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열두 달 가운데 5월엔 항상 ‘계절의 여왕’, ‘가정의 달’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래서 5월에 새겨진 의미 만큼이나 5월 달력은 각종 기념일이 빼곡이 들어 차 있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석가탄신일 등 기념일이 10개 남짓 있고 이중엔 법정공휴일도 이틀이나 있다. 법정공휴일이 한 달에 이틀(어린이 날, 석가탄신일)인 것은 5월 뿐이다.지난 주말 달력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요즘같은 세태에선 ‘어린이 날’ 보다 ‘어버이 날’을 법정공휴일로 정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어린이의 권익을 폄하하거나 어린이날을 폐지하자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3·1운동 이후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과 색동회를 중심으로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공포하고 기념행사를 치름으로써 그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1970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5037호)’에 따라 법정공휴일로 정해진 이래 오늘에 이른다. 이날에는 특별히 부모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어린이가 평소에 가지고 싶어 했던 물건 등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과거 어린이에 대한 인권 관념이 없을 당시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기념일이다.어버이날은 매년 5월 8일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전통적인 ‘효(孝)’ 사상의 미덕을 기리기 위해서 정한 국가기념일이다. 전통적으로 효는 한국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며 윤리다. 그러므로 전통적 가치관에서 본다면 어버이날을 별도로 지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어버이의 은덕에 감사드리는 기념일이 제정된 배경은 사회적 변화와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부터 어머니날을 제정해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후 1973년, 아버지와 어른, 노인을 포함해 어버이 날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아동이 갖는 가정에서의 위상은 과거와 사뭇 다른 게 현실이다.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아이들의 존재가 부수적으로 치부되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의 가정생활은 아이를 중심으로 영위되고 있으며, 1년 365일이 어린이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가정생활에서 어르신 또는 부모가 차지하는 위치는 어떠한가? 주위를 둘러봤을 때 특히 기혼자들의 경우 직장 일 등의 이유로 부모와 같이 생활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의 부모도 신경 써야 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면 오히려 공휴일 지정의 효용성을 따졌을 때 오히려 어린이 날 보다는 어버이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 하는 게 훨씬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같이 지내는 아이들을 위한 날보다는 떨어져 지내는 부모를 위해 하루를 쉬게 하는 게 요즘 세상에선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냐는 얘기다.얼마 전 직장인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어버이날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기를 바라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으며 5월 기념일 중 가장 중요시 하는 날로 70% 가량의 응답자가 어버이날을 꼽았다. 반면 어린이날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은 5% 남짓에 불과했다. 물론 어린이날도 쉬고 어버이날도 쉰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효용성의 잣대를 들이대 굳이 한 기념일만 법정공휴일로 해야 한다면 해답은 5월 5일이 아니라 5월 8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시대상을 반영한 정책으로서 평가를 받지 않을까.올해는 어버이날이 주말이라 다행이었지만 평일 어버이 날, 전화 한 통으로 도리를 다했다고 위안 삼았던 지난날에 대해 부모님께 죄송함을 감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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