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하(시인·한남대 교수)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열 권의 책을 빌려 겨우 한 권을 읽고 잠드네.

한 권 속에는 강가에 내려가는 길이 있을 뿐, 강물이 햇살을 어떻게 녹이는지 고기들이 소용돌이를 왜 만드는지 알지 못하네.

잠 속에서 어제의 해가 죽어야 다른 해가 태어나는 것이라 누군가 흐르는 강물소리로 말하네.

배 한 척을 빌려 강을 건너나 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네.

새벽에 한 권을 더 읽으려 페이지를 넘겼으나 물빛 행간을 건너 뛸 수 없네.
행과 행 사이에 검은 획들이 떠 있네.
강보다 낮게 흐르는 신발은 없고 맨발이 걸어가고 있네.

열 권의 책을 다 읽고 강물소리 듣는 눈동자는 없네.
겨우 읽은 한두 권의 책에서 물소리 들었다 하네.

천천히 흐르는 강물은 흘러가는 방향을 알리지 않네.

 

김완하(시인·한남대 교수)

자연은 인류의 위대한 교실이요, 최고로 빛나는 교과서다. 그 무엇보다 고전 중의 고전이다. 하여 강을 읽는 시인이 여기 있다. 그는 책에서 강물소리를 듣는다. 그는 겨우 한 권을 읽고 강가에 내려가는 길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강물을 녹이는 햇살과 소용돌이 만드는 고기에 대해는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금강은 깊고도 넓은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좋은 것은 욕심에 지나침이 없는 법. 책에 대한 욕심은 지나칠수록 좋은 것이다.

열 권의 책을 빌려 겨우 한 권의 책을 읽고 잠이 든다고 고백하는 시인. 그러나 그는 위대한 교과서에 접했기에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 그리고 한권의 책을 읽어 강으로 가는 길 발견했으니 또 절반은 성공. 그러니 두 개의 절반 더하면 하나의 온전한 성공. 그렇다. 그는 이미 생의 모든 것을 완성한 셈. 그리고 나머지 책을 읽는 것은 덤인 셈이니. 생을 너무 과욕으로 몰고 가지 말아야겠다. 그것보다 참다운 하나의 위대함. 금강은 그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김완하 시인·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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