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 복원도
파르테논 신전 앞의 조각들

앞서 그리스여행에서 관심은 그리스 신화와 고대 건축 양식임을 밝혔는데, 그리스건축은 우리의 고대 건축이 대부분 사찰 건물이듯이 신전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리스의 신전은 BC 16세기경 그리스 중부 테베에서 발달한 미케네 문명(Michaene)의 메가론 신전이 그 시초라고 하는데, 초기에는 신전도 일반 주택처럼 목재나 점토·벽돌 등으로 짓다가 대리석 건물로 변했다. 대리석 기둥은 몸·기둥 받침·기둥머리 세 부분으로 구분하는데, 그 모양과 장식의 유행에 따라서 도리아식(Doria)→ 이오니아식(Ionia)→ 코린트식(Corinth)으로 나눈다.

먼저, BC 5세기에 널리 유행했던 도리아식은 홈을 판 기둥을 주춧돌 없이 맨땅 위에 세우고, 기둥 윗부분인 기둥머리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이 대체로 묵직한 모습이다. BC 5세기 전반 에기나의 아파이아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페스툼의 포세이돈 신전, 또 BC 5세기 중엽의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의 헤파이스토스 신전 등이 있다.

아테나 여신(아테네 대학)

또, BC 5세기 말 이오니아 지방에서 유행한 이오니아식은 도리아식과 달리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높고 가늘며 홈을 깊이 새겼다. 특히 기둥머리의 양 끝에 소용돌이 모양을 만들어서 측면에서 보면 마치 장구 혹은 베개와 같은 형태여서 전체적으로 우아한 느낌을 주는데, 대표적인 것은 에페소의 아르테미스 신전(Artemis), 아테네의 니케 신전, 아크로폴리스의 프로필라이아 등이 있다.

또, BC 4세기 중엽부터 유행한 코린트식은 이오니아식과 큰 차이가 없으나, 기둥머리에 나뭇잎을 2단으로 겹쳐 새겨서 이오니아식보다 훨씬 화려해 보인다. 코린트식은 이오니아 양식의 변형이라고도 하는데, 건물의 외부 기둥보다는 주로 실내 기둥으로 사용되었다. 더욱이 그리스가 로마제국에 정복된 후 코린트 양식은 로마인들의 취미에 따라 화려하고 매우 정교한 양식이 되어 로마를 거쳐 유럽에 널리 유행했고, 미국 백악관 건물과 UNESCO 로고 등으로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동쪽에서 본 파르테논
서쪽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
에렉티온 신전 전경
에렉테이온 신전

니케 신전을 지나 산 위로 올라가면 파르테논 신전(Parthenon)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전쟁의 신이자 지혜의 신,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 파르테노스(Athena Parthenos)를 위하여 신전으로서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 후 페리클레스 시대에 건축됐다. BC 447년에 착공하여 16년 동안 건축된 파르테논의 아테네 여신은 모든 신의 우두머리 제우스가 숨겨진 연인 메티스와 사이에서 낳은 딸로서 파르테논이란 곧 ‘처녀의 집’이라는 의미이다.

그리스에서 니케 여신은 ‘승리의 여신’이고, 아테네 여신은 전쟁의 여신인데, 두 여신은 대개 함께하고 있다. 3단의 기단 위에 가로 31m, 세로 70m의 넓이에 10m 높이의 대리석 기둥을 전·후면에 각 8개, 양쪽 측면에 각각 17개로서 모두 46개를 세운 거대한 도리아식 건물인 파르테논 신전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기둥이 특징인데,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가늘어 보이는 경사선에 볼륨을 주는 엔타시스(Entasis) 기법을 사용했다. 페이디아스가 총감독을 맡고, 당시 최고의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가 건축을, 페이디아스의 제자들이 장식 조각을 맡았던 신전에는 페이디아스가 황금과 상아로 조각한 12m의 '아테나 파르테노스' 신상을 세웠다. 또, 신전의 벽면에는 신과 인간이 벌인 전쟁, 전설의 여전사 아마조네스와 아테네인들이 벌인 아마조네스 전쟁, 트로이 전쟁 등을 새겼다.

