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얻은 ‘휴가’ 기대감 부풀지만
출근하면 물량 어쩌나 걱정 호소
지입 기사 "차라리 일하고 싶다"

[금강일보 박정환 기자]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택배 없는 날'이 시행된다. 2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택배 기사들이 배송 업무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지만 그들의 표정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남들에겐 들뜬 황금연휴가 그들에겐 그 다음을 걱정해야 하는 짐으로 다가오기도 해서다. 단 하루가 더해진 휴식에 만감이 교차하는 게 그들이 처한 팍팍한 현실이다. ▶관련기사 9면

택배업계에 따르면 한국통합물류산업협회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14일을 ‘택배인 리프레시 데이’로 지정했다. 비단 올해뿐만 아니라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한 것으로 택배기사들에게 단 하루지만 퍽 의미있게 다가온다. 더구나 우정사업본부도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하면서 우체국 소포배달 역시 14∼17일 무려 나흘간이나 배송을 쉰다. 이에 따라 우정사업본부는 13일과 14일 냉장·냉동 등 신선식품 배송은 접수하지 않았다.

갑론을박이 있기는 하지만 현장 택배 기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코로나19이후 언택트 소비 트렌드로 택배 배송 물량이 늘어나 휴식에 목말라 있던 이들에게 14일을 포함한 사흘이라는 휴일은 천금 같기 때문이다. 언감생심 마음 먹어보지 못했던 달콤한 시간을 앞둔 택배기사들에게서 다소 흥분된 모습까지 엿보인다.

택배원 조 모(45·대전 대덕구) 씨는 “갑작스러운 결혼으로 빨리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 택배 기사를 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아이들 손 잡고 그 흔한 여름 바닷가조차 가본 적이 없다. 이참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남편 노릇,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해 보고 싶다. 그 생각만으로도 배부르다”고 웃어보였다.

문제는 뒷감당이다. 온라인상 택배 물량이 과도하게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휴무 기간 동안 주문 안 하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지만 접수량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있는 관측에서다. 휴일 후 닥쳐올 배송물량 대란이 벌써부터 목덜미를 잡는다는 게 불안 요인인 거다.

택배원 양 모(36·대전 중구) 씨는 “쉬는 것은 좋지만 휴일이 끝난 뒤가 걱정이다. 택배가 쌓여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어서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정해진 구역에 따라 배송 업무를 하는데 물량 조절에 실패한다면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있기 때문에 편히 발을 뻗을 수 없다”고 야속해했다.

물류 업체에 속하지 않은 위탁운영제 기사 이른바 ‘지입 기사’들의 반응도 좋지 않다. 자차를 통해 택배를 배송하고 건 당 보수를 받는 이들로서는 배송 업무가 중단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어서다.

유 모(35·대전 서구) 씨는 “택배 기사라고 다 같은 처지에 있는 건 아니다. 나 같은 위탁 기사는 배송 건수에 따라 돈을 받는 방식이기 때문에 업체의 휴무로 인한 배송 중단은 곧 수익에 영향을 미친다. 택배 기사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힘들면 쉬어라’는 생각으로 정책을 시행하니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 아닌가”라고 원망스럽게 말했다.

박정환 기자 pjh@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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