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무대·자운대·계룡대·충성대 등
日 군국주의 소산…지금까지 쓰여
민족문제연구소 “명칭 변경을” 지적
국방부 “공식적으로 드릴 말씀 없다”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우리 군(軍)에는 부대 명칭을 ‘○○대(臺)’로 부르는 곳이 적잖다. 군부대 소재지를 ‘○○대’로 명명하게 된 유래는 씁쓸하게도 일제강점기 일본 군국주의가 최고조에 달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그 잔재는 해방 후에도 지속돼 광복 75주년,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을 맞는 오늘까지 별다른 고민 없이 이어지고 있다. ▶관련기사 3·4면

통상적으로 ‘대’는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바위 꼭대기의 넓고 평평한 반석을 뜻한다. 군에선 연무대(충남 논산·육군훈련소), 자운대(대전·육군교육사령부, 간호사관학교), 계룡대(충남 계룡, 육·해·공군본부), 충성대(경북 영천·육군제3사관학교) 등 소재지와 이를 아우르는 지역을 일컬어 흔히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대에서 이런 표현을 쓰기 시작한 연원을 쫓다 보면 퍽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1930년대 후반 일왕은 침략전쟁의 선봉에 설 일본군 예비장교를 독려할 목적으로 여러 사관학교를 세우면서 상무대(육군사관학교·1937년), 수무대(육군항공사관학교·1941년), 진무대(육군예과사관학교·1943년), 건무대(도쿄육군유년학교·1945년)라는 이름을 잇달아 하사했다. ‘○○대(臺)’라는 명칭이 사실 일제 군국주의 시절의 소산인 셈이다.

아쉽게도 이 같은 명명법은 해방 뒤에도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사의 긴박함 속에서 그대로 차용됐다. 1951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현재의 육군훈련소(옛 육군제2훈련소)의 별칭을 연무대로 명명한 후 이런 흐름은 1970년대와 80년대 후반 박정희·노태우 대통령 재임 때까지 계속됐다.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970년대부터 군부대 규모가 큰 경우 대통령이 직접, 그 이후 생기거나 기존에 있던 곳은 사단장이나 군단장이 ‘○○대’라는 별칭을 붙였다”며 “물론 과거 창덕궁 내에 있는 춘당대라든가 과거시험장이었던 경무대, 수원 화성 연무대 등이 있다는 점을 들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이런 사례는 궁궐 안 누대와 그 앞의 일정한 공간 혹은 건축물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부대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연구원은 “다른 건 몰라도 군부대를 ‘○○대’라고 부르는 건 일제 침략전쟁기부터라는 점에서 지금이라도 문제 인식을 확실히 하고 정식 명칭을 부르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등 의식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한 군 내부 일제 잔재 청산 논의 의지를 묻는 본보 취재 요청에 “공식적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한민국과 국군의 뿌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이다. 조국 광복으로 가는 길 위에서 그들이 흘린 피와 땀, 눈물은 과거를 되새기며 오늘의 소중함, 미래의 희망을 찾는 후손들이 기억해야 할 한민족의 뜨거운 역사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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