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밭은 쑥대밭, 농민은 망연자실
주민들 “용담댐 개방이 원인 격앙”

집중호우와 용담댐 방류로 인해 충남 금산군 제원면 일대 인삼밭과 농경지 등이 수해를 입은 가운데 10일 농민들이 물에 잠긴 인삼을 건져내고 있다. 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금강일보 김정섭 기자] 애지중지 키운 인삼들이 하루아침에 수장됐다. 그마나 쓸만한 놈들이라도 건져볼 요량으로 손을 놀려보지만 울화통이 치밀어 장탄식만 토해진다. 농민의 얼굴은 그렇게 수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대한민국 인삼의 메카 충남 금산이 물바다가 된 것은 지난 8일이다. 기습 폭우로 인해 안 그래도 불안하던 차에 용담댐이 개방되면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속절없이 물에 잠긴 거다. 마을은 고립됐고 주택과 농경지는 침수됐다. 무엇보다 군(郡)의 상징이자 재산목록 1호 인삼이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종잡을 수 없지만 그래도 비가 소강 상태를 보인 10일 금산군 제원면 한 인삼밭을 찾았다. 엉망진창이 돼 버린 인삼밭에 땀인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기를 잔뜩 머금은 몇몇 농민들이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인삼을 솎아 캐면서 땅이 꺼지듯 한 숨을 쉬었다.

한 농민은 “못 쓸 것을 알고 있지만 한가닥 희망을 갖고 캐고 있다”며 “애지중지 키운 것인데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다니 어이없다. 어떻게 처분할 지 막막할 따름이다”며 허공을 야속하게 응시했다.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10년 농사를 바라보는 농심은 말 그대로 망연자실이다.

농민 김 모(64) 씨는 “인삼밭을 10년 이상 가꿨는데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니 격분을 넘어 허탈한 심정이다. 지금 또 내리는 비가 원망스럽다. 힘이 빠진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용담댐 방류로 인해 금산군에 있는 농경지 471㏊(제원면 258㏊, 부리면 213㏊)에 대한 피해 신고가 접수된 상황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신고 접수는 늘어날 것이라는 게 충남도의 설명이다.

만신창이가 된 것은 마을도 마찬가지다.

아닌 밤중에 물폭탄을 맞아 피신한 제원면 주민들은 시름에 가득차 물에 젖은 세간살이를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한 주민이 갑자기 울분을 토했다.

최지순(60·여) 씨는 “물이 집안으로 들어왔는데 몇 분도 안 돼 무릎까지 차 올랐다. 살면서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며 “집을 두고 들어가지 못 하는 신세다. 물도, 전기도 끊겨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화를 토했다. 자초지종을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지금 주민들에겐 용담댐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제원면 주민 B 모 씨는 “비가 많이 오면 미리미리 물을 뺐어야 했는데 장마철에 갑자기 많은 양의 물을 방류하는 경우가 어디있냐”며 “댐 방류는 아랫동네사람들을 죽이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격분했다.

충남도에 따르면 이번 수해로 제원면에서만 88가구 주민 220여 명이 제원초 및 마을 회관 등 임시대피소로 대피한 상황이다. 댐 방류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자 충남도는 지난 9일 한국수자원공사 금강유역본부 용담지사를 방문해 폭우에 따른 용담댐 방류량에 대해 논의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편 용담댐 수문 개방에 따른 수해가 발생하자 충남 금산, 충북 영동·옥천 등의 방류 영향권 피해지역 지자체들은 한국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검토하는 등 강경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정섭 기자 toyp1001@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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