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경실련 기획위원장

정부가 최근 일반지주회사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연내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이 출자한 벤처캐피털을 뜻하는 CVC(corporate venture capital)는 대기업이 인수합병 후보군의 확보 방편으로, 벤처캐피털을 통해 신생벤처기업 현황을 점검하다가 사업에 필요한 벤처기업이라고 판단되면 곧바로 인수·합병에 나서는 조직이다. 이를 통해 기술개발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과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고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들이 공정한 경제활동을 하도록 이를 금지하며 금산분리 정책을 지속해서 전개해왔다.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시행함으로써 대기업 자본의 벤처시장 잠식은 물론 재벌의 경영권 승계도 어렵게 했다.

그러나 중소기업과 중소벤처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나서 공정거래법 개정을 제안했고 정부가 이를 기정사실로 하며 각종 논란을 피하고자 지주회사가 100% 지분을 갖는 CVC 자회사 설립,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하는 기업과 계열사에 대한 CVC 투자금지, 외부자금조달 최대 40% 제한, CVC의 출자현황, 투자내역, 내부거래 등 공정위 의무 보고 등을 내세우며 이를 기정사실로 했다.

정부의 이번 정책 결정은 금산분리 원칙을 무너뜨린 것이며 펀드출자란 명목으로 사실상의 순환출자를 허용한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들에 돌아가야 하는 각종의 정책적 혜택을 재벌들이 독식하게 하는 시대착오적 발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벤처 활성화를 이유로 수신행위까지 허용하는 것은 금산분리 정책의 포기이다. 100% 자회사, 외부자금 펀드 조성액 40%를 내세우면서도 금융수신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기존의 금산분리정책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며 이는 이전의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에서 보여주었던 정부의 정책 방향을 다시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금융 계열사의 펀드출자허용은 순환출자 허용이다. 정부는 그동안 재벌의 순환출자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의 전환을 유도했음에도 지주회사 내에서의 순환출자를 통해 손자회사가 자회사인 CVC에 펀드출자가 가능케 함으로써 지주회사 도입의 근본을 부정하고 있다. 이는 재벌의 이익을 위한 이중 안전장치이다. CVC에 대한 대안으로 이미 벤처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돼 있으나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통해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 재벌의 참여와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하려 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CVC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벤처와 대기업의 성장을 이유로 이번 정책을 발표했지만, 재벌은 이미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면서도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벤처투자의 부족 또한 재벌들의 기술탈취 등 불공정에 기인하다 보니 투자대상의 벤처기업도 많지 않다. 그러므로 정부의 CVC 도입 방침은 오직 재벌들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제도인 만큼 다시금 검토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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