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장

속담 가운데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란 말이 있다. 가뭄보다 장마 피해가 크다는 뜻이다. 집중호우는 온갖 전답과 가재도구를 쓸어간다. 재산상의 피해는 물론 습기로 인한 간접 피해 또한 적지 않다. 곳곳에 피는 곰팡이로 인한 식중독, 수인성 전염병 피해는 계측할 수도 없다. 얼마나 홍수가 무서웠으면 재앙(災殃)이라 했을까. 원래 재앙의 재자는 강물이 넘쳐흐르는 모습이었다. 나중에 불(火)이 더해져 홍수만이 아닌 가뭄도 재앙이 됐다. 한자 문명을 만든 중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홍수였다.

중국 대륙에는 동아시아 문명을 잉태한 장강(長江)과 황하(黃河)가 있다. 강(江)과 하(河)라 부르기도 한 이들 물줄기는 비옥한 옥토를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변해서 재앙을 안겨주는 두려운 존재가 되기도 했다. 완만한 평원을 흐르기 때문에 비가 조금만 넘쳐도 홍수로 돌변한 것이다. 고마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된 물이 숭배 받은 까닭이다. 성난 물줄기가 얼마나 자주 바뀌었으면 지도상엔 시대마다 달리 표현했을까. 대홍수로 물길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인류는 대홍수를 자연현상이 아닌 인간의 잘못에 대한 하늘의 심판이라 여겼다. 성경 창세기 노아의 방주 사건과 중국 신화 요(堯)임금 시절 발생한 홍수가 대표적이다. 동시에 인간은 물을 관리할 수 있다는 확신도 갖게 했다. 중국 하나라 우(禹)임금은 9년 간 치수에 성공해서 천자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치수(治水)가 성공의 비결이다. 

물길을 표현하는 글자로 강하(江河) 말고도 천(川) 자가 있다. 갑골문에 내는 언덕 사이로 흐르는 물을 상형화했다. 유유히 흐르는 물길은 비옥한 토지를 선물했고 그곳에 삶의 터전이 만들어졌다. 물길(川) 사이에 고을(州)이 생기고 행정구역이 만들어졌다. 물을 두고 고을이 생겼기에 이동할 때에도 물길이 편리했다. 순행(巡行)이란 물길을 이용해서 다니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순(巡)이란 쉬엄쉬엄 간다는 착(辶·辵)과 물길 내(川)의 결합이다. 인도하며 가르친다는 뜻의 훈(訓)자도 내를 돌며 이뤄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 삶에 물길이 얼마나 소중했는가를 알려준다. 

다스린다는 뜻의 치(治)자도 물(氵·水)과 기쁘다는 뜻의 태(台)의 결합으로 나왔다. 물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속성이고 순리이다. 따라서 치란 순리대로 처리하면 다스려지고 기쁘다는 뜻이다. 다닐 행(行)은 사거리를 상형한 문자이고 거기로 사람들이 오가기에 ‘길’ 또는 ‘가다’는 뜻이 됐다. 그런데 사람 다니는 길(行)에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연(衍)이라 했다. 계곡이나 내로 흘러야 할 물이 사람 다니는 길로 넘쳐흐르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여기서 파생된 글자가 허물이란 뜻의 건(愆)자가 나왔다. 정상이 아니란 뜻이다. 그만큼 물길은 우리 삶에 중요한 요소였다. 또 물은 물길로 흘러야 정상이지 사람 다니는 도로에 차서 흐르면 허물이자 재앙이었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이 수로를 내고 제방을 쌓아 저수지를 만든 까닭이다. 

농경민족에게 물은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물은 넘치면 홍수고 마르면 가뭄으로 인간의 생존을 위협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기에 삼국시대 이래로 기우제(祈雨祭)와 기청제(祈晴祭)가 빈번했다. 물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넘치거나 마르면 하늘의 책벌로 알고 겸손한 예를 갖추기도 했다. 조화(調和)의 예가 강조된 배경이다. 조화란 넘침도 부족함도 아닌 적절함이 유지되는 상태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 모든 곳에 적용됐다. 인간과 인간의 조화를 위해 ‘효와 예절’이 나왔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위해 풍수(風水)가 나왔다.

‘효와 예절’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배려와 존중’이라면 ‘풍수’란 인간과 자연 사이의 ‘배려와 존중’이었다. 적절한 바람과 물은 삶의 최적화를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때론 적토성산(積土成山), 적수성연(積水成淵)도 했다. 자연재앙을 막기 위한 예방적 차원에서 실천한 자연과의 조화였다. 인류의 또 다른 재앙, 조화를 잃은 막가는 인간관계로 인한 재앙을 막기 위한 예방 차원의 효와 예절 교육 강화도 이 틈에 생각해 본다. 조화 잃은 자연재앙 속에서 조화 잃은 인간관계의 재앙을 헤아리며 보다 나은 사회를 꾸려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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