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 교목

 
주형직 을지대 교목

2020년. 어감마저 좋은 금년 한해를 시작하면서 근거 없는 막연한 희망을 경계해야 한다는 발언을 주변에 쏟아내곤 했다. 나이들수록 수입은 점점 줄어들 것이며 건강도 좋아질 리 없고, 감당하고 책임져야할 일은 많아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조언 같은 것이다. 희망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막연한 희망이 삶의 긴장을 떨어뜨리고 섣부른 선택으로 이어져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토록 힘든 현실을 겪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19 발병 초기만 해도 한두 달이면 지나가려니 했던 기대가 있었지만 그런 희망은 무색해지고, 이제는 기약 없는 시간 속에 갇히고 말았다. 받아들이기 힘든 일상에 직면하다보니 정상적인 판단이 어렵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욱이 예년에 없던 지루한 장마와 기록적 폭우로 인한 재난 소식은 우울하게 만든다.

고대사회에서 홍수와 기근, 그리고 전염병은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 때문에 자연재해는 극복할 수 없는 재앙과 공포의 대상이며 ‘신의 심판’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저 하늘을 살피는 주술적 수단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은 자연이 주는 위험과 기회에 대한 도전과 응전을 통해 주어졌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탈마술화(Entzauberung)’의 개념으로 근대화를 설명했다. 과거 자연이 신비롭고 마술적인 대상이었다면 근대에 인간의 합리적인 지성은 이 자연을 규명하고 예측하며 통제 가능한 것으로 바꾸었다는 뜻이다. 실제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상상을 현실로 바꾸었으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보다 풍요로운 세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그토록 자랑했던 과학과 문명이 자연의 작은 몸짓에 기초부터 흔들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번영과 풍요의 이름으로 자연섭리에 도발한 결과 자연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예측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한 것이라 믿었던 자연의 능력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무기력만 깨닫게 된다.

돌이켜보면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으로 세상은 풍요로워졌고, 그 속에서 누리는 인간의 향유도 걷잡을 수 없게 됐다. 또 그것을 취하려는 욕심과 그로부터 비롯된 경쟁과 갈등은 필연적 산물이다. 이제 사람들은 탐욕에 기초한 자기 자신만 소중하다. 자신 외에 모두를 타자(他者)로 돌려세우고 극복하거나 이겨야할 대상으로만 여길 뿐 서로 돕고 함께 살아야할 대상으로는 여기지 않는다.

어떤 자극도 자기 방식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이미지가 투영된 사회현상만 해석한다. 절대대상인 자기 외에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은 바깥세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혼자 누리려는 희망은 결코 실현될 수 없고 좌절된 욕망은 영혼을 뒤틀리게 한다.

그렇게 살아온 결과 우리는 모두 외롭고, 모두 상처받았으며, 모두 억울하기만 하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은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해 자기 인생을 억울하게 여기며 분노하게 한다. 모든 관계에 이미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지만 이기심과 탐욕을 양보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세상은 너무 각박하고 어디서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자살소식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분명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지만 이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단순히 피해자의 편에 서면 정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 같지만 너무 쉬운 접근이다.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면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사자가 아닌 관객의 자리에서는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조차 경솔한 일이 된다.

혼돈의 시대, 자연의 거스를 수 없는 위대한 힘은 우리에게 멈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멈추고 숨을 돌리며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속도를 내느라 눈으로 담아내지 못했던 이웃한 사람들과 풍경을 관조할 때다. 스스로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곱씹는 과정을 통해 깨닫고 반성하며 회복하기를 기다릴 때다. 걷어내고 덜어낼수록 가벼워지는 삶의 비결을 배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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