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일 정치부

[금강일보 최일 기자] 2000년대 초반 한 은행 노조가 총파업을 벌였다. 당시 경제부 기자였던 필자는 상황 파악을 위해 해당 은행의 대전지역본부로 거의 매일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그러자 한 노조 간부가 “왜 자꾸 찾아오느냐”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파업의 배경을 떠나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초래한 데 대해 일말의 책임감이 있다면 과연 저런 태도를 보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내부 문제에 대해 왜 관심을 갖는냐”라는 자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사기업이라도 시중은행은 공공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영업점의 문을 닫는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는데, 정상화가 언제 이뤄질지 모를 시점에 이를 취재하는 기자를 귀찮다는 식으로 몰아내려는 행태가 용납되지 않았다.

최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광역단체장의 빈소 앞에서 그의 소속 정당 대표가 해당 단체장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당 차원에서 어떤 대응을 할 것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국민의 알권리 차원이란 거창한 토를 달지 않더라도 너무나 기본적이고 당연히 던질 법한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 욕설을 하며 모욕을 주는 당 대표의 발언에 아연실색했다.

대도시의 수장이 자신을 상대로 한 직원의 고소 직후 저 세상으로 떠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같은 사태에 도의적 책임이 있는 공당의 대표가 ‘묻지마 추모’로 일관하면서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기자를 ‘막돼먹은 놈’으로 깔아뭉갠 것은 매우 적절치 않은 행동이다.

지난달 30일 대전에 쏟아진 기습 폭우로 안타깝게도 사망자가 발생했고, 여기저기서 침수 피해를 입으며 단시간에 망연자실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같은 시간 동료 의원들과 국회에 모여 파안대소를 하는 대전의 한 국회의원의 사진이 SNS에 공개돼 비판여론이 빗발쳤다.

그러자 해당 의원은 “악마의 편집”, “악의적 보도”, “명예훼손”이라고 발끈하고 나서 더 큰 비난을 자초했다. 전후 사정이 어찌 됐든 오해를 불러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사려 깊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를 보도한 기자들에 대한 앙금을 드러냈다. 더구나 해당 사진은 그와 함께 모임을 가진 의원이 직접 SNS에 올린 것인데, ‘왜 보도를 했나’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건 공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공인이란 신분에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다. SNS에 올린 글 한 줄, 사진 한 장으로도 구설에 오르는 게 공인이고, 따가운 질타의 목소리도 감당을 해야 하는 게 공인이다. 물론 일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언론 보도도 문제이고, 공인이니 무조건 욕을 먹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이번 일이 공인으로서, 국민의 대표로서,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으로서 보다 진중해지고, 겸손해지고,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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