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민 한밭대 인문교양학부 조교수
(英)옥스퍼드대 OIPA 겸임연구원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빼놓지 않는 것이 바로 마이클 만 감독의 ‘인사이더(The Insider)’이다. 이 영화는 미국 3대 담배회사로 꼽혔던 ‘Brown & Williamson’의 연구개발부 부사장이었던 제프리 위갠드(Jeffrey Wigand)의 담배 유해성에 대한 내부 고발을 둘러싼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사이더 이후 담배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람들의 합리적 의심은 더욱 커졌지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1920년대 독일에서 흡연과 폐암 간 인과성을 추정한 연구는 있었지만 그것을 처음 과학적으로 증명한 학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리차드 돌(Richard Doll) 교수였다. 그는 지난 2004년 영국의학회지(BMJ)에 발표한 논문에서 영국 남성 의사 3만 4439명을 1951년부터 2001년까지 추적 분석한 결과, 젊은 시절 흡연을 시작하여 꾸준히 금연하지 않은 의사는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10년 더 일찍 사망하였고, 30세, 40세, 50세, 60세에 금연한 경우 각각 10년, 9년, 6년, 3년 더 살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 이후 담배가 직·간접 흡연자 모두를 각종 발암 물질과 호흡기 질환에 노출시킨다는 것이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지만, 담배의 중독성과 같은 보건의료적 요소뿐만 아니라, 담배 판매를 통한 정부 세수 증대와 같은 정치경제적 역학관계 등 금연을 가로막았던 기존 구조가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변화의 조짐이 관찰되고 있다. 흡연과 코로나19 감염 사이 일반 관계에 관한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주장은 흡연이 호흡기 점막 세포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인체 침투를 쉽게 하는 수용체를 급증시켜 흡연자를 코로나19 감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킨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흡연자가 비흡연자에 비해 코로나19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예를 들면,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6월 30일 보도 자료를 통해 올 5월에 Medline, Embase, Cochran, WHO 자료를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흡연과 코로나19 증상의 심각성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이 증명되었다고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흡연유발질병학술지(TID)에 발표된 2020년 3월 PubMed와 Science Direct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중국 대상 연구논문에 따르면, 흡연자가 비흡연자 보다 코로나19에 걸릴 가능성이 1.4배 더 크고, 중환자실(ICU)에 입원할 가능성은 2.4배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경고가 실제 금연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로 영국을 들 수 있다. 올 7월 15일 BBC 보도에 따르면, 흡연과 건강 행동(ASH) 및 유니버시티컬리지런던(UCL) 공동 연구결과, 영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영국 전체 흡연자 중 약 100만 명이 금연하고, 약 44만 명이 금연에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기준 영국 보건부 통계에서 당 해 영국 내 흡연자가 모두 약 70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19 이후 금연한 비율이 대략 14.3%로 코로나19 이전 평시와 비교하면 괄목한 만한 금연율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간략히 밝힌 코로나19 관련 금연 필요성은 주로 흡연자의 건강 측면에서 살펴본 것이다. 흡연자 건강과 비례적으로, 나는 흡연자들이 인간으로서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있는지 자신에게 먼저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민 과정에서 존 스튜어트 밀(J.S. Mill)이 자유론(On Liberty)에서 밝힌 해악 원칙(harm principle)을 꼭 생각해 보기 바란다. 해악 원칙을 쉬운 말로 풀어보면, 나의 언행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결코 자유의 범위에 포함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접흡연이 얼마나 해로운지 특히, 코로나19 시대 그 심각성이 더 커진 이유를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흡연자들이여, 해악 원칙이 인간의 기본 도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건강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피해를 주는 방종도 끊을 수 있게 해주는 금연을 지금 바로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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