신전, 제우스 신전 등 7개 유적지를 모두 입장할 수 있는 통합입장권은 30유로이다. 패키지 여행객이라면 불필요한 일이지만, 통합권은 5일 동안 사용할 수 있어서 비용 절약은 물론 여행객이 매표창구에서 줄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매달 첫째 일요일에는 아테네의 모든 고적의 입장료가 무료이다.

아크로폴리스 입구에서는 매일 아침 병사들이 트럼펫을 부는 의전행사를 벌이는데, 10여 명의 병사가 벌이는 행사는 맹숭맹숭해서 아무런 공감도 없다. 게다가 항상 관람객들로 붐비는 광장에 큼지막한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아무 곳에나 벌렁 드러누워 있는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탈리아도 로마나 폼페이 등 고대 유적지마다 건국의 시조 로물루스를 젖을 먹여 키웠다는 전설로 늑대의 아류인 개들이 많이 어슬렁거리고 있긴 하다.

아크로폴리스의 가파른 경사면에 니케(Nike) 신전이 있고, 니케 신전을 지나 정상으로 올라가면 파르테논(Parthenon) 신전, 파르테논 신전 앞 비탈에 에렉테이온(Erechtheion) 신전이 있다. 세 개의 신전은 아테네가 BC 490~BC 472년 3차에 걸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 후 펠리클레스가 지중해를 지배하였음을 과시하는 전승기념물이다.

프로필라이아 문
프로필라이아 안내도

도시국가 아테네는 피레우스 항을 출구로 지중해 무역에 참여하면서 수호신 아테나 여신과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제우스 신 못지않게 숭배했다, 그것은 아테네가 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지중해를 제패하고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데는 지혜와 용기를 갖춘 ‘전쟁의 여신’ 아테네의 힘이 필요했고, 또 바다를 안전하게 누비기 위해서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보호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테네는 도시의 여러 곳에 아테나 신전과 포세이돈 신전을 많이 건립했으며, 에렉테이온 신전에도 아테나와 포세이돈 성소를 함께 조성했는데, 그중 파르테논 신전은 UNESCO 세계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다. (자세히는 2020. 7. 8. 그리스 개요 참조)

대리석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뷜레의 문(Boule’s Gate)은 267년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후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만든 문이다. 이것은 1857년 프랑스 고고학자 블레(Ernest Boule)가 성문터를 발굴한 뒤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인데, 이곳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는 왼쪽에는 8m 높이의 사각형 아그리파(Agrippa: BC 63~BC 12) 기념상 대좌(臺座)가 있다. 아그리파 기념상은 BC 31년 로마가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무찌르고, 아우구스투스의 재위 중에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으며, 식민지 건설을 담당했던 로마의 장군 아그리파가 전차를 탄 모습으로 조각된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각상은 사라지고 대좌만 남아있다. 뷜레의 문이나 아그리파 기념상 모두 로마제국의 산물이니, 그리스로서는 식민통치의 유산인 셈이다.

복원 중인 니케신전(이오니아식)
승리의여신_니케(에페소)

아그리파 기념상을 지나면 도시국가 아테네가 세웠던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인 프로필라이아(Propylaia)이다. 프로필라이아는 그리스어로 ‘신전의 입구 혹은 현관’인데, BC 437년에 착공했다가 스파르타와 주도권 다툼을 벌였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므네시클레스가 완성했다. 가파른 비탈임에도 중앙홀 양쪽에 날개 같은 아름다운 프로필라이아 건물 양식은 이후 그리스와 로마 신전의 모범이 되었다.

프로필라이아 문을 지나면 니케 신전이다. 니케 신전은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전쟁을 하면서 승리를 빌었던 승리의 여신 니케를 모신 신전으로 폭 30m, 길이 69m의 건물을 높이 10m의 기둥 58개로 지었다. 아크로폴리스에 최초로 세운 이오니아식 신전인 니케 신전 앞에는 페이디아스가 황금과 상아로 제작한 거대한 아테나 여신의 동상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니케 여신은 두 개의 날개가 있고, 왼손에는 승리의 상징 월계수 잎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로마신화에서는 빅토리아(Victoria) 여신으로 바뀌었다.

파르테논신전에서 본 니케신전
에페소의 트라이아누스황제(코린트 양식)
아크로폴리스로 올라오면서 바라본 니케신전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이후 이곳은 로마교회로 사용되었다가 오스만제국 시대에는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되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현재 몇 년째 복원공사 중인 신전의 기둥 중 군데군데 하얀색 부분이 복원된 부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니케 여신은 세계적인 신발 메이커 나이키(NIKE)의 상징이 되었다. 그것은 1971년 당시 미 오리건주 포틀랜드 주립대학원생이던 캐롤린 데이비슨(Carolin Davidson)이 터키의 에페소 유적지를 여행하다가 돌판에 새겨진 니케 여신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린 로고는 35달러에 팔렸는데, 지금은 가치가 70만 달러가 넘는다고 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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