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대전구청장협의회장

“잠을 미뤄가며 현재 대전을 지켜주시는 분들께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 이렇게 도넛을 보냅니다. 비록 마스크나 방진복은 아니지만 끼니마저 거르실까 고민하다가 작은 용기를 내어봅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하던 지난 2월 말, 대전 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 간식과 함께 도착한 익명의 편지 내용이다. 용문동에 거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밝힌 이 시민은 “대전을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동 행정복지센터에 마스크 150장을 두고 간 시민도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시민은 이 한마디만 남겼다. “저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세요.” 한 중학교는 학내 바자회 수익금으로 생필품을 사 전달하기도 했다. 보건소 등 방역 최전선에는 간식이 줄을 이었고 동 행정복지센터에는 마스크 등 후원 물품이 쇄도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는 아직 없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과 같은 생활 백신, 마스크 하나라도 나누고자 하는 나눔 백신은 임상시험도 필요 없이 지역 곳곳에 투여됐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지난달 30일 오전 4시부터 1시간 동안 서구 정림동에는 80㎜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아파트 1층이 물에 잠겼다. 인근의 또 다른 아파트 지하주차장도 침수 피해를 입는 등 ‘물 폭탄’은 서구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물이 빠지자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서구자원봉사회와 적십자봉사회를 비롯해 의용소방대, 마을공동체 회원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505여단 장병들은 작전을 전개하듯 일사불란하게 복구 작업을 벌였고 저 멀리 경남 함양군에서도 70여 명이 달려와 힘을 보탰다.

그날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구 피해 현장을 나갔다. 장마에 무더위가 겹치면서 가만히 서 있어도 옷이 땀에 젖었다. 그런 날씨에 자원봉사자들은 쉬지 않고 흙탕물을 걷어내고 씻고 닦았다. 서구 공무원들도 매일 현장에 투입돼 복구 작업을 벌이고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 수재민이 겪는 고통과 상처는 당장 치유하기 어렵겠지만 최소한 외롭지는 않았으리라 감히 짐작한다. 안타깝게도 대전은 시작에 불과했다.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수많은 이재민과 사상자가 발생했다.

문제는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이상기후 현상이 올 여름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2018년 8월 1일 강원도 홍천은 41도까지 치솟았고 그해 광복절인 8월 15일 대전도 39.4도를 기록했다.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악의 폭염이었다. 2019년 여름에는 폭염 대신 태풍이 한반도를 덮쳤다. 평년보다 2배나 많은 무려 7개의 태풍이 우리나라를 강타했다. 최악 폭염, 최다 태풍에 이어 올 여름 최장 장마까지 이상기후에 따른 보다 근본적인 재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뿐만 아니라 ‘기후 불확실성의 시대’를 대비한 장기적 전략도 마련할 방침이다.

끝으로 수해를 입은 분들께 다시 한 번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크고 작은 물품과 성금으로 아픔을 함께해준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서구도 빠른 피해 복구와 추가 피해 방지를 위해 더 세심하게 살필 예정이다. “상처는 모래에 기록하고, 은혜는 대리석에 새긴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상처는 모래처럼 씻겨 나갈 것이며, 연대의 힘은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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