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문인협회 수석부회장

 

둔산 선사유적지는 지난 1992년 3월 둔산지구 신시가지 조성 공사 중 발견돼 한국선사문화연구소와 충남대박물관이 그해 5월부터 8월까지 정밀조사를 실시한 결과, 높이 약 50~60m의 야산 동쪽에서 구석기시대(B.C 1만년경)의 유적이, 북쪽 언덕에서 신석기 시대(B.C 3000년경)의 유적이, 산봉우리 부근에서 청동기 시대(B.C 800년경)의 유적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이에 1992년 10월 28일 대전의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됐다. 구석기 시대의 유적에서는 쌍날찍개, 긁개, 격지 등 다수의 유물이 나왔고, 유물의 성격은 충남 공주시 석장리 구석기유적의 중기 구석기 시대 유물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신석기 시대 유적은 13기의 움집터가 조사돼 빗살무늬토기, 보습, 갈돌 등이 나왔으며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모두 3기의 집터가 발굴돼 마제석검, 석촉, 팽이형토기, 방추차 등이 출토됐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몸돌, 망치돌 등 50여 점의 석기와 석기를 만들 때 떨어져 나온 작은 부스러기들이 나왔다.

이들 유물은 뗀석기로 쌍날찍개, 긁개, 밀개 등 후기구석기의 이른 시기이거나 중기구석기의 늦은 시기 유물로 보인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은 직경 2∼3m 내외, 깊이 0.8∼1.3m 정도의 작은 집자리 유적 15기가 조사됐으며, 빗살무늬토기 조각·보습·갈돌·어망추 등이 나왔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는 3기의 집자리 유적이 조사됐으며 팽이형 민무늬 토기 조각, 방추차, 돌도끼, 돌화살촉, 돌칼, 숫돌 등이 나왔다. 현재 3기의 집터는 모두 복구됐다.

둔산지역의 선사유적은 이 지역에서 갑천 주변의 얕은 구릉에 넓은 농토와 풍부한 물을 배경으로 많은 주민이 살았던 사실을 알려주며, 대전의 선사문화 갈래와 계통을 확인하는 데 좋은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선사시대의 대전은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이 둔산 선사유적지를 살피면 확연히 드러난다.

대전은 예부터 도시를 중심으로 가로지르는 갑천과 또 다른 지류인 유등천, 대전천이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물이 풍부하다. 또 대전의 동·서·남쪽을 감싸고 있는 산들과 산에서 뻗어 나온 완만한 구릉지대는 평야지대와 어울려 농경과 거주, 산업 활동에 있어서 적합했다.

갑천과 유등천, 대전천, 즉 대전의 ‘3대 하천’이 도회를 관통하거나 감돌고 구봉산과 계족산, 보문산과 식장산, 그리고 장태산과 갑하산, 천비산과 만인산, 빈계산과 계룡산 등 울울창창한 산들이 천재지변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구석기 시대에는 사냥이나 채집 등 자연 경제를 영위하며 이동 생활을 했고, 사람들은 동굴이나 막집 등에서 살았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을 시작하며 정착 생활이 시작됐고,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살았다.

정복 활동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소수가 모여 군락 생활을 했으며, 식물이나 과일의 채집, 수렵 등을 통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와의 차이점은 토기를 사용하지 않고, 간석기(마제석기)가 아닌 뗀석기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창, 활, 예리한 칼 등을 무기로 사용했다. 신석기 시대는 부족과 씨족으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기에 사회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면서 평등했다. 그러나 신석기 사회는 구석기보다는 더 계층적인 사회였다. 청동기시대의 특징은 처음으로 벼농사를 지었으며, 민무늬토기를 사용했다. 신석기의 빗살무늬가 내구도가 약한 반면에 민무늬토기는 상당히 강한 내구성을 갖게 됐다.

또 지배층의 등장으로 청동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국내 최초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생활이 혼재돼 나타나는 지역이 바로 선사유적지다. 갑천 주변의 얕은 구릉과 넓은 농토, 그리고 풍부한 물을 배경으로 선사시대부터 안락하게 사람들이 거주했을 천혜의 터. 현재는 도심 속에 자리해 있지만, 긴 역사와 현대가 만나 도시민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찾아 즐기기 알맞은 장소다.

 

<참고 문헌>
한밭승람 : 1972. 변평섭. 호서문화사
여기가 대전이다 : 1984. 최문휘. 동방종교문화연구회출판부
아름다운 대전8경 : 1999. 대전광역시
인터넷 워키백과 외 다수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