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소비자신용법 발의 추진
“은행은 자원봉사단체 아냐”

[금강일보 박정환 기자] 코로나19 금융 지원과 저금리로 인해 은행들의 여신 건전성 문제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채권추심회사의 빚독촉 가능 횟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내용을 담은 소비자신용법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해당 법안이 추진될 경우 은행들의 고충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소비자신용법안은 현행 대부업법과 신용정보업법을 통합한 것으로 개인대출과 관련한 금융 채무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게 골자다. 현재 채권추심사는 하루에 두 번만 빚독촉을 할 수 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사람이 응답하지 않으면 추심 횟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만약 소비자신용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빚독촉 연락은 1주일에 일곱 번만 가능하고 채무자의 무응답도 추심 행위로 인정될 예정이다. 불법 추심이 우려되는 채권추심회사에는 개인 연체채권을 팔 수 없도록 조치한다. 채권을 사들인 추심업체가 법을 위반해 빚을 받아냈다면 금융회사는 추심업체와 함께 최대 300만 원이 추징된다. 이와 함께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소멸 시효의 이른바 ‘묻지마 연장’을 방지하겠다는 방침이 담겨있다.

문제는 정부가 지속적인 금융 정책을 쏟아내면서 은행 건전성 문제가 대두되는 요즘 은행들로서는 채무자의 연체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올 상반기 대손충당금을 포함한 신용손실충당금 적립액은 총 1조 2012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3426억 원)에 비하면 3.5배 늘었다. 은행별로는 적게는 1.6배에서 많게는 33배까지 급증했다. 충당금은 대출을 회수하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금융사가 미리 쌓아놓는 비용으로 충당금이 늘면 그만큼 대출부실 위험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대전 서구 한 시중은행 지역본부장은 “코로나 긴급 대출과 같은 금융 지원 정책으로 인해 대출 수요가 폭증한 상황에서 부실 대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출 이자 등의 회수가 더뎌지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은행들이 기본적인 채무 독촉을 하지 못한다면 먼 미래에는 여신 절차가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경기가 악화된 건 맞기 때문에 적절한 지원책 시행은 당연한 일이라지만 은행은 자원봉사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금융 지원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올 하반기 수익 전망도 어두운 상황에서 훗날 소비자신용법이 시행된다면 대출금 회수율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정환 기자 pjh@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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