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박사급 연구자가 배출되기까지 대체로 10여 년의 시간이 요구된다. 전공과 관련된 지식을 접하는 학부과정을 시작으로, 연구에 처음 참여하게 되는 대학원 과정과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경험을 쌓게 되는 박사후 연수과정이 포함된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치게 되면 연구설계로부터 결과물 출간까지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다수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이 시기 신진 연구원들이 갖는 연구에 대한 자세나 연구 분야에 대한 전망은 대부분 대학원 혹은 박사후 연수 시기 지도교수가 바라보는 관점의 투영이다.

정부출연연구소 혹은 대학이라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신진 연구자는 이미 수행해 왔던 연구를 이어가고자 한다. 수년간 쌓아온 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하루아침에 버리기 힘들다. 그러나 이미 포화된 연구 분야의 익숙한 연구주제에서 실적을 낸다 한들 젊은 연구자는 지도교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준비한 연극무대에 선 배우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출발선에 선 젊은 연구자가 어떻게 자신만의 연구영역을 구축하고 제대로 된 연구자로 성숙할 수 있을까? 필자는 적어도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속담이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해낼 능력 없이, 그렇다고 배우겠다는 의지도 없이 새로운 자리를 점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은 본인에게 고역일 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료들에게도 부담이다.

신진 연구자는 물론, 연구주제를 바꾸고자 하는 중견 연구자가 새로이 접하는 연구 분야에서의 성장을 꾀하고자 하면 재교육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새로운 연구주제로의 진입이나 대학원 과정에서 충분히 겪지 못한 연구수행과 실적출간 과정에 대한 재교육의 요체는 멘토링(mentoring)이다. 영국의 정치가인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했던 명언에서 멘토링의 목적과 출발점을 살펴볼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최상의 선행은 당신의 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본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즉, 멘토링의 주목적 중 하나는 멘티로 하여금 자신의 현재를 자각하게 하는 것이며, 멘티는 본인의 무지나 부족에 대한 지각과 선언적인 행위를 통해 변화의 시작점에 서게 된다. 멘토링에 관한 많은 글에서 좋은 멘토(mentor)의 요건을 짚어주었지만 ‘좋은 멘티’가 되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좋은 멘티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자각하고,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만들어진 무대에 서는 배우가 아니라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고 스스로 공연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가 될 수 있다. 변화와 성장에 대한 마음가짐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새로운 길의 길라잡이가 되는 멘토를 구하는 일이다. 멘토는 그 분야를 먼저 섭렵한 사람이면 가장 좋다.

해당 연구 분야에 대한 현황을 분석해 주고, 앞으로 확장될 분야를 함께 바라봐 주는 것은 수백 편의 논문을 능가하는 가치를 갖는다. 설사 다른 연구 분야라 하더라도 진지한 태도로 연구에 매진하는 동료 연구자도 좋은 멘토일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연구에 접근하는 방법론은 분야에 상관없이 배워서 새로운 분야에 접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멘토를 구하게 되면 멘티는 자신이 배우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뚜렷이 하고, 멘토에 대해서 수용성을 가져야만 한다. 멘토링 중에 토론이나 비판은 있을 수 있으나 감정적인 대결이나 소모적인 비난은 피해야만 한다.

연구 부문이든 연구 외적인 부문이든 모든 이가 평생 수차례 갈래 길 앞에 서게 된다. 준비 없이 걷게 된 새로운 길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올바른 멘티의 마음가짐으로 훌륭한 멘토를 찾고 능동적으로 변화함으로써 그 길을 성공적으로 걷는 것은 어떨까? 끊임없이 진행될 멘토링에 있어서 어떤 경우 누군가의 멘토가 되고, 또 다른 경우에는 누군가의 멘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부단한 과정에서 우리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가르침에 있어서 독(毒)과 ‘나도 좀 안다’라는 배움에 있어서 해(害)가 되는 요소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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