동쪽에서 본 에렉테이온 신전
파르테논 신전에서 본 에렉테이온 신전

아테네가 폴리스 동맹의 중심이었을 때 파르테논 신전은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의 금고로 이용되었으나, 2세기경 로마제국이 그리스를 점령한 이후에는 기독교 사원으로 사용되었고, 1458년 오스만튀르크가 정복한 이후에는 200여 년간 이슬람사원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1687년 베네치아가 오스만튀르크와 전쟁을 벌일 때 아크로폴리스를 포격하면서 파르테논 신전 안에 보관했던 화약고의 폭발로 신전이 크게 파괴되었다. 먼 훗날인 1801년 영국 귀족 토머스 엘진이 남아있던 조각품들을 오스만튀르크의 허가를 받고 실어 냈다가 1816년 런던 대영박물관에 팔았다. 이 유물들은 오늘날 엘진 마블(Elgin's Marble)이라고 한다.

현재 파르테논 신전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나 앙코르톰의 바푸온 사원보다 더 황량하게 대리석 기둥과 깨어진 말 조각상 등만 남아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UNESCO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복원공사 중인데, 대리석 기둥의 군데군데 하얀색으로 된 부분이 보수한 흔적들이다. 하지만, 과연 언제쯤 웅장했던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파르테논 신전의 간결한 기둥머리 양식과 기둥의 가로세로 비율이 1 : 1.682로서 인간이 가장 편안하고 아름답게 느끼는 비율이라 하여 황금비율(golden ratio)이라고도 한다. 황금비율은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2~ BC 497)가 자연의 질서에서 발견한 수학적 원리를 신전에 적용한 것인데, 오늘날 TV 화면, 영화관 스크린은 물론 각종 그림 등의 표준이 되고 있다. 이처럼 그리스인들은 이때 이미 자연과 일체가 될 때, 인간이 가장 평온해질 수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에렉티온 여사제들

파르테논 신전 북쪽에는 파르테논 신전과 동시에 지은 에렉테이온(Erechtheum)이 있다. 에렉테이온 신전은 아테네의 영웅 에렉테우스를 기린 신전인데, 비탈진 곳에 지은 것은 페르시아 전쟁 때 파괴되었던 아테나 신전을 아크로폴리스에 다시 짓는 동안 임시로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신전은 서쪽으로 넓혀서 남쪽과 북쪽의 현관이 건물의 중앙에 위치하도록 설계되었을 것 같지만, 서쪽 끝부분을 벽으로 막아버려서 짓다 만 모습이다.

그런데,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높이 2m가 넘는 6명의 아름다운 여신의 조각상은 제우스가 여사제들에게 내린 벌이라고 한다. 즉, 페르시아와 전쟁을 앞두고 누가 이길 것인가를 묻자, 여사제들은 페르시아의 승리를 예언했으나 아테네가 승리하자, 제우스가 여사제들에게 물 항아리를 머리에 얹고 벌 받는 모습으로 조각하여 기둥으로 삼았다고 한다. 6명의 아름다운 여신들의 독특한 모습의 조각상은 사실 모두 모조품이다. 진품 중 5개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고, 1개는 대영박물관에 있다. 맨 왼쪽의 여신이 아프로디테라고 한다.

전망대
전망대에서 본 파르테논, 엘렉티온신전
전망대에서 본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니케 신전, 파르테논 신전, 에렉테이온 신전을 돌아보면서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무거운 건축자재를 운반하여 신전을 짓는 공사는 현대 과학기술과 장비로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옛날 동원되었을 수많은 노예의 고통이 눈에 선하다. 아크로폴리스의 동쪽 끝에는 아크로폴리스와 아테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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