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권 세종본부장

서중권 <세종본부장>

잠기고, 무너져 내려 휩쓸리고···.

50여 일 동안 줄기차게 쏟아 부은 집중호우.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는 예정된 휴가까지 반납하고, 정치권은 피해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세종시 역시 곳곳에서 수해가 발생했다. 지난달 23일부터 10일까지 누적 강수량은 500㎜를 기록했다. 유사 이래 흔치 않는 물난리를 겪고 있다.

이 와중에 이문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장의 행보를 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청장,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건설의 사령탑 자리다. ‘세계최고 도시’ 건설을 목표로 설계한 행복도시다.

이 청장은 지난 11일 오후 준공을 앞둔 세종시 청소년수련관 현장방문을 돌연 취소했다. 사유는 비가 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본보 기자는 이날 이 청장의 현장방문과 관련해 시 관계자에게 방문시간, 내용 등 간단한 취재를 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우기 속에서도 현장방문을 하겠다는 이 청장의 의도가 궁금했다.

오후 5시쯤 이 청장 비서실로 전화했다. 방문취소 사유를 묻자 비서실은 “비가 오기 때문에 취소했다. 대변인실에 알려주겠다”며 끊었다.

참 기가 막혔다. 방문 당일 몇 시간 전에 취소? 그것도 비가 와 취소란다.

행복청이 세종시 관계자에게 청장 방문일정을 알려준 것은 5일 전인 지난 6일.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살피지 않았을 리 없다. 방문을 통보한 날이나 방문 당일 등 호우는 예견돼 있었다.
그렇다면 앞뒤 정황을 볼 때, 취소 사유는 비가 아닌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보 취재를 보고받은 이 청장은 우기 중 현장방문 비난을 예상, 취소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즉, 취재를 의식한 방문 취소라는 합리적 의심이다.

현장방문 취소 해명은 그렇다 치자. 이 청장의 현장집착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나라 전체가 물난리 속인데도 굳이 순시강행을 시도했어야 했는지···.

이 청장은 지난 3월 취임부터 줄곧 현장방문 순시를 즐겼다. 한 달 평균 4∼5회 꼴. 전임 청장의 30일 공백과 직원들 사기저하 등 자부심과 긍지가 흔들리고 있는 때다. 상가 공실과 기업유치 등 굵직한 프로젝트와 현안문제는 뒷전이다.

가뜩이나 전 청장의 일탈로 인한 수장공백 혼란, 3류 도시건설 전락우려 등 행복청이 처한 이미지 추락 수습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비도시전문가,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까지 붙는 마당이다.

청장 방문 일정을 위해 행복청은 5∼7일 전 해당지에 통보한다. 이 기간 동안 현장관계자들은 브리핑과 내부정돈 등 준비과정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고작 현장을 들른 이 청장은 ‘폼’잡는 사진 한 컷이 고작이다.

행복청장은 신도시건설을 위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내공과 현장을 꿰뚫는 혜안을 갖춰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문기 청장은 이 같은 여건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있다면 현장방문과 의전을 즐기려는 ‘권위의식’이 엿보일 뿐이다. 이 청장은 최악의 리더인 '무능력하면서 부지런한' 유형에 속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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