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작가회의 회장

[금강일보]

마을 

옹기종기 
노랗게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기웃거리지 마라
곧게 자라라

가볍게 
더 가벼워져라

서로가 다독거리며 사는 
민들레라는 따스한 마을이 있다 
                  -‘마을’ 전문 - 

보문산 사정공원에서 임강빈 시인의 시비(詩碑)를 만났다. 돌 위에 새겨진 시는 하나의 문화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의외로 우리 주변 가까이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지난 7월 16일, 임강빈 시인의 시비 제막식이 있었다. 선비 시인이라 일컬어지던 시인의 성품처럼 맑은 날씨에 그늘을 만드는 푸르른 나뭇잎들과 파란 하늘, 그리고 지나던 구름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축하를 해주는 듯했다.

시와 조각품이 한 몸이 된 시비는 짙푸른 녹음 속에서 자연과 잘 어울렸다. 시비의 바신은 포천에서 생산된 화강석으로 했고, 임강빈의 시 ‘마을’ 새김은 오석에 음각해 상감했으며, 조각상 ‘기도하는 사람’의 바신은 경주에서 생산된 화강석에 돋을새김으로 상감했다. 시 ‘마을’의 서정성과 조각 ‘기도하는 사람’이 주는 단순성이 조화를 이룬 청순한 시비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시와 조각품이 만나 재탄생된 시비는 인간들이 끝없이 갈망하는 상생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우뚝 서 있었다. 이러한 시비는 자연의 품안에서 우리 후손들과 오래도록 생생할 것이다.

임강빈 시인의 시비 뒤로는 박용래 시인의 시비가 이웃하고 있다. 박용래 시비는 올려다보아야만 하는 큰 높이의 오석으로 서 있다. 시비는 상반신의 ‘소녀상’이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고, 그 아래에 시 ‘저녁 눈’을 새겨 넣은 조각품이다. 그 시비 역시 ‘소녀상’으로 최종태 작가의 작품성이 그대로 잘 나타나 있었다. 두 분 시인은 살아 계실 때에도 같이 하셨던 것처럼 시비까지 옆에 있다. 주변을 돌아보니 박용래 시비 외에도 한용운 시비, 김관식 시비, 최원규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임강빈 시인의 시비는 이곳에 다섯 번째로 세워지는 시비였다. 이렇듯 이곳은 오래도록 아름다운 세계를 펼치는 ‘시비 마을’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 

아쉬운 점은 보문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예술작품이 공원 곳곳에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도심과 바로 산책로로 이어져 접근성이 좋고 둔덕을 오르듯이 편하게 갈 수 있는 보문산, 길 따라 작은 안내 표지라도 마련해서 마실 가듯 산책 가듯 그 산을 오르내리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기꺼이 이곳을 향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면 보문산 공원 안에 조성된 시비 마을은 사시사철 찾아오는 이들과 함께 그 가치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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