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갈망했던 차 찾아온 기록의 路
하나둘 사라져가는 마을에 활력 불어 넣어
대전의 미래 제시…“추억 넘어 史까지”

[금강일보 강정의 기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옛 조상들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속담이 실감날만큼 우리 주변은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다. 혹 속담에서 단정짓던 십 년이라는 시간조차 길게 느껴질만큼 수년만에 몰라보게 다른 세상이 펼쳐진 곳 또한 적지 않다.

지금껏 인간은 늘 새로운 걸 갈망해왔고 이는 인간의 본성이자 옛것으로부터 느껴지는 일종의 싫증과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에서부터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덧 우리는 너무나 쉽게 옛것을 버리는 삶에 치우쳐 왔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한 번 쯤은 옛것에 대해 고민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해야할 시점에 도래한 거다. 그 출발지에 있어 기록이라는 작업이 수반돼야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손상호(30) 청사진연구소 대표가 추구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가 차린 청사진연구소라는 창업의 말머리에 담고 있는 의미 또한 그렇다. 청사진이라 함은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이나 구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손 대표에게 있어선 옛것에서의 가치를 기록해 새로움을 이끌어낸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는 그 시작을 변화의 감지가 비교적 느껴지지 않는 대전 동구 중동에서 시도하고 있다. 어느덧 창업을 한 지 만 2년에 다다른 그. 손 대표가 조심스럽게 펼친 대전의 청사진을 들여다봤다.

 

손상호 청사진연구소 대표

◆ 우연찮은 기회에 밟게 된 ‘기록의 길’

“창업을 하기 전부터 늘상 사람들과 교육 활동을 하거나 소통하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회 초년생이다보니 제가 원하는 작업을 일로써 연결시키는 데엔 한계가 있었죠. 청사진연구소는 그러한 목마름을 해갈시켜주는 공간입니다.”

그가 청사진연구소를 창업한 이유는 그의 재능과 시기적절한 기회가 맞닿았기 때문이다. 비록 조금은 딱딱한 학문으로 여겨지는 건축학을 전공한 그였지만 내심 건축이라는 주제를 통한 주변과의 소통에 관심이 남달랐던 터다.

“2018년 우연찮게 주민들과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어보는 중동해프닝 사업이 생겨났고 때마침 주변에서 사업을 소개시켜줘 기록의 길에 들어섰게 됐죠.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이 아닌 제 적성에 맞는 업(業)을 찾던 중 기회가 맞았던 셈입니다.”

청사진연구소는 일상의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그려나가는 곳이다. 지역의 공간을 기록하고 그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와 삶을 곳곳에 알리는 역할 말이다.

“단지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닌 그 공간에서만이 가지고 있는 이면의 이야기와 가치를 찾아내는 게 청사진연구소가 세워진 이유죠. 주민들과 수시로 인터뷰를 하는 등 소통하며 그들이 오랜 기간 머물러온 공간에 다시금 애정을 갖게끔 하는 동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온 자리가 향후 어떻게 변화할 지는 아무도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옆집에 살던 주민이 하루 아침에 다른 지역으로 터를 옮길 지도 모르고 언제 개발 대상 지역으로 지정될 지도 모른다. 손 대표가 중동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기록을 남기고 있는 이유다.

 

손상호 청사진연구소 대표
손상호 청사진연구소 대표

◆ 조금씩 마을에 찾아드는 ‘활기’

중동은 대전의 원도심 근처에 위치해 있는 동네지만 비교적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 거주하는 대부분의 주민이 70~80대로 무언가 생동감 넘치는 동네라기보단 흑백사진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게 손 대표의 표현이다.

“이제 거의 만 2년을 달려온 상황에서 작업물에 대해 가치 있게 바라봐주는 주민들의 응원이 있어 이제껏 원동력으로 삼아 작업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단지 취미로만 즐겼던 작업들이 일로 해야한다면 싫증이 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여전히 기록 작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단지 재미를 느끼는 수준을 넘어 수익을 창출해야만 하는 환경 때문에 손 대표 또한 내심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해왔다지만 그의 손길을 탄 마을은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다.

아쉬운 부분 또한 없진 않다. 그가 한땀 한땀 엮어낸 기록물이 누군가에겐 단지 하나의 그림으로 여겨질 수도 있어서다.

“작업물에 대한 가치를 매기는 건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죠. 혹 누군간 기록 작업을 통해 ‘밥은 먹고 살겠냐’는 걱정의 한마디를 툭 던져주시곤 하지만 악의없는 질문이 뼈아프게 다가올 때도 없진 않아 휘청거리기도 하죠.”

창업 초창기 동네 주민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그의 기록의 길은 어느덧 노후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단지 하나의 건물에 불과했던 공간을 이제는 애정을 갖고 살아가게 만드는 터로 변모하게 만들고 있는 거다.

 

손상호 청사진연구소 대표

◆ 대전의 청사진을 펼치다

“지금은 단지 마을의 기록을 그림으로 표현해주는 수준이지만 향후엔 직접 공간을 만들어보고 건축을 하고 인테리어까지 도맡아 하려고 합니다. 그림이라는 기록에 머무는 게 아닌 실제 공간을 만들어보고 마을의 이야기를 담는 작업인 거죠.”

건축학과를 전공한 그는 실제 그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본격적인 작업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껏 해왔던 도면 작업을 넘어 실제 기록을 위한 건축에 나서는 일 말이다. 그가 지금껏 행해왔던 기록 작업의 근본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껏 그가 기록한 과거 공간에서의 가치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전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는 기록이라는 추억을 넘어 한 도시의 역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이기도 하다.

‘취업’과 ‘창업’이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섰던 그가 창업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행복해질 수 있는 업(業)을 택한 거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작업이 일로써 이어질 수 있냐는 걱정도 했었다지만 그럼에도 그는 기록의 길에 들어선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일해보고 했지만 제가 직접적으로 창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결국 제게 맞는 일이 있기 때문이죠. 안정된 직업에서 보람을 느끼는 이가 있는 반면 정해진 규칙에 따른 작업에 회의를 느끼는 청년들도 분명 있습니다. 저 또한 고정적인 수익을 발생시키진 못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체에 제가 살아가는 보람임을 느끼고 있죠.”

이는 그가 청년들에게 건넬 수 있는 조언이기도 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모든 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그 자체로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다만 본인이 맡은 일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거나 괴로워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해선 안 될 업이겠죠. 청년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하는 일에 뛰어들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비록 나이는 30대 초반의 앳띤 모습이 엿보였지만 그가 내보인 대전의 청사진엔 관록(貫祿)이 묻어있었다. 중동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그는 이제는 마을에 담긴 이야기를 추억에서 그치는 게 아닌 마을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다.

글=강정의 기자 justice@ggilbo.com
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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